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라고 불러” 퍽! …아빠가 미쳤어요
이를 보다 못한 오 씨의 친부모가 신고해 지난 2년간 집안에서 벌어졌던 엽기적인 행각이 드러났다. 현재 오 씨는 경찰 조사에서 전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아 재발의 우려가 높아 전북지방검찰청에 구속된 상태다.
경찰도 혀를 내두른 ‘트랜스젠더 아빠’의 기막힌 사연 속으로 들어가봤다.
‘또각, 또각.’ 허리까지 내려오는 머리카락, 높은 하이힐에 짧은 치마를 입은 한 여성이 전북 덕진경찰서로 들어왔다. 진한 향수 냄새와 화려한 행색 때문인지 금세 경찰서 내 시선은 그 여성에게 쏠렸다. 이 여성은 경찰조사를 요청한 담당경찰에게 다가가 ‘제가 연락받은 오○○입니다’라고 말하며 자리에 앉았다. 그가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순간 사건 담당 경찰은 자신의 귀를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오 씨는 여성이 아닌 남성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녀 학대 혐의로 친부모로부터 고소당해 경찰서에 조사를 받으러 온 상황이었다. 오 씨는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자신의 행색에 대해 당당한 태도를 취하며 시종일관 여성스런 목소리와 행동으로 조사에 응했다.
사건담당 경찰이 오 씨에게 여장을 하고 경찰서를 찾아온 이유에 대해 묻자 “외모를 꾸미는 부분은 이번 사건과 상관이 없다”며 “사생활에 대해 말할 이유가 없다”고 잘라 말했다. 자녀들에 대한 폭력 동기에 대해서도 “최근 일이 잘 풀리지 않아 자녀들을 과격하게 대했던 부분은 있지만 굶기거나 학대한 적은 없다”고 혐의를 부인했다.
그러나 이후 고소인인 친부모 조사, 측근 조사에서 추가로 드러난 정황들은 오 씨의 삶이 겉으로 드러난 것 이상으로 평범하지 않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우선 오 씨는 30세의 나이에 벌써 7명의 자녀를 둔 것으로 밝혀졌다. 10세부터 최근에 태어난 아이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모두 그동안 그를 거쳐 간 두 명의 동거녀 사이에서 낳은 자녀들이었다.
오 씨의 사연은 이러했다. 그는 대학에 진학한 20세 때부터 동거하는 여성이 있었다. 어린 시절 시작한 동거는 결국 임신으로 이어졌고, 오 씨는 대학을 중퇴하고 아르바이트로 가장의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세 명의 자녀를 더 얻었지만 오 씨는 부모님의 물질적 지원도 끊긴 데다 돈벌이도 여의치 않아 여관방을 전전하며 살았던 것으로 드러났다.
자신이 처한 현실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오 씨는 타개책으로 군 입대를 선택했고, 그 사이 동거녀 A 씨는 자녀들을 내버려 둔 채 집을 나가 연락을 끊었다. 아직 한 가정을 책임지기엔 미숙했던 오 씨는 금세 또 다른 동거녀인 김 아무개 씨(여·27)를 만났다. 김 씨와의 사이에서도 세 명의 자녀를 낳았다. 짧은 시간 일곱 명의 자녀를 두게 된 오 씨.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오 씨는 돈을 벌 수 있는 일을 찾던 중 유흥업소 종업원 일을 시작하게 됐다. 그런 그에게 우연히 트랜스젠더 바 일자리에 대한 제안이 들어왔다. 왜소하고 곱상한 외모 때문이었다. 동료들은 트랜스젠더 업소의 경우 소수 마니아들만 즐기는 데다 일할 사람을 구하기 힘들다보니 단 시간에 상당한 돈을 벌 수 있다는 이야기를 전했다.
오 씨는 돈벌이를 할 요량으로 여장 남자 일을 시작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차츰 그는 자신의 일에 도취돼 갔다. 대학 시절부터 제대로 된 물질적 지원과 보살핌을 받지 못했던 그에게 가게에서 만난 단골남성 손님들의 관심과 애정을 받는 일은 물질적 안정은 물론 심리적 안정감을 주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낮과 밤이 전혀 다른 생활은 그의 성 정체성을 흔들어 놓기에 충분한 환경이었다. 그는 낮 시간엔 대부분 잠을 자고 밤에는 업소에 나가 하루 대부분을 여성으로 살았다. 반대로 동거녀 김 씨는 낮에는 일하고 밤에야 들어왔다. 서로 번갈아 가며 자녀를 돌보기로 했지만 업소 일에 지쳐 잠든 오 씨는 낮 시간 동안 점심 한 끼만 챙기는 등 어린 자녀들을 사실상 방치했다. 업소 일이 끝난 밤에는 자녀들을 심리적으로 괴롭혔다. 만취한 채로 곱게 화장을 하고 집에 들어와선 ‘엄마’라고 부르라며 윽박지르고 아빠라고 부를 시에는 벌을 세우기도 했다.
오 씨의 방황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심해졌다. 그는 더 완벽한 여성이 되기 위한 욕심에 여성호르몬 주사를 맞다가 중독되고 말았다. 매주 호르몬을 구입해 맞아야만 했다. 그 결과 목소리는 물론 겉모습까지 여성에 가까워졌다. 갑작스런 그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동거녀 김 씨는 결국 자신이 낳은 세 명의 자녀만 데리고 야반도주하고 말았다.
김 씨가 떠난 후 오 씨는 첫 동거녀 사이에서 얻은 네 명의 자녀들을 더욱 학대했다. 오 씨의 입장에선 자신은 아빠가 아닌 엄마임을 확실히 교육시킬 요량이었다. 동거녀와의 이별 후 본격적인 여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이다. 결국 자녀들은 자신을 돌봐주던 어머니의 존재가 사라진 후 갑자기 어머니 행세를 하는 아버지 밑에서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채 방임과 폭력에 시달렸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을 지켜보고 있던 오 씨의 부모는 결국 자신의 친아들을 아동학대 혐의로 고소하고 남은 자녀 넷을 데려가 대신 키우기로 결심했다.
친부모로부터 고소를 당해 유치장 신세를 지게 됐음에도 오 씨는 당당했다. 경찰조사에 여장을 하고 오는가 하면 애인으로 추정되는 남성이 면회를 오기도 했다. 이 바람에 경찰서가 발칵 뒤집어지기도 했다. 오 씨가 반성의 기미를 보이지 않자 어린 자녀들의 더 큰 육체적, 정신적 피해를 우려한 경찰은 결국 오 씨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현재 전북지방검찰청에 송치된 상태다.
한편 아들을 유치장에 넣게 된 오 씨의 부모는 이후 드러난 아들의 성정체성에 대해 상당한 충격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11월 30일 기자와 통화한 사건담당 형사는 “오 씨의 부모는 학대받는 손자 손녀들이 걱정되는 마음에 자식을 고소한 것이었는데, 이후 아들이 트랜스젠더 업소에서 일하며 성 정체성에 대해서 혼란을 느낀 부분이 알려지자 ‘사실이 아니다’라며 경찰에 강력 항의하고 있다”고 전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