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 주권’ 커지는 것은 바람직하지만 “도 지나치면 사전 검열”…언론 역할 중요해져
SBS 드라마 ‘조선구마사’가 방송 2회 만에 폐지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시작은 역사왜곡 논란이었다. 사진=SBS 제공
#‘성난 민심’ 활활
‘조선구마사’의 폐지 과정을 꼼꼼히 살펴보자. 극 중 역사 속 실존인물이 외국인 사신에게 대접하며 중국식 음식을 내왔다. 궁녀들이 그 시중을 들기도 한다. 제작진은 “국경 근처 변방이라 중국 음식을 대접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며 고개 숙였다. 통상 이 지점에서 백배 사죄하며 재발 방지를 약속한 뒤 해당 장면을 삭제하거나 다시보기 서비스를 중단하는 선에서 매듭짓고 촬영을 이어간다.
그 다음을 보자. ‘조선구마사’ 측은 재정비하겠다며 결방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하지만 시청자와 네티즌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등을 활용해 목소리를 내고, 더 나아가 광고주를 압박했다. 광고주 및 제작협찬사들이 연이어 사과의 뜻을 밝히며 철회를 선언했다.
상황이 여기에 이르자 제작사와 방송사는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다. 광고 수급을 통해 제작비를 메워야 하는데 광고가 없는 상황에서는 더 촬영을 이어가도 손해만 커지기 때문이다.
‘조선구마사’ 사태가 이전과 달랐던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시대적 상황을 살펴봐야 한다. 최근 중국의 네티즌이 김치, 한복, 삼계탕 등 한국의 고유문화를 자기네 것이라 우기며 문화 침탈을 시도하고 있다. 이른바 ‘문화공정’이다. 이에 대중이 극도로 화가 난 상태에서 ‘조선구마사’는 중국적 색채를 풍기며 그들에게 역사 왜곡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것이다. 게다가 집필에 참여한 박계옥 작가가 전작인 ‘철인왕후’ 때도 친중적 성격을 띠며 역사 왜곡 시비에 휘말렸다는 점이 기름을 부었다. 결국 ‘조선구마사’는 막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그럼에도 성난 민심은 그치지 않았다. 이번에는 JTBC ‘설강화’와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로 불똥이 튀었다. ‘설강화’는 1980년대 민주화 운동을 배경으로 하면서 민주주의의 가치를 훼손하고 북한 간첩을 미화하는 등 역사를 왜곡했다는 비판을 받았고,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는 원작이 시진핑 정부의 선전 소설이라는 의혹이 일었다.
#‘사전 검열’ 논란
그 주장을 들어보면 일견 수긍이 간다. 하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이는 아직 공개되지 않은 콘텐츠를 향한 성마른 우려일 수도 있다. 제한된 정보와 추측만으로 콘텐츠를 평가하는 건 전형적인 ‘사전 검열’이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용인될 수 없는 행위 중 하나다.
‘철인왕후’가 도마에 오르자 이 드라마의 주인공을 맡은 배우 신혜선을 공격하는 행위도 쉽게 납득되지 않는다. 방송 중에는 그의 뛰어난 연기력이 칭찬받았다. 하지만 이런 논란이 일자 뒤늦게 비난의 화살이 신혜선을 향했고 그가 출연하는 CF 광고주를 공격하는 것은 논리적이지도, 합리적이지도 않다.
시청자의 비판은 언제나 옳다. 항상 자신의 의견을 낼 수 있고, 스마트폰과 SNS의 보급은 개개인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줬다. 감시와 비판의 기능은 언론만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언론이 놓친 문제점을 시청자들이 짚은 경우가 적잖다.
하지만 지금의 상황은 ‘도가 지나치다’는 반응도 나오고 있다. 방송가에서는 “이제 더 이상 사극이나 시대극은 만들 수 없을 것”이라는 한숨이 나온다. 역사에 정답은 없다. 역사만 연구하는 학자들도 하나의 역사적 사실을 놓고 저마다 다른 해석을 내놓고 다툰다. 결국 역사를 어떻게 그려도 이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올 수 있다는 의미다.
한 방송 관계자는 “역사물을 놓고 시청자들의 반론이 나오고 치고받으며 토론의 장이 열리는 것은 바람직하다. 하지만 ‘조선구마사’처럼 숨통이 끊어지는 상황을 보며 많은 이들이 충격을 받았다”며 “‘조선구마사’의 잘못은 명백하지만, 사과하고 바로 잡겠다는 의지를 보여줬을 때 이를 받아주는 관용이 부족하다. 이런 분위기라면 창작자들은 위축될 수밖에 없다”고 우려했다.
‘철인왕후’가 도마에 오르자 이 드라마 주인공을 맡은 배우 신혜선에게 불똥이 튀었다. 그가 출연하는 CF 광고주에 대한 공격까지 이어졌다. 사진 출처=tvN ‘철인왕후’ 홈페이지
#전문가의 역할
이런 상황 속에서 언론과 전문가의 자세가 더욱 강조되고 있다. 시청자와 네티즌은 얼마든지 자신의 의견을 피력할 수 있다. 하지만 그들 주장의 진위 여부를 가리고 중립을 지키며 산업이 훼손되지 않도록 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다. 하지만 ‘조선구마사’ 사태를 보면 이런 역할이 마비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대중의 지지를 등에 업고 기사 클릭을 높이려는 일부 언론은 네티즌의 의견을 비판 없이 퍼다 날랐다. 기사 안에 네티즌의 주장이 고스란히 담기는 경우가 빈번했다. 중립이라곤 없었다. ‘조선구마사’가 폐지돼야 하는 이유만 가득했지, 향후 대처 및 해법에 대한 고민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언론은 전문가의 의견을 들려줘야 했다. 역사학자나 미디어 종사자, 관련 업계 교수의 목소리를 통해 지금의 상황을 진단하는 동시에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 옳은 언론의 자세다. 하지만 이런 역할을 수행한 매체는 찾아보기 어려웠다.
분명 시청자들은 과거에 비해 더 현명해졌고, 적극성을 띤다. 불의를 보고 쉽사리 넘기지 않는다. 그렇다면 그 안에서 언론과 전문가는 시청자들이 더 현명한 소비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마땅하다. 군중심리에 휩싸여 올바른 판단을 하지 못하고 무작정 동조하는 상황을 막아야 하기 때문이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논란을 만들기 위한 지나친 견제는 오히려 창작을 저해할 수 있다. 특히 아직 발표도 되지 않은 작품을 두고 미리 문제 삼는 건 자칫 사전 검열의 소지가 있다”며 “언론이 네티즌의 의견을 기사에 반영하는 것은 여론 전달의 의미가 있지만, 거기서 그친다면 공정성이나 중립성을 지켰다고 볼 수 없다. 이런 현상에 대한 전문가들의 의견을 듣고 시청자들이 미처 보지 못한 부분까지 알려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조선구마사’ 사태를 바라보며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김소리 대중문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