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KBS1 다큐온
2017년부터 2021년 봄까지 5년 동안 기록한 시화습지의 수리부엉이와 수달의 혹독한 겨울나기를 공개한다.
환경오염의 대명사였던 시화습지가 생명의 땅으로 거듭나고 있다.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수리부엉이와 수달은 우리나라에서 서식밀도가 가장 높은 곳으로 밝혀졌다.
과거 바다였던 초지와 해안절벽은 수리부엉이의 먹이터와 둥지 절벽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물 정화를 위해 조성한 안산갈대습지는 잉어, 참게, 숭어 등 수 많은 먹잇감을 제공해 수달을 불러들였다.
한겨울에 번식에 나서는 수리부엉이와 하천이 꽁꽁 언 가운데서 먹이사냥을 하는 수달의 겨울나기를 중심으로 그 생존전략을 공개한다.
경기도 시흥, 화성, 안산에 걸쳐 있는 시화호는 1994년 시화방조제가 완공되면서 조성된 인공호수다. 바다로 흐르는 물길이 막히면서 시화호는 죽음의 호수가 되었고 국내 환경오염에 대한 관심을 촉발한 계기가 됐다.
이후 물길을 트면서 썩었던 시화호는 되살아나기 시작하였다. 또 방조제 공사로 육지화한 일부 지역이 공단(MTV)으로 바뀌기도 하였지만 수많은 초지와 호수가 생겨나면서 다양한 동식물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시화습지 일대는 매년 큰고니, 큰기러기, 오리류 등 28만 마리가 월동하는 국내 최대 철새월동지 중 하나로 부상했다. 인간은 자연을 파괴하였지만 자연은 스스로의 복원력으로 과거와는 다른 새로운 지형을 만들어냈고 그곳에 새로운 생명들이 하나둘 깃들기 시작했다.
시화습지(시화호, 대송호수, 시화초지, 안산갈대습지 등)에서 가장 주목받는 곳은 시화초지이다. 과거 갯벌이었다가 띠, 산조풀을 비롯한 육지식물(아직도 퉁퉁마디, 칠면초 등 일부 염생식물이 과거의 소금기를 자양분삼아 자라고 있다)이 대평원을 뒤덮고 있다. 초지 옆으로는 과거 해안절벽이었던 곳은 수리부엉이를 위한 둥지장소를 제공해 수많은 수리부엉이가 몰려들었다.
시화습지와 그 주변까지 포함하면 16개 이상의 둥지가 형성됐다. 초지와 크고 호수에 다양한 물새들(흰뺨검둥오리, 청둥오리, 큰기러기 등)이 연중 서식하면서 수리부엉이의 먹이원이 되어준 것이다. 시화습지를 연구한 신동만 박사(담당 PD)에 의하면 둥지간 거리가 2km도 되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그만큼 먹이원이 풍부하고 둥지용 절벽이 많다는 뜻이다. 또 쥐, 토끼 등 포유동물이 먹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일반 수리부엉이와는 달리 시화습지의 수리부엉이는 조류가 생물량의 약 80%를 차지한다는 점도 밝혀졌다. 이러한 풍부한 조류먹이가 시화습지의 번식성공률의 상대적 증가를 가져왔다고 한다.
수리부엉이는 우리나라의 기온이 가장 많이 내려가는 12~1월에 번식에 들어가는데 이러한 가장 빠른 번식전략을 구사할 수 있었던 배경과 그 생존전략을 밝혀내는 것이 본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수리부엉이의 몸을 보면 부리, 눈, 발톱을 제외한 모든 부분은 털로 덮혀 있다. 이는 한겨울에 효과적으로 적응하려는 진화이다.
더구나 날개편길이가 1.7m로 우리나라에 서식하는 새 중 가장 큰 야행성 조류인 수리부엉이는 적막한 밤 사냥을 할 때 바람에 부딪히는 마찰음을 제거하기 위해 소리 나지 않는 신체구조를 발달시킨 것이다. 야간에 훤히 볼 수 있는 뛰어난 시력과 입체적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비대칭적 귀 구조는 덤이다. 7년간의 수리부엉이 연구를 바탕으로 장기간 제작됐기 때문에 프로그램의 완성도가 배가되었다고 할 수 있다.
한때 국내 지역적 멸종 우려를 낳았던 수달이 시화의 상류인 안산갈대습지에 보금자리를 틀었다. 8년 전 처음으로 목격되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5km 구간에 최소 24마리, 7~8쌍이 이곳에 서식하는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이 또한 서식밀도가 아주 높은 편이다. 원래 갈대습지는 시화호로 흘러들어가는 물의 수질 정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인공습지다. 지금은 탐방객이 출입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달의 개체수가 늘어나고 있는 추세인데, 이는 잉어, 숭어, 참게 등 먹이가 풍부하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다. 게다가 안산시에서 수달을 위한 다양한 시설(쉼터, 은신처 등)을 제공함으로써 안정적인 번식이 가능해진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한겨울에는 습지와 하천이 얼어붙는 경우가 허다한데 얼음구멍을 통해 효과적으로 사냥하고 있는 모습이 생생하게 포착됐다. 또한 인공둥지를 이용하고 풀을 이용해 추위를 피하는 행동도 화면에 담았다.
국리문화재연구소 강정훈 박사는 “수달이 2중 털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혹한의 추위를 견딜 수 있다”고 강조한다. 수달의 겨울 둥지, 물고기 사냥 등은 물론이고 놀이를 좋아하는 수달의 행동 특히 눈 위에서 자기들만의 신나는 놀이를 하는 모습이 귀엽고도 실감나게 포착돼 겨울나기의 진수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
인간의 작은 노력이 야생과 인간의 공존을 이뤄낼 수 있음을 안산갈대습지는 보여주고 있다. 안산갈대습지에서 수달의 다양한 행동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시화호지킴이에서 수달지킴이로 변신한 안산시 환경정책과 최종인 씨의 공이 크다. 그는 매일 같이 수달의 활동을 체크하는 것은 물론, 쉼터, 둥지를 만들어주고 있기 때문이다. 또 5년에 걸쳐 꾸준히 기록한 수달 영상의 제공은 본 프로그램에 윤기를 더해주었다.
그런데 최근 송산그린시티 개발이 본격화되면서 최대를 우기를 맞고 있다. 수리부엉이는 자연의 복원력으로 시화초지를 차지하였지만 인간은 다시 그들을 내몰고 있는 것이다.
이민재 기자 ily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