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놀이터로 불 밝힌 폐교
▲ 눈내린 운동장이 전시장이 된 무이예술관. |
1982년부터 추진된 소규모학교통폐합 결과 지난해(2009년 7월 31일 기준)까지 무려 3349개 학교가 폐교됐다고 한다. 특정 시도를 꼽을 것 없이 전국적 현상이다. 하긴 적어도 한 반에 40~50명씩 하던 그 시골 학교의 교실에 3~4명, 심지어 아무도 없이 휑한 경우가 많으니 ‘살생부’ 등재는 불가피해 보인다.
하지만 폐교 문제는 잘나가던 공장 가동을 그만두는 것과 다르다. 학교에는 그곳을 거쳐 간 수많은 학생들의 추억이 고스란히 녹아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는 금이 그어진 책상을 보며 짝꿍과의 일들을 떠올릴 것이고, 또 누군가는 교정의 나무를 보며 그 그늘에 팔자 좋게 누워서 늘어져라 낮잠 잤던 시간을 아쉬워할 것이다. 폐교의 운명을 벗어나지 못 한다면 적어도 그 소중한 장소가 송두리째 사라지는 일만은 피하고 싶은 마음은 모든 이에게 똑같을 것이다.
강원도 평창군은 폐교의 활용에 대한 모범답안을 제시하는 곳이다. 소규모학교통폐합 정책으로 강원도 내 초등학교를 중심으로 한 폐교는 현재 17개 교육지원청에 250개교가 등록돼 있다. 평창군에만 무려 31개교가 된다. 대부분은 방치되거나 헐렸지만 그중 무이초등학교, 노산초등학교, 수하초등학교는 지역주민과 여행객들을 위한 문화공간으로 탈바꿈하며 예전의 생기를 되찾았다.
▲ 무이예술관 정연서 화백. |
우선 먼저 떠날 곳은 무이초등학교다. 물론 학교 간판은 남아 있지 않다. 그 대신 걸린 것이 무이예술관이다. 메밀꽃의 고장으로 유명한 평창군 봉평면에 자리한 자그마한 폐교다. 서울 방향에서 볼 때, 봉평 들어가는 길목에 무이예술관이 있다. 이곳은 봉평에서도 날씨 변화가 아주 심한 곳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흥정천이 허브나라까지 뻗어 있어 무척 습하다. 그래서 안개가 자주 끼고, 겨울철에는 눈이 내리는 날도 많다. 무이리 날씨는 오락가락하는 여자의 마음과 같다.
무이예술관은 12년 전 문을 열었다. 메밀꽃을 주제로 그림을 그리는 서양화가 정연서를 비롯해 서예가 이천섭, 조각가 오상욱, 도예가 권순범 등 모두 네 명의 작가들이 뜻을 모아 일을 벌였다. 각자 자신의 분야 작품으로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는 교정과 교실을 채워나갔다.
오상욱 작가는 조각으로 운동장에 온기를 불어넣었고, 나머지 작가들은 교실에 작품을 걸며 멋진 전시장이자 아틀리에를 꾸몄다. 잡초가 사람 키만큼 자라고 정글을 방불케 하듯 거미줄투성이였던 학교에서 점차 문화의 향기가 피어올랐다.
교실을 포함한 기존의 건물은 따로 리모델링한 부분이 거의 없다. 아트샵이 교실 왼쪽 끝에 새로 생겼고 야외공연무대가 그 앞에 설치된 정도다. 교실 건물 뒤편에 도자기를 굽는 각종 가마들이 들어선 점도 변화라 하겠다.
작가들 중에는 가족과 함께 아예 내려온 이들도 있다. 권순범 도예가와 정연서 화백이 그들이다. 예전에 교사들이 쓰던 관사를 보금자리 삼아서 살아가며,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있다.
무이예술관에서는 도예, 판화, 서예 등 각종 체험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대신 모든 작가들이 상시 거주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반드시 무이예술관에 문의하고 예약해야 한다.
스키캠프 여는 수하산문화학교
다음으로 향할 곳은 수하산문화학교다. 횡계에서 용평리조트를 지나 도암댐 방면으로 길을 달리다보면 왼쪽에 작은 학교 건물이 보인다. 주변에 집이 서너 채에 불과한 오지다. 오른쪽으로 발왕산이 자리하고, 왼쪽으로는 고랭지배추밭으로 유명한 안반덕이 있다. 앞쪽에는 거북산이 버틴다. 횡계초등학교 산하 수하분교가 폐교된 후 버려진 학교를 11년 전 박윤숙 대표가 임대해 열심히 꾸몄고, 지금에 이르렀다.
수하산문화학교에서는 사진교실, 판소리교실, 대관령계곡 탐사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정기적으로 운영한다. 하지만 그러한 것들보다 이곳은 스키교실로 더 알려져 있다. 박 대표는 대단한 스키마니아로 평창군 내 저소득층 어린이들을 위한 스키캠프도 꾸준히 열고 있다. 수하산문화학교에서 먹고 자면서 스키를 배우고, 용평스키장으로 이동해 그 실력을 키우는 것이다. 겨울이면 이곳은 전 국가대표 선수와 코치 등으로 이루어진 강사진이 스키를 가르친다. 크로스컨트리, 스노보드, 알파인 등 종목에 제한을 두지 않는다.
수하산문화학교는 학교 교실을 리모델링해 숙박시설로도 활용하고 있다. 건물의 겉은 달라진 게 거의 없지만, 내부는 숙박시설과 세미나실, 공동식당 등으로 리모델링되었다. 이번 겨울 며칠 정도 시간이 난다면 이곳에 묵으며 양질의 강사진에게 스키를 배워보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 사람 넘치고, 물가 비싼 리조트를 이용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지 않을까 생각된다.
▲ 건물 외부를 유리로 덮어 세련된 느낌을 주는 감자꽃스튜디오. |
마지막 폐교여행지는 감자꽃스튜디오다. 평창에서 정선 방면으로 난 42번 국도를 따라 달리다가 노론교에서 좌측으로 길을 틀면 감자꽃스튜디오가 나온다. 김덕수사물놀이 기획실장과 각종 음반 공연 기획을 해온 이선철 대표가 평창초등학교 산하 노산분교를 임대해서 7년 전 문을 연 문화예술공간이다.
학교는 외양이 크게 달라졌다. 콘크리트 건물 외부를 유리가 덮고 있다. 후줄근했던 건물은 순식간에 세련된 스튜디오로 변했다. 대신 내부는 거의 그대로다. 이곳에서는 음악캠프, 평창아라리 보존, 장애인과 노인을 위한 프로그램, 미술치료, 평창고 대일밴드 양성, 다문화가정 문화교육 등의 활동을 해오고 있다.
지금까지의 폐교 활용 프로그램은 동료 예술인들을 위한 세미나나 유료 수강생들을 위한 것들이 많았다. 하지만, 이곳 감자꽃스튜디오는 지역에 문화를 돌려주려 무던히 애쓴다. 설령 폐교됐다고 해도 학교는 여전히 지역민들의 소중한 보물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곳은 동네 사랑방 같은 분위기다. 누구든 방문해 서로 이야기를 나누고 놀다가 헤어진다. 마치 그 옛날 매일 학교에 다녔던 것처럼 자연스럽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여행안내
▲길잡이: ★무이예술관: 영동고속국도 면온IC→408번 지방도→6번 국도 만나 우회전→봉평 방면 좌회전 ★감자꽃스튜디오: 영동고속국도 장평IC→31번 국도→평창읍→좌회전(42번 국도)→노론리 방면 좌회전 ★수하산문화학교: 영동고속국도 횡계IC→용평리조트 방면 직진→버치힐골프장 지나 계속 직진 ▲먹거리: 여름이라면 시원한 봉평의 막국수를 추천하겠지만, 겨울철인지라 따끈한 국물이 당긴다. 그럴 때, 만둣국이 어떨까. 횡계IC로 나와서 양떼목장 방면으로 계속 직진하다보면 남경식당(033-335-5891)이 있다. 반찬으로 김치와 깍두기, 무채가 전부지만, 만둣국은 양이 푸짐하고 그 맛 또한 담백한 것이 일품이다. ▲잠자리: 무이예술관 정연서화백(011-9902-0471)이 학교 옆에 펜션을 운영하고 있다. 수하산문화학교(033-335-2585)도 숙박업을 겸한다. ▲문의: 평창군 문화관광과 033-330-2762, 무이예술관(033-335-6700), 감자꽃스튜디오(033-332-5337), 수하산문화학교(033-335-25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