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3일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하면 끔찍한 장면들이 상세히 보도되고 사람들의 분노는 커진다. 하지만 공분이 이는 아동학대 사건 속에 잊히지 말아야 할 것은 이미 세상에 나와 살아가야 하는 아이들의 삶이다.
0세 미만의 영아부터 미취학 아동까지 총 40명의 아이들을 보호 중인 이화영아원은 각기 다른 사연을 가지고 영아원에 입소한 아이들은 이곳에서 생의 초년을 보낸다. 영아원은 ‘보육 시설’이기에 보통의 가정과는 사뭇 다른 환경이지만 이곳에도 ‘엄마’라고 불리는 보육 선생님들이 있고 ‘홈(Home)’이라고 불리는 아이들의 방이 있다.
아이들이 ‘아이의 모습’ 그대로 자랄 수 있도록 노력하는 영아원의 엄마들. 낮과 밤을 나눈 교대근무로 쉴 틈이 없지만 그래도 사랑을 줄 수 있어 행복하다고 말한다.
언젠가 영아원을 떠나갈 아이들이 ‘유년시절의 집’으로 기억하게 될 이곳. ‘자기 앞의 생’을 살아가는 아이들과 기꺼이 그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이들을 만나보았다.
나이 터울이 있는 5명의 아이로 구성되는 하나의 ‘홈(Home)’. 아이들은 같은 선생님을 ‘엄마’라고 부르며 친남매처럼 서로를 닮아가고 때로는 장난감을 두고 다투기도 한다. 일반 가정집의 구조와 흡사한 각각의 ‘홈(Home)’에는 거실과 주방이 있고 아이들이 자는 방과 책을 읽는 서재가 있다.
유행좌 이화영아원 생활지도원은 “일반 가정집에서는 엄마가 주방에서 요리하면 아이들이 냄새를 다 맡잖아요. 아이들 밥 냄새라도 맡을 수 있게 하려고 각 방에서 밥을 따로 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최대한 가정과 같은 환경을 만들어주기 위해 식판 문화를 없앴다는 이들. 반찬만 조리실에서 따로 가져오고 밥은 각 방에서 직접 쌀을 안쳐서 짓는다. 바쁜 일과에 식사 준비까지 추가되어 번거로운 것은 사실이지만 밥 냄새를 맡으며 좋아하는 아이들의 모습에 선생님들은 힘을 낸다.
각 방을 담당하는 주간 선생님은 아이들이 눈 떠 있는 시간 내내 함께한다. 아침에 잠에서 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주 양육자’인 주간 선생님이 ‘엄마’의 역할을 대신한다. 저녁 9시 아이들이 잠들고서야 ‘낮 엄마’는 ‘밤 엄마’에게 인수인계하고 일과를 마친다.
김수현 이화영아원 생활지도원은 “그래, 엄마가 옆에서 잘게, 이러는데 솔직히 그건 거짓말인 거잖아요. 집에 가야 하고 아니면 따로 나와서 하는 거잖아요. 제 업무를”라고 말했다.
‘낮 엄마’는 아이들과 이틀을 함께 보내고 또 다른 ‘낮 엄마’에게 아이들을 맡긴 뒤 이틀간 휴식하고 돌아온다. 주 양육자가 이틀에 한 번씩 바뀌는 셈이다.
퇴근하면서 ‘낮 엄마’는 아쉬워하는 아이들을 달래며 ‘두 밤 자고 올게’라고 약속한다. 엄마들의 교대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곧잘 새로운 ‘낮 엄마’와 하루를 시작하지만 선생님들은 ‘진짜 엄마’가 되어줄 수 없는 현실에 미안한 마음뿐이다.
아이들의 일지를 작성하는 건 선생님들의 주요 업무 중 하나다. 당일 아이들의 건강상태뿐 아니라 함께 했던 놀이, 주고받았던 대화까지도 기록의 대상이다. 개인별 사진첩에는 아이가 처음으로 ‘뒤집기’에 성공했던 순간이나 ‘첫걸음마’를 뗐던 순간의 감동이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다.
아이들의 유년시절을 지켜보는 ‘유일한 목격자’로서 선생님들은 책임감을 느끼고 매 순간을 기록한다. 그렇기에 일과가 끝나고도 일지를 작성하느라 오래 앉아있는 경우가 많다. 공들여 작성한 이 기록물은 아이 일생의 ‘값진 보물’이 되고 아이의 다음 보호자에게는 ‘꼭 필요한 양육정보’가 된다.
한 번에 여러 명의 아이를 돌봐야 하는 강도 높은 ‘육아 노동’을 견뎌내는 영아원의 엄마들. 쉴 틈 없이 이어지는 일과에 지칠 법도 하지만 인터뷰에 응한 선생님들은 “그래도 아이들이 있어서 웃는다”고 응답했다.
유행좌 이화영아원 생활지도원은 “남들이 보기에는 저희가 이 아이들을 사랑해준다고 하잖아요. 근데 그게 아니라 오히려 이 아이들이 저를 사랑해주는 것 같아요”라고 말했다.
때로는 가르치는 것보다 아이들로부터 배우는 것이 더 많다는 이들. 40명의 아이들과 ‘엄마’로 불리는 선생님들이 함께 성장하는 곳 전남 나주 이화영아원에서의 3일을 담아왔다.
한편 내레이션을 맡은 배우 유선은 최근 ‘정인이 사건’의 가해자 엄벌을 촉구하는 진정서를 법원에 제출하는 등 평소 아동보호에 대한 깊은 문제의식을 느껴 본 방송의 목소리가 되어 주었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