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권 실세들이 ‘썩은 동아줄’ 노릇
▲ 지난 10월 21일 대검찰청 중앙수사부 수사관들이 서울 장교동 C&그룹 본사를 압수수색해 회계장부와 컴퓨터 하드디스크 등을 검찰로 옮기고 있다. 연합뉴스 |
의욕적으로 출발했던 중수부의 C&그룹 수사는 최근 주춤한 상태다. 6개월 이상 내사를 거쳐 시작한 수사치고는 속도가 느리다는 게 검찰 안팎의 평이다. 중수부는 임 회장 개인 비리에 대해서는 혐의 입증을 자신하고 있지만 정·관계 로비 부분은 좀 더 신중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중수부의 한 관계자는 “임 회장이 계열사를 통한 돌려막기 등은 인정하고 있는데, 횡령이나 정치권 로비는 부인하고 있다. 그래서 좀 더 많은 증거를 찾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고 귀띔했다.
김준규 검찰총장은 중수부의 ‘에이스’ 격인 중수1과를 C&그룹 수사에 투입해 로비부분을 전담시켰다. 당초 중수1과는 다른 대기업들에 대한 내사를 진행 중이었는데 C&그룹 사건이 뜻대로 풀리지 않자 합류한 것이다. 중수부는 G20 정상회의가 끝나면 본격적으로 정치권을 겨냥할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중수부는 여권 인사들이 연루된 의혹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수사하고 있다고 한다. 앞서의 중수부 관계자는 “지금 정치권과 몇몇 언론에서 표적수사라며 비난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또다시 중수부 폐지론이 거론되지 않았느냐”면서 “실무진을 중심으로 ‘여권 실세들도 수사해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고, 이에 대해 고위급 간부들이 공감했다. 수사 결과를 지켜보면 알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여기에 최근 검찰이 국무총리실 민간인불법사찰 의혹에 대해 부실수사를 했다는 지적이 나온 이후 중수부는 성역 없이 수사를 진행한다는 ‘원칙론’을 강조하고 있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검찰 내에서는 임 회장과 친분이 있는 3~4명의 여권 유력 인사들이 C&그룹 수사의 직격탄을 맞을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중수부는 임 회장이 정권 출범 이후 위기에 빠진 회사를 살리기 위해 이들과 접촉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수부 사정 리스트에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는 여권 인사 중 한나라당 소장파 A 의원은 2008년 이후 임 회장과 여러 차례 만난 것이 포착됐다고 한다. A 의원과 임 회장은 이미 10여 년 전부터 친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둘은 한때 같은 아파트에 거주했던 것으로도 확인됐다. 중수부는 A 의원이 C&그룹에 대해 특혜대출을 해준 것으로 내사를 받고 있는 우리금융지주의 한 전직 고위 임원 H 씨를 임 회장에게 소개해줬다는 첩보를 입수, 이를 확인 중이다. H 씨 친동생은 청와대와 정부부처(차관)를 거쳐 지난 6·2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 후보로 출마한 바 있다. 정치권에선 이 과정에서 A 의원이 후원을 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중수부는 임 회장이 A 의원에게 어떠한 ‘청탁’을 했는지, 또 그것이 과연 ‘성공한 로비’였는지를 면밀히 살펴보고 있다고 한다. 검찰청사가 위치한 서초동과 여의도에선 G20 회의가 끝나고 난 뒤 중수부가 소환할 첫 번째 여권 인사로 A 의원을 꼽는 이들이 적지 않다.
중수부는 임 회장이 A 의원뿐 아니라 또 다른 여권 인사들에게도 로비를 시도했을 것으로 보고 이에 대한 확인에 나섰다. 이미 중수부는 내사 단계에서부터 2008년 이후의 임 회장 행적을 쫓았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C&그룹 수사가 지난 정권을 겨냥하고 있을 것이란 관측이 나오자 검찰 측이 “뚜껑을 열어봐야 안다”며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던 것도 이런 배경에서 이해해야 할 듯하다. 중수부 관계자는 “임 회장 개인 비리는 종착점이 아니라 시작일 뿐이다. 어차피 우리가 손을 댄 이상 정치권으로 확대할 수밖에 없다”면서 “C&그룹이 국민의정부와 참여정부에서 급성장했던 과정과 현 정권에서 구명로비를 했다는 의혹 둘 다를 보고 있다. 검찰로서는 후자 쪽에 더욱 관심이 많다”고 털어놨다.
현재 중수부는 B 장관과 한나라당의 한 전직 의원이 임 회장의 ‘로비 대상’에 올라 있었던 정황을 파악해 놓은 상태다. 검찰에 따르면 B 장관은 지난 2001년부터 임 회장과 알고 지낸 사이라고 한다. C&그룹의 한 고위관계자는 “정권이 바뀌고 난 이후 임 회장이 B 장관과의 친분을 과시한 적이 몇 번 있다. 회사 내에서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안다”고 전했다. 중수부는 B 장관과 임 회장이 2008년 3~6월 사이에 만났다는 첩보도 입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C&그룹 계열사들이 잇달아 상장폐지되는 등 회사가 어려운 시기에 왜 임 회장이 B 장관을 접촉했는지를 확인 중이고, 조만간 이에 대한 해명을 B 장관 측에 요구할 방침이다. 구속 수감 중인 임 회장은 B 장관을 통한 로비 부분에 대해서 강하게 부인했던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또한 <일요신문> 취재 결과, 임 회장은 자신이 깊숙이 관여했던 한 사단법인을 통해서 한때 여권 내 ‘최고 실세’로 불렸던 전직 의원 C 씨를 후원했던 것으로도 드러났다. 이 단체는 지난 2002년 C 전 의원이 개최한 ‘후원의 밤’ 행사에서 회원들에게 계좌번호를 알려주며 적극 참여를 유도했다고 한다. 사단법인의 한 관계자는 “후원회 일시, 후원방법, 계좌 등을 회원들에게 알려줬다. 실제로 몇몇 회원들은 후원금을 냈던 것으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중수부 역시 임 회장이 C 전 의원을 상대로 ‘구명로비’를 펼쳤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중수부 관계자는 “호남 출신인 임 회장이 영남의 ‘실력자’였던 C 전 의원에게 접근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정권 초 실세로 떠올랐던 C 전 의원이 C&그룹의 몰락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확인해볼 것”이라고 밝혔다.
C 전 의원 이외에도 임 회장은 2000년대 초부터 경남지역 ‘인맥’을 넓히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 결과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던 C&그룹은 지난 2004년 대구에 진출해 우방건설을 인수할 수 있었다. 특히 이 과정에서 부산지역 정·재계에서 ‘마당발’로 통하는 김 아무개 씨가 큰 역할을 했다고 한다. 부산 명문인 경남고등학교를 졸업한 김 씨는 2001년부터 2008년까지 C&그룹 비상근 고문 역할을 맡아 임 회장의 ‘경남 공략’ 첨병 역할을 했다. 김 씨는 1990년대엔 한나라당 당직자를 역임하기도 했다.
중수부는 김 씨가 임 회장에게 경남지역 유력 인사들을 소개해줬다는 진술들을 확보한 상태라고 한다. 또한 김 씨가 이 대통령 ‘평생지기’로 알려진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의 고등학교 후배라는 점을 감안, 임 회장과 천 회장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는 데도 주력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처럼 검찰이 여권 인사들을 향해 수사망을 좁히자 정치권의 긴장감도 고조되고 있다. ‘독’이 오른 중수부 칼날이 어디로 향할지 예측하기 힘들기 때문. 그동안 야권은 중수부가 ‘표적수사’를 하고 있다며 비난해왔는데, 여권 실세들이 ‘리스트’에 올라 있는 상황에서 이러한 방어논리는 설득력을 얻기 힘들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중수부는 C&그룹으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야권의 일부 386 의원들은 물론,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가까운 친척과 여권 비주류 친박계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 2007년 감사원은 ‘농협중앙회가 C&그룹에 대해 부당한 대출을 해줬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청와대에 올린 바 있다. 당시 청와대 민정팀이 이를 조사했고, 노 전 대통령의 가까운 친척이 여기에 관여한 정황을 파악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중수부 관계자는 “왜 (당시) 청와대가 감사원 보고서를 조사하고도 덮었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는 것은 맞다. 대출과정 등에 대해 수사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다”고 전했다. 다만, 검찰은 고 노 전 대통령 친척이 연루됐을 경우 파장을 고려해 최대한 신중하게 수사를 진행할 것이라고 한다.
그동안 검찰의 대기업 사정에서 한 발 비켜서서 지켜봐오던 친박 진영에서도 이번 수사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C&그룹과 관련,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 측근 의원 두 명의 실명이 거론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한 친박 의원은 “G20 회의가 끝나면 중수부가 여야 가릴 것 없이 정치인들을 부를 것이란 소문이 파다하다”면서 “여의도에 대형 게이트가 촉발될 것 같다”고 내다봤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