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평균 연가 사용 고작 5일…3분의 1 재택 지침에도 “차라리 출근”하는 현실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 전경. 사진=이종현 기자
류호정 정의당 의원이 부당해고 가해자로 지목돼 논란이 불거졌다. 수행비서를 면직하는 과정에서 통상적 해고기간을 준수하지 않고 7일 전에 통보해 노동법을 위배했다는 것. 또 류 의원이 노동법상 휴게시간을 위배했고, 지역위 당원들의 항의에 면직통보를 철회한 이후 재택근무를 명해 사실상 ‘왕따’를 시켰다는 주장도 나왔다.
류호정 의원은 “면직사유는 ‘업무상 성향 차이’”라며 “수행비서 업무 특성상 근무시간이 정확히 정해져 있지 않았다. 다만 일정이 없는 주는 주4일 근무 등 휴게시간을 최대한 보장하려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통상적 해고기간을 준수하지 않은 건 절차상의 실수라고 주장했다.
해고된 비서는 당 전국위원회에서 공개적으로 문제를 제기했다. 류 의원이 노동법을 위반한 절차적 하자에 대해 문제의식이 없고 아직 공식 사과도 하지 않아, 문제가 해결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러면서도 당사자 간에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덧붙였다.
이후 당의 중재로 류 의원은 수행비서를 만나 고개 숙여 사과하고, 미안함을 표현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정의당은 논란이 쌍방의 이견으로 확인돼, 당사자 제소를 통해 징계위원회(당기위)의 판단에 따른다는 계획이다.
당의 징계나 논란과는 별개로 법적으로만 보면 일주일 전 당사자에 해고를 통보한 것은 노동법에 저촉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정치권의 시각이다. 국회의원 보좌진은 국가공무원법상 별정직 공무원에 속한다. 면직 처리 절차는 ‘국회별정직공무원 인사규정’을 따른다. 이에 따르면 국회의원은 직원에 대한 면직요청서를 국회사무총장에 제출하는 것만으로 언제든 자유롭게 해고할 수 있다. 해고 사유에 대한 제한이 없어 보좌진들은 민간노사에 적용되는 근로기준법 등 노동관계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의원실 보좌진들은 노동 권리 중 하나인 연가 사용에도 고충을 토로하고 있다. 연가는 공무원이 휴식을 취해 생산성을 유지할 수 있게 하고, 사생활을 돌볼 수 있는 편의를 제공 받는 공무원의 권리다. 공무원이 정해진 연가를 다 소진하지 못하면 남은 일수는 보상비를 지급하고 있다.
국회 공무원에게 제공되는 연가 일수는 국회공무원 복무규정 제12조에 따라 재직기관별로 산정된다. 1개월 이상 1년 미만 11일, 1~2년 12일, 2~3년 14일, 3~4년 15일, 4~5년 17일, 5~6년 20일, 6년 이상 21일 등이다.
하지만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국회가 공개한 2020년 국회 의원실 보좌진의 연가 사용 현황에 따르면 국회인적자원관리시스템에 연가 신청을 등록한 보좌직원 1인당 연가 평균 사용 일수는 5일 수준이었다. 3년 이상 4년 미만 근무한 보좌진을 기준으로 해도 보장된 연가의 3분의 1 정도밖에 쓸 수 없는 것이다.
국회 사무처 관계자는 “의원 보좌진은 인사 변경이 자주 있다. 21대 국회가 시작하면서 새로 들어온 보좌진도 있다”며 “연가 사용일수를 정확히 통계 내기 어려운 점이 있다”고 해명했다.
국민의힘 소속 의원실 한 보좌관은 “규정에 따라 연가를 10일 넘게 제공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보좌진들 중에는 1년 동안 하루나 이틀도 연가를 못 쓰는 사람들도 많다”며 “이에 보좌진들 사이에서는 ‘의원들은 노동 환경 개선을 위해 일하고 있다고 강조하지만, 정작 밑에 직원들은 눈치 보면서 연가 사용도 제대로 못 한다’는 푸념이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연가를 사용하지 못하는데 연가 보상비조차 다 받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비서관은 “10여 일이 남았다고 해당 일수 모두 받는 것은 아니다. 일정 비율만 인정해 연가보상비가 나온다. 그럼 남은 일수는 일을 했지만 쉰 것으로 보고 보상을 못 받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국회 후문 출입구에서 코로나19 검사를 받고 있는 출입자들. 사진=이종현 기자
일부 의원실의 경우 국회 사무처 지침으로 내려온 재택근무도 눈치를 보며 하고 있었다. 사기업이나 다른 공기업과 마찬가지로 국회 역시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의원실 별로 순환·재택근무를 실시하고 있다. 국회사무처는 각 의원실에 재택근무 인원 3분의 1 의무, 2분의 1은 권고 실시 지침을 내렸다. 이어 재택근무 실시 현황을 매일 일과 종료 전까지 국회사무처 인사과에 제출해줄 것을 요청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은 “국회에서 상임위 준비나 입법 등 해야 할 일이 항상 많다. 아무래도 보좌진이 돌아가며 재택근무를 하면 일의 효율성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라면서도 “정부의 방침에 여당부터 솔선수범해야 한다는 생각에 지침을 따르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일을 하는 보좌진들은 재택근무의 불편함을 호소하고 있다.
하지만 일부 의원실은 재택근무 3분의 1 의무를 잘 지키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중진 의원을 보좌하는 한 비서관은 “소관 기관 담당자가 국회를 찾아오는 경우도 있고, 자료도 국회에 많아 집에서 일을 처리하는 게 더 힘들다. 또한 의원이 내리는 업무지시도 전화보다 직접 얼굴을 보고 받는 게 편하다”며 “그런데 의원은 전화를 해서 ‘집에서 일하니까 편하냐’ ‘혼자 쉬냐’는 등 말을 할 때가 있다. 그럼 의원 눈치에 사무처의 지침을 지키지 않고 국회에 나와 일을 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향후 지침 위반 문제가 될 소지가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앞서의 한 비서관은 “서울 여의도 국회 내 건물은 출입증을 찍어야 출입이 가능하다. 그 기록은 사무처에 다 남는다. 그럼 어느 의원실에 직원 몇 명이 사무실에 들어왔는지가 다 나온다. 사무처에서 그렇게 전수조사를 하게 되면 의무시행 위반 의원실을 잡아낼 수도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