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KBS 다큐멘터리 3일
사람들은 양말을 신으며 아침을 연다. 그렇게 시작된 하루는 양말을 빨래 바구니에 벗어던지며 마무리된다.
알록달록한 캐릭터 양말, 정갈한 줄무늬 양말, 매끈한 무지 양말. 그 종류도 다양해, 취향 따라 계절 따라 골라 신을 수 있는 양말은 어디에서 오는 걸까.
놀랍게도 서울 한복판이다. 대한민국 양말의 절반가량은 서울 도봉구에서 생산된다. 한적한 주택가 희미한 기계 소리를 쫓아 지하로 내려가면 양말 탄생의 순간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의 가는 길을 따라 함께 걷는 양말. 제작진은 양말을 만들기 위해 오늘도 발붙인 자리를 뜨지 않는 양말 공장 사람들을 만났다.
시장에 가면 트럭에서 양말 묶음을 헐값에 파는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하지만 값싼 양말이라고 쉽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둘둘 말린 실타래가 한 켤레의 양말이 되기까지는 적어도 5번의 공정과정을 거쳐야 한다.
양말 생산의 첫 순서인 양말 편직 공장. 24시간 쉬지 않고 돌아가는 편직 기계에서 원사가 토시 형태로 짜여 나오면 그 뒤로 앞코를 꿰매고, 뒤집고, 다림질하여 포장하는 과정이 이어진다. 여기에 정교한 자수까지 들어가면 그 과정은 더욱 길어진다.
기술이 발전했지만 양말 생산에는 여전히 사람의 손길이 필요하다. 따뜻한 양말 한 켤레에는 양말 공장 사람들의 뜨거운 노고가 담긴다.
이들이 있기에 ‘Made in KOREA’ 양말은 ‘명품’으로 인정받는다.
달인의 손끝에서 양말은 눈 깜짝할 새 뒤집혀 제 모양을 찾는다. 이렇게 양말 뒤집듯 인생도 좋은 방향으로 뒤집을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소년 시절에 상경하여 먹고 살기 위해 기술을 배웠다는 강기억 씨. 수십 년이 흘러, 그는 양말 편직 공장의 사장이자 삼 남매의 아빠가 되었다.
남 부럽지 않아 보이지만 실상 그렇지만은 않다. 낮은 양말 단가와 날이 갈수록 높아지는 인건비에 그는 어떤 일도 마다할 수 없다.
비단 강기억 씨의 공장만의 사정은 아니다. 국내 양말 제조업은 길고 긴 몸살에 시달리고 있다. 값싼 중국 양말이 들어오며 가격경쟁은 불이 붙었고 코로나19의 여파로 수출길이 막혀 내수 시장은 이미 포화상태다.
대부분 소규모 양말 공장의 공장장들이 전천후 근로자가 된 이유다.
하지만 이들은 양말을 놓지 않는다. 강한 압력으로 양말 주름을 펴듯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구겨진 마음을 다잡는다.
햇빛 한 줄기 들어오지 않는 지하 기계 소리에 대화조차 하기 힘든 이곳에서 온종일 일하는 사람들. 수고로운 업무, 열악한 작업 환경이지만 이들은 여전히 양말을 사랑한다. 도봉구에서 만드는 양말이 최고라고 믿는다.
그렇기에 도봉구 양말 공장 사람들은 오늘도 양말 바짝 끌어 올리고 힘차게 달려나갈 내일을 준비한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