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랑 ‘삼촌’이 아빨 죽였다고요?
영화 <보디 히트>의 스토리다. 이 영화처럼 내연남을 이용해 남편을 살해하고, 자신의 아들까지 죽게 한 여성에게 재판부가 12년 형을 선고해 논란이 일고 있다. 치밀한 범행 수법으로 남편 살해를 공모한 내연남이 무기징역을 받은 것과 대조적으로 이 여성은 죄질에 비해 가벼운 형을 받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논란이 일고 있는 사건 속으로 들어가봤다.
한여성의 파렴치한 범행이 뒤늦게 드러나 충격을 주고 있다. 주인공은 이 아무개 씨(49). 그는 뇌병변장애 3급인 남편 장 아무개 씨(52)와의 사이에 5명의 자녀를 둔 주부다. 2006년부터 여러 명의 내연남을 거쳤던 이 씨는 2008년 말부터 열 살 연하인 김 아무개 씨(39)와 내연 관계를 시작했다. 이 씨는 남편이 입원한 사이 집 근처 모텔에서 투숙하고 있던 김 씨와 자유롭게 만나며 자신의 자녀들에게 김 씨를 ‘삼촌’이라고 소개했고, 김 씨를 남편이 있는 병원에 몰래 데리고 오기도 했다.
하지만 2009년 4월경, 남편 장 씨가 퇴원을 하면서 이 씨의 자유는 사라진다. 남편 병수발 때문에 김 씨와 만날 시간이 줄어들었고, 만남 자체도 눈치를 살펴야 했다. 이 씨는 남편만 없다면 자유롭게 살 수 있고, 남편 명의로 가입해 둔 보험금도 받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2009년 10월 10일 이 씨는 마포구 모 족발집에서 내연남 김 씨와 술을 마시면서 “남자 아이들만 5명이어서 돈도 많이 들고, 남편까지 힘들게 하니 차라리 남편이 죽었으면 좋겠다”며 “우리 남편을 죽여줄 수 있냐. 그러면 4~5년 뒤에는 같이 살 수 있다”고 회유했다. 그리고 이주일 후 범행 날짜를 정한 이 씨는 김 씨에게 “내일 우리 집에 와서 실행할 수 있느냐”며 “사회복지사가 남자로 바뀌었으니 사회복지사라고 하면 문을 열어줄 것이다”고 설명했다. 또 두 사람은 자리를 옮겨 이 씨의 집 근처 치킨집에서 범행 수법을 모의했다. 집에 불을 질러 남편을 질식사시키되, 휘발유 등을 쓰면 피해가 확대되므로 촉매제는 쓰지 말라는 등 이 씨는 자세한 범행 수법을 김 씨에게 지시하기도 했다.
다음 날 김 씨는 부엌칼과 라이터를 준비해 이 씨의 집에 찾아가 초인종을 눌렀다. ‘사회복지사’라고 자신을 소개하는 김 씨의 말을 그대로 믿은 남편 장 씨는 의심 없이 문을 열어줬다. 김 씨는 장 씨가 뇌병변장애 3급 등의 질병을 앓고 있어서 정상적인 언행이 불가능하고, 저항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장 씨를 3차례 미는 등 폭행했고, 집 안을 돌며 46만 원을 훔쳤다. 그리고 나서 김 씨는 소지하고 있던 라이터로 장롱 안에 있던 의류에 불을 붙인 후 빠져나왔다. 움직이지 못하는 장 씨는 질식해 고려대학교 안암병원 중환자실로 후송됐고, 결국 숨졌다.
당시 이 사건은 ‘전기배선 합선에 의해 발생한 화재로 보인다’는 이유로 내사종결됐다. 이 씨는 남편의 사망 대가로 보험금 5000만 원을 받았다. 당시 담당 경찰관이 남편 앞으로 가입된 보험이 있는지 여부를 물었지만 이 씨는 “없다”라고 거짓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도면밀한 이 씨는 내연남을 입단속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그는 김 씨의 아버지에게 전화해 “김 씨가 우리 집에 가서 불을 지르고 남편을 죽였다”며 “당신 손자인 김○○ 등을 가만히 안놔두겠다”고 협박했다. 또 그는 “앞으로 문제는 김 씨가 나에게 어떻게 하느냐 여부에 달려있다”며 “입단속시키라”고 압박했다. 2010년 3월 이 씨는 보험금으로 김 씨에게 월 50만 원짜리 원룸을 구해줬고, 이 씨와 김 씨는 다시 핑크빛 꿈을 키워갔다. 남편이 죽은 지 넉 달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조용히 묻힐 뻔한 사건은 김 씨와 이 씨의 불화로 다시 전환기를 맞는다. 김 씨는 이 씨가 다른 남자와 만나고 있다는 의심을 갖고 있었다. 김 씨는 “내가 너 때문에 사람까지 죽였는데…”라며 억울해 했다. 그러던 2010년 6월 8일 성북구 동소문동 이 씨의 집 근처에서 김 씨는 이 씨와 만났지만 이 씨는 다른 남자와 통화를 하다가 집으로 돌아가버렸다. 설상가상으로 김 씨는 이 씨와 전화통화를 하다 이 씨에게 심한 욕설을 들었고, 그날 하루 종일 이 씨에게 당한 모욕이 한꺼번에 떠올랐다. 그때 마침 김 씨의 눈에 띈 것은 이 씨의 막내아들 장 아무개 군(8)이었다. 김 씨는 장 군을 자신이 머무르고 있는 여관으로 데려가 살해하고 말았다.
김 씨는 장 군 사건과 관련해 조사를 받다가 이 씨 남편 살해 사실에 대해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진다. 박성열 형사는 “김 씨가 이 씨와의 공동범행을 순순히 자백했다”며 “장 군을 살해한 것에 대해 충격을 받은 듯 보였다”고 말했다. 자신의 죄가 훨씬 무거워질 것을 알면서도 김 씨가 자백했다는 것이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7부는 11월 22일 남편 살해를 교사한 혐의로 이 씨에게 징역 12년을, 이 씨의 사주를 받고 이 씨의 남편과 아들을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는 김 씨에게는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김 씨의 무기징역 선고 이유에 대해 ‘강도 범행 중 사망 결과 발생, 계획적 살인범행, 범행에 취약한 피해자’라고 밝혔다.
이 씨에게 12년형을 선고한 이유에 대해서는 ‘범행 수법이 상당히 치밀한 점, 범행을 반성하는 태도를 보이고 있지 않은 점, 죄질이 매우 나쁜 점’을 들었지만 ‘이 씨가 자녀들을 부양해야 하기 때문’에 감형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 씨에 대한 재판부의 양형에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처음부터 치밀한 계획을 세워 남편을 살해 교사했고, 아들의 죽음에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는 이 씨에게 12년 형은 너무 가볍다는 것이다.
은평구에 사는 유 아무개 씨(여·37)는 “남은 자식들은 엄청난 정신적 고통을 받을 것 같다”며 “과연 남편과 막내아들을 죽게 한 엄마의 부양이 필수적인지, 그 부양이 긍정적인 영향을 가져올 것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