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립부터 지원까지 ‘실세 그림자’ 얼씬
▲ <일요신문>이 입수한 ‘특혜지원 의혹’ 서류와 문건. 등기사항전부증명서(문건1)에 자산의 총액이 0원으로 나와 있다. 또한 협회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단체나 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고액의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
민주당은 협회 설립부터 예산 특혜지원까지 여권 실세와 사전교감 의혹을 제기하고 있는 실정이다. 100억대 혈세 특혜지원 논란을 넘어 자칫 대형 권력형 게이트로 비화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일요신문>은 한경협과 현 정부 실세들의 유착 및 특혜 지원 의혹을 뒷받침할 수 있는 각종 서류와 문건을 입수했다. 권력형 게이트 형태를 갖춰가고 있는 한경협 특혜지원 논란 속으로 들어가 봤다.
한경협은 ‘경제교육 활성화’를 목적으로 2008년 12월 11일 기획재정부에 비영리사단법인 설립허가 신청을 낸 뒤 나흘(12월 15일) 만에 설립허가를 받았다. 한경협이 설립된 지 50여 일 만인 2009년 2월 6일 정부는 이 단체를 지원하는 법률(경제교육지원법)을 제정했다. 기획재정부는 2009년 5월 8일 ‘경제교육 주관기관’을 공모했고, 5월 22일 한경협이 주관기관으로 선정됐다. 이후 한경협은 2009년과 지난해 각각 10억 7000만 원과 80억 4000만 원 등 두 해에 걸쳐 모두 91억 1000만 원의 정부예산을 지원받았다. 또 내년에는 정부 예산이 100억 원이나 배정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협회 설립허가 신청→ 설립허가→ 협회 지원을 위한 법률 제정→ 90억대 예산 지원→ 내년 예산 100억 원 배정 등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일사천리로 예산이 집행된 모양새다.
하지만 협회 설립 과정에서부터 예산지원 과정을 세밀히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구석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협회 설립을 주도한 인사들이 현 정권 실세들과 밀착관계에 있다는 사실은 특혜 지원 의혹을 부추기는 핵뇌관으로 작용하고 있다.
▲ 충정로2가에 위치한 한국경제교육협회.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하지만 기본재산목록(자본금)이 ‘0원’이고 출연약정서가 없는 단체는 한경협이 유일하다. 실제로 한경협은 필수제출 서류인 기본재산목록에 ‘재산 없음’(문건1)으로 제출했지만 기재부는 “법령상 설립허가 기준을 충족했다”는 상식 밖의 결정을 내렸다. 설립허가 과정부터 ‘짜고친 고스톱’이 아니냐는 의혹의 시선이 쏠리고 있는 이유이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인 이용섭 민주당 의원은 10월 4일 기획재정부에 대한 국감에서 “정부가 경제교육지원법이 통과되기 두 달 전부터 한경협을 경제교육 주관기관으로 선정할 것을 결정했다”며 “모두 3개 단체가 공모에 참여했으나 내부적으로 선정을 해 놓은 상태여서 나머지 2개 기관은 들러리 역할만 했다”고 주장했다.
한경협 정관에 중앙부처 1급 공무원을 당연직 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돼 있는 것도 석연치 않다. <일요신문>이 확보한 한경협 정관에 따르면 중앙부처(기획재정부, 교육과학기술부, 지식경제부, 노동부, 금융위원회, 공정거래위) 1급 공무원을 당연직 이사로 선임하도록 규정돼 있다. 지난 7월 현재 한경협의 당연직 이사에는 기재부 박철규 실장, 공정위 지철호 국장, 교과부 이원근 국장, 금융위 정지원 국장, 노동부 조재정 실장이 선임되어 있다. 기재부의 감독을 받는 비영리법인이 감독기관의 고위직 인사뿐 아니라 주요 부처의 고위 공무원들을 당연직 이사로 선임한다는 정관을 갖고 있는 단체는 그 선례를 찾기 어렵고 매우 이례적이다. 이에 대해 이용섭 의원은 “누군가의 힘이 작용하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라며 여권 실세 등 배후 의혹을 강하게 제기하고 있다.
회원사의 회비 납부 과정에서도 외압 의혹이 불거지고 있다. 한경협은 협회 활동과 직접 관련이 없는 단체나 기업들이 회원으로 참여해 고액의 회비를 납부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일요신문>이 입수한 한경협의 2009년 회비 납부 현황(문건2)에 따르면 전경련, 대한상의, 한국무역협회, 포스코는 각각 1억 원의 회비를 납부했다. 또 금융투자협회 6500만 원, 예금보험공사와 KT는 각각 5000만 원, 손해보험협회와 생명보험협회는 각각 3500만 원, 여신금융협회 3000만 원, 상호저축은행중앙회 1000만 원 등 모두 7억 4000만 원의 회비가 한경협에 납부된 것으로 확인됐다.
정권 실세의 측근이 주도하고 감독기관의 고위공무원들이 당연직 이사로 포진하고 있는 만큼 단체나 기업들이 ‘울며 겨자먹기’식으로 한경협에 회비를 내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구심이 이는 대목이다. 특히 한경협은 공기관인 예보 측에 회비 납부 요청서(문건3)를 보낸 것으로 확인돼 회비 납부를 둘러싼 외압 논란도 확산될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특혜 지원 의혹의 핵뇌관은 한경협 설립 및 운영 과정에 현 정권 실세들이 직간접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경협 설립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 인사는 협회 사무총장인 박상득 씨다. 그는 ‘매리어트 호텔 모임’이 문제가 돼 사퇴한 정인철 전 청와대 비서관과 특수 관계에 있다. 정 전 비서관은 90년대부터 능률협회에서 수석컨설턴트와 사업개발실장으로 일했고, 박 총장은 이곳에서 국제사업팀장을 지냈다. 2000년에 만든 벤처기업 ‘한경핫벤처’에서 정 전 비서관은 대표이사, 박 총장은 관리이사를 맡았다. 정 전 비서관이 청와대에 입성하기 직전까지 운영한 ‘KP&MC 한국경영자문’에서도 박 총장은 감사를 맡은 바 있다.
정 전 비서관과 정권 실세로 통하는 박영준 지식경제부 2차관은 이명박 대통령의 대선 사조직인 ‘선진국민연대’ 출신으로 두 사람은 정치적 동지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협회의 초대 회장은 황영기 전 KB금융그룹 회장이 맡았고, 지금은 이석채 KT회장이 맡고 있다. 이 회장은 ‘매리어트 모임’ 멤버로 현 정권 실세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 한경협의 고문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이자 정권 실세로 분류되고 있는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이다. 곽 위원장도 박영준 차관과 친밀한 관계인 것으로 알려졌다. 1억 원의 회비를 납부한 포스코의 정준양 회장은 지난해 3월 회장 취임 과정에서 박영준 라인의 측면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이용섭 의원은 “한경협은 정권 실세의 비호 아래 탄생부터 현재까지 숱한 의혹을 뿌리고 있다”며 “감사원 감사를 통해 국민적 의혹을 밝히고 지난 2년 동안 협회에 지원한 예산의 즉각 환수조치와 함께 내년 예산 100억 원 역시 전액 삭감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회 기획재정위 소속인 전병헌 민주당 의원도 “협회 설립 당시 과정과 의사결정권자의 면면을 보면 영포회 등의 국정농단 인맥에 의한 특혜라고 볼 수밖에 없다”며 “협회가 지난 2년 동안 90억 원 이상을 들여 온오프라인 교육을 시행했으나 수혜자는 7000여 명에 불과할 정도로 효과가 없는 돈먹는 하마로 전락했다”고 비판했다.
한경협에 대한 의혹이 쏟아지자 윤증현 기재부장관은 “취임 전 일이라 진상을 정확히 파악해 추후 답변하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대신 임종룡 기재부 1차관은 “입법 과정에서 법령과 절차에 따라 한경협이 주관기관으로 지정된 것”이라며 “한경협에 배정된 예산도 근거 없이 사용된 것이 아니다”고 해명했다.
홍성철 기자 anderia10@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