‘박근혜 대항마’로 대권시장 상장
일부에선 향후 대권 후보경선은 ‘박근혜-김문수’ 싸움이 될 것이라며 김 지사의 행보를 예의주시하고 있다. 김 지사와 소장파와의 연대설도 흘러나와 그 예상에 박자를 맞추고 있다. 하지만 이런 일련의 흐름은 박 전 대표 외에 뚜렷한 후보가 없는 ‘무덤덤한’ 대권 경쟁 악보에 엇박자 하나 추가하는 것 외에 별다른 의미가 없다는 해석도 나온다. 뚜렷한 지지층의 부재, 외골수적인 리더십, 구체적인 비전 결여 등의 약점이 김 지사의 박자를 약하게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김문수 지사의 대권 경쟁력을 중간 점검해봤다.
이명박 대통령은 6·2 지방선거가 끝난 뒤 평소 친하게 지내던 장로 등 유력인사 10여 명과 식사를 같이했다고 한다. 그 뒤 정치권에선 참석자들의 전언을 통해 ‘이 대통령이 그 자리에서 대권주자들에 대한 이야기를 했고, 김문수 경기도지사에 대한 언급이 대부분이었다’는 얘기가 나돌았다. 물론 야당이 ‘억지 단일화’까지 이끌어내며 총력을 쏟았던 경기도 선거에서 승리한 것에 대한 공치사 성격이 짙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김문수 지사에 대한 대권 가능성을 권력 심층부가 한껏 띄워주었다는 점에서 그에게로 쏠린 정치권의 눈길은 점점 따가워지고 있다.
특히 김 지사의 최근 지지율이 처음으로 유의미한 포인트를 기록하면서 여권 일각에서는 ‘혹시나’ 하는 기대감도 점점 커지고 있다. 6월 지방선거 전까지만 해도 김 지사는 1~3%의 지지율에서 오락가락하던 ‘도토리’ 후보였다. 하지만 지난 7~8월경부터 김 지사의 지지율은 9~10%대에서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물론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1~2년 정도의 장기적인 시점에서 판단해야지, 몇 달 동안의 지지율 반짝 상승에 큰 의미를 둘 수 없다”며 조심스런 입장이다. 그럼에도 대권시장 상장조건인 5%를 넘어 10%대를 넘나드는 것만으로도 확실히 ‘김문수’라는 정치인을 달리 보게 하는 원동력이 되고 있다(8면 참조). 지지율 상승으로 주가가 오르고 있는 김 지사에 대한 기대감은 최근 공개된 6·2 지방선거 고액후원금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한 것으로도 확인된다.
사실 그동안 여권에서는 박근혜 전 대표 외에 이렇다 할 대권주자들이 없어 권력에 줄을 대려던 사람들도 마땅히 ‘베팅’을 할 정치인을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조용한’ 부상으로 최근 들어 그를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고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의 한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외에 마땅히 대안을 찾지 못한 사람들이 서서히 김 지사 쪽으로 움직이는 흐름이 나타나고 있다. 수원시 경기지사 공관에는 한나라당 친이계 내지 중립성향의 초·재선 소장파 의원의 발길이 이어지고 있다는 말도 있다. 보수 성향 단체 지도자들도 김 지사 공관에서 자주 만찬을 가지는 것으로 안다. 그리고 정계 입문 희망자와 재계 쪽 사람들도 최근 들어 김 지사에게 연줄을 대려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라고 말했다. 물론 이에 대해 김 지사 측은 “경기 출신 의원들이 지역 민원 때문에 지사를 찾아오긴 하지만 정치적인 문제로 만나는 의원은 전혀 없다”라며 정치적 배경을 일축하고 있다.
그런데 잠행 중이던 김 지사가 최근 들어 서서히 부상하는 배경에는 친이 그룹과 김 지사 본인 두 날개의 부력이 작용하고 있다. 친이 그룹으로서는 김 지사가 그들을 구해줄 유일한 희망이라고 보고, 그의 ‘능력’은 뒤로 물려 두고 일단 띄워야 할 필요성을 점점 크게 느끼고 있다. ‘이명박-박근혜 회동’ 이후 당내 분위기가 박 전 대표 대세론 쪽으로 서서히 흘러가고 있는 상황이지만 친이 탈레반들이 쉽게 무장해제 당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오히려 이들은 독자후보론이 친이 그룹의 유효한 저항카드가 된다고 본다. 내부에 여전히 ‘박근혜 노선과 정체성’에 대한 본능적인 거부감이 있고, 뒤늦게 투항해보았자 권력 변두리에 머물거나 19대 공천도 받지 못하고 찬밥신세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런 요인으로 친이 그룹은 박 전 대표와의 ‘화해’ 분위기와는 별도로, 물밑에서 은밀하게 ‘김문수 띄우기’에 적극 나서고 있다. 최근의 광역단체장 당무회의 참석 논란은 그 기저에서 드러난 상징적 사례다. 친이 그룹은 ‘조건부’로 김 지사가 당무회의에 참석하는 길을 열었다. 과거 경기도지사들이 중앙무대에서 소외된 설움을 기회가 있을 때마다 토로했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당무회의 입성은 대권 도전의 유리한 조건을 잡았다고 할 수 있다. 친박계가 완강히 김 지사의 당무회의 참석을 거부했던 것은 친이 그룹의 김문수 띄우기에 대한 숨은 발톱을 보았기 때문이다.
▲ 이명박 대통령과 김문수 지사가 지난 9월 15일 대구 EXCO에서 만났다. 김 지사는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각을 세우고 있다. 연합뉴스 |
이에 대해 정치권에서는 두 가지 의견이 교차하고 있다. “김 지사가 너무 성급하게 대권 행보 쪽으로 치고 나가는 것이 장기전인 대권도전에 부작용만 키울 것”이라는 주장이 있다. 하지만 김 지사의 초반 행보가 다분히 의도된 대권 전략이라는 시각도 있다. 한나라당의 한 소장파 의원은 이에 대해 “김 지사의 최근 발언은 정교하게 만들어진 전략적 접근이다. 여기에는 마땅한 후보를 찾지 못하고 우왕좌왕하고 있는 친이 그룹과 중도계를 박 전 대표와 맞설 수 있는 유일 후보로 자신을 내세우는 ‘김문수 대세론’으로 집결시킬 수 있는 효과가 있다. 대안도 없이 다른 후보를 찾는 데 시간을 허비하지 말고 일찌감치 김문수 후보로 힘을 모아 박 전 대표와 정면대결을 해야 한다는 논리다. 이는 소장파 등 친이 그룹 일각에서 여전히 김문수 회의론이 나오는 것에 대한 맞대응 성격이 짙다”라고 말했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김문수-소장파 연대론’이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먼저 김 지사 입장에서는 한 명의 지지자가 아쉬운 마당에 소장파와의 연대설은 ‘가뭄에 단비’ 격이다. 공개적으로 연대설은 일축하고 있지만 불감청고소원이다. 그래서 양측 연대설은 김 지사 측이 친이계의 대권 후보로 조기 부상하기 위한 ‘자가발전’일 가능성도 거론된다. 반면 소장파는 연대론을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우리는 당분간 누구의 손도 들어주지 않을 것이다. 대선이 2년도 더 남은 상황에서 친이계 후보의 조기 확정은 그 자체로 독이다. 요즘은 디지털미디어 등의 발달로 마땅한 후보만 찾으면 띄우는 데 몇 개월 걸리지도 않는다. 충분한 시간을 두고 다양한 대권 후보군을 만드는 게 급선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김 지사는 예선 및 본선에서 얼마나 경쟁력이 있을까. 대답은 아직 부정적이다.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김 지사의 부상 움직임은 무덤덤한 대권 시장에 일시적인 ‘김문수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유의미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김 지사 측이 ‘유의미하게’ 생각하는 최근의 지지율만 따져도 경쟁력에 의문이 든다. 김 지사는 자신의 ‘얕은’ 텃밭인 수도권 외의 나머지 지역에선 여전히 1~2%의 ‘무의미한’ 지지율에 머물고 있다. 그로서는 여전히 ‘경기도지사’에 머물러 있을 뿐, 전국구 스타가 아니라는 게 치명적이다. 경북 영천 출신인 그가 박근혜 전 대표와 지지기반이 겹치는 것도 약점이다. 최근 그가 ‘이승만 동상 광화문에 세우기’ 등 우경화 노선을 걷는 것도 대구·경북 등 영남지역의 보수층을 공략해 박 전 대표의 지지기반을 잠식하겠다는 의지가 숨어 있다.
그의 외골수적인 리더십도 우군을 모으는 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 김 지사는 운동권 출신으로서 자신의 신념이 상당히 뚜렷한 정치인으로 통한다. 이를 김 지사 측은 “몰락한 선비가문의 지조 기개 비타협의 정서가 배어 있는 것”으로 해석한다. 하지만 김 지사를 잘 아는 한 의원은 이에 대해 “김 지사와 얘기하다보면 벽을 느낄 때가 많다. 그는 이미 자신의 정답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상대의 얘기를 들어주는 것 같지만 그것이 화합·통합의 리더십으로 발전하지 못하는 것 같다. 운동권 출신이라서 그렇다는 말도 있지만, 너무 외골수적인 성향이 강해 그를 지지하려는 의원들도 좀 꺼리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구체적이고 뚜렷한 집권 전략과 비전이 없는 것도 약점으로 통한다. 김문수 하면 딱히 떠오르는 ‘뭔가’가 없다는 게 정치권의 대체적인 견해다. 최근 그가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Great Train Express)를 정치생명을 걸고 밀어붙이는 것도 ‘이명박=청계천, 김문수=GTX’라는 등식을 확인시키고 싶은 고육지책이라고 할 수 있다.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최근 부상은 친이계와 그 스스로의 자가발전 성격이 짙다. 더구나 박근혜 전 대표에 비하면 그의 지지율은 ‘애송이’ 수준이다. 당 주변의 평가도 아직은 그리 호의적이지 않다. 이 모든 약점을 일거에 뒤집을 수 있는 묘책은 없다. 경기도라는 작은 집부터 잘 일으켜 세우는 게 큰 집을 짓기 위한 주춧돌인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