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픽카드 품귀, 채굴기 두달 새 두배 껑충…업계 “2018년 악몽 기억해야, 신규 진입 비추”
유튜브 채널 ‘채굴TV’를 운영하는 장재윤 씨의 말이다. 그는 2017년부터 채굴업계에서 일해 왔다. 지난해 말부터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암호화폐(가상화폐)가 무서운 기세로 상승하면서 채굴업 관심도 폭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 암호화폐 가격이 폭등하면서 채굴기에 대한 관심도 늘어나고 있다. 컴퓨터 이미지로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없다.
대부분의 암호화폐는 탈중앙화가 핵심이다. 탈중앙화된 암호화폐는 중앙집중적인 방식 대신 분산화돼 있다. 중앙집중돼 있지 않기 때문에 운영할 주체가 없다. 그래서 탈중앙화된 블록체인 네트워크를 운영하기 위해 연산 과정을 도와주는 것을 ‘채굴’이라고 부른다.
채굴업자는 네트워크 운영을 돕는 대가로 암호화폐를 받는다. 예를 들어 비트코인은 10분에 한 번씩 새로운 블록을 생성한다. 블록 생성을 성공한 사람에게는 보상으로 비트코인이 지급된다.
이 블록 생성을 위해서는 연산 작업을 처리해야 하는데 연산 난이도가 워낙 높아 일반적인 PC로는 불가능에 가깝다. 또한 CPU보다는 그래픽카드(GPU)가 연산이 압도적으로 빨라 그래픽카드 여러 개를 붙여 채굴기를 만든다. 전문적인 채굴업자는 이런 채굴기를 한 곳에 수백, 수천 대 가져다 놓고 채굴장을 운영하기도 하고 부업처럼 그래픽카드 6개나 8개로 만든 채굴기 1대를 집에서 돌리는 경우도 있다. 한국에서 채굴하는 거의 모든 채굴장은 이더리움을 채굴한다.
이 채굴기는 전기를 엄청나게 소모하고 발열도 심하다. 장재윤 씨는 “겨울에도 사무실에 난로가 없다. 올겨울에도 사무실에 채굴기 3대를 돌렸을 뿐이다”라고 말했다. 6개 그래픽카드를 단 채굴기 1대가 소모하는 한 달 전기료는 10만 원대다.
올 들어 채굴기 관심이 엄청난 이유는 한 마디로 돈이 되기 때문이다. 장 씨는 “최근 들어 그래픽카드 값이 엄청나게 오르고 있어 2개월 전에 400만 원에서 500만 원 선이던 채굴기 1대 가격이 현재 900만 원선에서 거래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더리움 가격이 유지된다는 가정 하에 8~10개월 정도면 전기료를 포함해 투자비를 회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장 씨는 “특히 사실상 전기만 꽂으면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에 그냥 자고 일어나면 돈이 들어오는 상황이다. 그래서인지 채굴기에 관심이 엄청나다. 약 2개월 전만 해도 하루에 문의 전화가 한 통 올까말까 했다. 지금은 하루에도 수십 통씩 오고 있다. 그런데도 그래픽카드를 구할 수가 없어 채굴기를 팔 수가 없다. 과거 예약했던 분들만 그래픽카드를 구하는 대로 판매를 하고 있고 현재는 예약도 받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은 닥치는 대로 사들이고 있는 채굴업체 때문이다. 그래픽카드 품귀 현상에 판매하는 총판이 갑질을 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그래픽카드 업계 관계자는 “총판에서 고사양 그래픽카드인 3070 시리즈 10개를 120만 원에 가져가려면 일반적으로 잘 판매되지 않는 키보드도 500개 가져가야 한다는 조건을 내세우기도 했다”고 말했다.
장재윤 씨가 운영하는 채굴장 모습. 사진=장재윤 씨 제공
장 씨는 “채굴업은 전기만 꽂아두면 딱히 신경 쓸 것도 없고 처음 세팅도 어렵지 않다. 퇴직한 분들에게 전화가 많이 오는 것도 그런 이유가 있으리라 본다. 어려울 건 없지만 암호화폐가 뭔지도 모르면 공부하고 오라고 한다”고 말했다.
채굴기에 투입된 그래픽카드는 워낙 혹사당하기 때문에 부품 수명이 금세 줄어든다고 한다. 그래도 그래픽카드 무상 수리 기간이 3년이기 때문에 3년 이상은 보장된다고 볼 수 있다. 다만 새로운 성능 좋은 그래픽카드가 투입되면 채굴 경쟁에서 밀리기 때문에 조금씩 효율이 떨어지는 현상이 일어난다.
2017년 일반적으로 판매된 채굴기 가운데에 지금은 쓸 수 없는 기종도 있지만 쓸 수 있는 기종들도 있다. 현재 이더리움 가격이 워낙 높아 2017년 운영 가능한 채굴기도 전기료 이상은 뽑을 수 있어 현역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한다. 다만 몇 년 뒤까지 유지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다.
장 씨는 위험성도 경고했다. 장 씨는 “다만 채굴기를 구매하는 사람에게는 경고도 꼭 한다. 과거처럼 이더리움이 다시 끝없이 폭락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하고 그래픽카드 거품도 꺼져 프리미엄 붙여 산 부품 값이 반토막 날 수도 있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고 미리 설명한다”고 말했다.
현재 PC방에서도 남는 컴퓨터로 채굴기를 돌리고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PC방이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직격탄을 맞으면서 자리가 비는 경우가 많자 그 시간에 채굴업을 부업처럼 하는 것이다. 컴퓨터 1대에 그래픽카드 1개씩 들어가기 때문에 그래픽카드를 6개, 8개씩 단 채굴기에 비하면 효율이 좋지 않다. 그럼에도 현재 전기료의 5배 이상 벌 수 있다고 한다.
올해부터 암호화폐 폭등장을 맞으면서 채굴기에 대한 관심이 뜨겁지만 이런 분위기는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2017년 비트코인 폭등 때도 있었다. 2017년 연말과 2018년 연초 국내 거래소에서 비트코인은 2700만 원, 이더리움 가격은 200만 원 중반까지 치솟았을 때도 채굴기에 대한 관심이 집중됐었다.
당시 채굴기 가격은 400만 원 안팎에서 시작해 점점 올라 600만 원 이상 뛰었는데 높아지는 가격에도 채굴기를 사기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채굴기 때문에 그래픽카드 품귀현상이 일어났고 돈이 있어도 못 사는 상황이 연출됐다. 사기도 많았다. 채굴기를 팔겠다면서 안에 탑재된 그래픽카드 사양을 속인다거나 돈만 받고 잠적하는 일도 있었다.
상황은 2018년 반전됐다. 이더리움 가격이 10분의 1토막, 20분의 1토막까지 나면서 채굴로는 전기세료도 감당이 안 되는 상황이 됐다. 채굴기에 쓰였던 그래픽카드는 다시 시장으로 쏟아져 가격도 폭락했다. 채굴기를 위탁 운영하겠다며 돈을 받았던 업체는 전기료를 못 내 운영도 중단됐고, 채굴기가 방치되기도 했다.
당시 채굴업체에 돈을 맡겼던 투자자는 “채굴장에 가보니 전기료를 못 내서 전기가 끊겼고, 채굴기 부품비도 안내서 부품 업체에서도 압류가 걸려 있었다”면서 “채굴기를 가져와 팔려고 하니 부품값이 너무 떨어져서 남는 게 없었다”고 말했다. 다시 한 번 2018년 일이 반복되지 않으리란 법도 없다. 장재윤 씨도 “지금 채굴 시장에 진입하는 걸 추천하진 않는다”면서 “최근 채굴기를 두고 사기가 많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어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김태현 기자 to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