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회사 여직원 13명이 삼겹살집 사장에 당했다
이 씨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은 모두 10여 명. 이 씨는 이들 여성들과 동시에 교제했지만 피해자들은 검찰조사가 시작되기 전까지 이 씨의 문어발식 교제는커녕 대부분 피해사실조차 전혀 모르고 있었다고 한다. 사건 담당 검사를 통해 다 쓰러져 가는 삼겹살 가게 하나로 대기업 여직원 다수를 홀린 이 씨의 사기행각 속으로 들어가 봤다.
대전 골목길에 위치한 작은 규모의 삼겹살 가게. 한창 붐벼야 할 저녁시간에도 몇 년째 한산할 정도로 장사가 안 되는 가게였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가게 주인인 이 씨는 남부럽지 않은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그는 영업시간이 끝나면 고급 외제차에 명품 의류를 입고 유흥가를 활보하곤 했다. 그의 계좌에는 일반 직장인이 평생을 벌어도 모으기 힘든 20억 원이 저축돼 있었다. 그러나 그가 돈을 벌 수단이라곤 오직 장사가 잘 되지도 않는 삼겹살 가게 하나뿐이었다. 그는 어떻게 해서 이렇듯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었을까.
2005년 사기행각이 발각돼 실형을 살고 나온 이 씨. 작은 규모의 삼겹살 가게를 개업해 새로운 삶을 살리라 다짐했다. 그러나 기대만큼 가게 수입이 넉넉지 못했고 차츰 가게를 유지하는 것조차 어려워졌다. 삼겹살 가게가 기울어질수록 정직하게 돈을 벌어보겠다는 이 씨의 다짐도 조금씩 허물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는 자신의 특기(?)를 되살리고야 만다.
처음 범행 대상은 대전에 정착한 후 알게 된 연인 A 씨였다. 당시 A 씨는 S 사 LCD 공장에서 교대근무를 하고 있었다. 이 씨는 연인 A 씨에게 “삼겹살 가게를 운영하며 체인점을 하나 더 낼 정도의 재산을 모았다. 투자금 8000만 원 정도만 낸다면 체인점 운영권을 맡기겠다”고 감언이설로 유혹했다. A 씨는 그 정도의 여유자금이 없다고 거절했다. 하지만 이 씨는 S 사 직원의 신용이면 은행대출을 쉽게 할 수 있을 것이라며 대출해서라도 투자를 하라고 회유했다. A 씨는 결국 이 씨의 꼬임에 넘어가 은행 대출을 받아 이 씨가 요구한 투자금을 건네주고 말았다.
A 씨를 상대로 한 첫 사기행각이 성공하자 이 씨는 같은 방식으로 다른 피해여성들에게 접근했다. 우선 A 씨와 교제하면서 얻은 정보로 S 사 생산직 여사원들이 자주 가는 바, 호프집, 나이트클럽 등을 파악했다. 입담은 물론 용모가 뛰어났던 이 씨는 피해여성들의 단골 가게를 들락날락하며 잘나가는 요식업계 젊은 사장인 양 행세했다. 첫인상을 좋게 심어 준 후 무리 중 몇몇 여성을 골라 따로 연락을 취했다. 그러다 관계가 깊어지면 투자금을 요구하고 그 대가로 체인점 운영권을 넘겨주겠다고 유인했다. 돈을 건네받은 후엔 “시기나 질투를 받을 수 있으니 다른 직원들에겐 체인점 투자 건이나 운영권 등에 대해 얘기하지 마라”고 하면서 피해여성들의 입을 막았다.
그러나 가장 먼저 이 씨를 알고 지낸 A 씨는 몇 달 후 그의 문어발식 애정행각을 눈치챘다. 그렇지만 이 씨는 특유의 처세술과 감언이설로 위기를 넘겼다. 이 씨는 A 씨에게 모든 사실을 털어 놓으며 “결국 돈 때문에 여성들에게 접근한 것뿐이다”며 “정말 사랑한 사람은 당신뿐이다”고 용서를 구했다. 이 씨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A 씨는 이후 공범자로 전락하고 만다.
A 씨는 이 씨의 가게에서 동거하며 자신의 친구들까지 피해자로 만들었다. 이 씨의 삼겹살 가게에서 친목모임을 가진 뒤 이 씨를 소개하며 체인점 투자 건에 대해 거짓말을 늘어놓았다. A 씨는 “이 씨가 이 곳 말고도 두 곳의 삼겹살 가게를 더 운영하고 있으며 ‘참숯 황토 삼겹살’ 등의 브랜드로 체인점을 전국으로 확장할 계획이다”고 말한 뒤 자신도 이 씨에게 투자해 매달 월급 이상의 이자를 받고 있다고 속였다. 잘 아는 친구가 나서서 거들자 여성들은 쉽게 속아 넘어 갔고 매달 이자를 준다는 말을 믿고 이 씨의 계좌로 송금했다.
이 씨에게 속은 여성은 모두 13명으로, 총 20억여 원의 돈이 이 씨 계좌로 송금됐다고 한다.
위태위태했던 이들의 사기행각은 피해여성 중 한 사람인 B 씨가 의심을 하면서 마침표를 찍게 된다. 사기행각이 들킬까 노심초사하던 두 사람은 올해 초 가게를 처분한 뒤 연락을 끊고 잠적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B 씨가 한 발 먼저 경찰에 신고하면서 덜미를 잡혔다. 체포 직후 범행 사실을 완강히 부인하던 두 사람은 삼겹살 가게 하나로 10명이 넘는 여성에게 공증을 선 정황이 밝혀지고, 계좌 추적으로 20억 원의 물증이 드러나자 결국 서로를 탓하며 혐의사실을 인정했다.
10월 25일 기자와 통화한 대전지검 천안지청 형사3부 부장검사는 “조사하면 할수록 피해여성들이 늘어나고 있다. 여성들 중에는 심지어 이 씨와 결혼을 약속했고, 아이를 임신했다고 토로하는 이들도 여럿 됐다”며 이 씨의 뻔뻔한 행각에 혀를 내둘렀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