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쁜 게 좋스므니다’ 초식남의 진화 혹은 돌연변이?
▲ 최근 일본에서는 치마 입은 남자를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
여장 마케팅도 등장했다. 남자 록밴드 ‘하이 로케이션 마켓’이 여장을 한 채 멤버가 앨범 재킷을 찍고 뮤직 비디오에 출연한 것이다. 일본 프로야구단 야구르트 선수도 팬서비스 차원으로 여자 그룹 아이돌 AKB48으로 변장하기도 한다. 이뿐만이 아니라 <브로큰 블러드4> 등 여장 남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만화도 인기를 얻기 시작했고, 남성용 브래지어는 나온 지 1년 만에 1만 장 이상이 팔렸다. 여장남자가 접객 서비스를 하는 메이드 카페나 여장 바, 여장을 체험해 보는 여장 살롱에도 20대부터 60대까지 남성 고객이 급증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 대해 ‘초식남이 드디어 여장남으로 진화했다’는 시각이 있는가 하면 일본 남성들의 라이프스타일이 변화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에서 일고 있는 ‘여장 남자’ 붐을 따라가 봤다.
여장 남자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뜨거운 만큼 일본의 대표적 검색엔진 ‘goo’와 블로그 서비스 ‘블로그무라’에도 여장 패션이 화제다. ‘goo’에는 여장 패션에 대한 질의 및 응답이 쇄도하고 ‘블로그무라’에서는 여장 블로거의 블로그만 모아 1위부터 250위까지 인기랭킹을 매길 정도다.
이런 경향에 따라 ‘여장남(女裝子)’, ‘소녀남(男の娘·만화 속에 등장하는 여장 소년과 미소년 캐릭터를 일컫는 말)’, ‘레이디스(Ladies)남’, ‘스커트남’ 등 여장을 하는 남자를 일컫는 신조어도 즐비하다. <소녀남이 되기 위한 변신 가이드 북-부제 여자만 귀여운 게 아니다>라는 책은 2008년 출간된 데 이어 작년에 속편이 나올 만큼 인기를 끌었다.
만화 <캔디캔디>의 이가라시 유미코 작가의 아들이자 전 아이돌 그룹 ‘쟈니스 주니어’의 멤버인 이가라시 케이치 (29세)도 ‘이가라시 나나미’란 여자 이름으로 자신이 ‘소녀남’이라 고백해 충격을 주고 있다. 이가라시 나나미는 키 168㎝, 몸무게 56㎏, 가슴은 88㎝ A컵, 허리는 25인치라고. 올 11월에는 자신의 ‘소녀남’ 생활을 직접 그린 에세이 만화 <내 이름은 소녀남>을 출간해 어엿한 여장 만화가가 됐다.
▲ 남자 가수 그룹 하이로케이션마켓. 여장을 하고 앨범 재킷을 찍어 화제가 됐다. |
일본의 TV 프로그램을 보면 몇 년 전부터 이미 마쓰코 디럭스, 밋쓰 망글로브, 잇코, 하루나 아이 등 여장 탤런트가 출연하는 예능 프로그램이 높은 시청률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게이로 커밍아웃했거나 트랜스젠더다. 마쓰코는 여장을 하는 이유에 대해 <주간문춘>과의 인터뷰에서 “억제할 수 없는 자의식과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짙은 화장이나 화려한 여장까지 하지 않더라도 여자들의 말투를 쓰면 재미있게 보여 예능 프로그램에 고정 출연을 하게 되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수년 전 여장을 한 남자가 길거리를 활보할 때는 유럽 중세풍 고딕 패션을 즐기는 정도로 받아들여졌다. 최근 다양한 패션을 즐기는 남자가 늘어나고, 몸에 달라붙는 섹시한 스키니진 등을 내세운 유니섹스가 일본은 물론 전 세계적으로 유행을 타면서 결과적으로 여장을 해보고 싶어 하는 남자가 더 늘었다. 일본 <J-cast 비지니스 웹뉴스>의 앙케트 조사 결과에 따르면, 남자의 치마 패션을 긍정적으로 보는 응답이 전체 남성의 40%를 넘어섰다고 한다. 옷을 잘 차려입는 남성이라면, 소재와 색깔이 다양한 여성 패션 아이템에 끌리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패션의 거리 도쿄 아오야마의 옷가게 ‘도쿄 앨리스’에서 가장 인기 있는 여장 남자 아이템은 다리 노출도가 적은 A라인 검정 롱스커트라고 한다. 미니스커트를 사는 남자도 있는데, 요즘 여성 패션에서 유행하는 것처럼 레깅스 위에 입는다.
아키하바라 지역에서는 여장 바에 손님이 몰려들어 즐거운 비명을 지르고 있다. 낮에도 여장 남자 카페가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밤 10시 이전에는 입장 요금 1000엔(약 1만 3000원)에 1시간 당 300엔(약 4000원)의 자릿세를 받는다. 여장 바에는 의외로 회사 중역이나 사회적 지위가 있던 사람이 퇴직 후 여장을 하고 나타나는 경우도 많다.
2009년 아키하바라에 문을 연 한 메이드 카페는 여장 남자 아르바이트를 15명을 모집했는데 100명 이상이 지원했다고 한다. 여장 남자를 반기는 고객이 그만큼 늘었다. 여장 남자가 서비스를 하는 메이드 카페를 찾은 남자 고객은 “여자와는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막막한데 동성이니까 스스럼없이 이야기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고 말했다.
카페나 바뿐만 아니라 여장 남자가 서비스하는 레스토랑도 생겼다. 또한 여장을 해주는 살롱도 속속 개업하고 있다. 매장에는 란제리, 화장품, 구두, 옷 등이 걸려 있는데, 매장에서 여장을 해보거나 여장 아이템을 구매한다. 여장 아이템 판매 전문 웹사이트 ‘밀라누’, ‘키라리러브’, ‘뷰티맨’ 등에서는 전신타이즈, 롤리타복 등이 잘 팔린다.
이런 현상에 대해 이제 일본의 ‘초식남’이 드디어 ‘여장남’으로 진화한 것 아니냐는 시각까지 있다. 즉 기존의 남성다움이 없고 개인주의적 성향이 강한 초식남이 이제 여장을 스스럼없이 즐기게 된 것이라는 것.
그러나 정반대로 여자한테 인기를 끌기 위해 여장을 하는 젊은 20대도 늘고 있어 초식남 현상이 여장 남자 붐의 도화선이라 말하기도 어렵다. 주간지 <여성세븐> 인터뷰에 응한 20대 회사원은 “여자가 흥미로워 하며 말을 걸어주길 바라서 여장을 한다”고 말했다.
<여장과 일본인>을 쓴 미하시 준코 일본 다마대학 강사는 주간지 <포스트세븐>에서 “폐쇄적인 문화였던 여장이 이제 가치관이 다양화하면서 예쁘다면 남자도 여장을 할 수 있다는 풍조가 생겨나고 있다”며 “정보량도 늘어 여장을 하는 수준도 세련돼졌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요리와 뜨개질을 하는 남성이 늘어나는 등 일본 남성 라이프스타일의 변화가 여장 남자 현상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도 내놓고 있다.
조승미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