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골장군 복귀 눈치군인들 모두 “원위치”
▲ 위기의 군 조직을 추스를 새 국방장관으로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낙점됐다. 사진은 지난 3일 국방부 장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에서 잠시 생각에 잠긴 김 국방장관.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곳 광장에는 한국전쟁 당시 전장을 누빈 탱크와 트럭, 각종 야포와 항공기 등 퇴역 군 장비들이 전시돼 있다. 국방부·합동참모본부와 마주보고 있는 전쟁기념관에 국방장관 후보자 사무실이 마련된 상황은 국지전 수준의 포격 공방을 벌인 긴장된 남북관계 현주소를 상징하는 듯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만큼 남북 간 군사대치 상황이 일촉즉발의 위기상황이고 김 신임 국방장관이 풀어야 할 만만찮은 숙제가 많다는 측면에서다.
‘김관진호’의 국방부와 군 조직은 거센 풍랑 속에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전쟁 중에 장수를 바꾸지 않는다’는 불문율을 깨면서까지 전격적인 장관 교체 인사를 단행한 것도 더 이상 군이 망가지는 걸 두고 볼 수 없다는 절박감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천안함 사태에 대한 책임을 지고 지난 5월 사의를 표명한 김태영 전 국방장관을 반년 동안이나 그대로 뒀던 상태라 국방부와 군 내부의 긴장도는 많이 떨어진 상태였다는 게 군 관계자의 설명이다.
여기에 연평도 도발에 대한 미숙한 대처가 겹쳐 결정타를 때렸다. K-9자주포의 정비 불량에 늑장 대응사격 논란이 벌어졌고, 그나마 대북 대응을 위해 쏜 포탄들이 제대로 북한 측에 도달하지 않거나 엉뚱한 곳에 떨어지는 상황이 드러났다. 이 대통령의 ‘확전 말라’ 지시 논란이 불거지자 청와대는 자칫하다가는 이명박 정부의 안보대응 능력에 대한 비판이 보수층 지지까지 갉아먹는 게 아니냐는 위기감이 커졌다.
결국 급한 불을 끌 소방수와 격랑을 헤쳐가며 방향타를 잡을 선장 역할을 겸비한 인물을 찾게 된 것이다. 김관진 신임 장관은 예비역 장성은 물론 군을 잘 알고 이끌 수 있는 민간인 그룹까지 저인망식으로 탐색한 후에 이명박 정부가 내세운 인물이다.
김 장관에 대한 군 안팎의 평가는 ‘조직의 인화·단결을 강조하는 합리적 성품의 지휘관’이란 쪽으로 입이 모아진다. 김 장관과 함께 근무한 경험이 있는 한 장성급 군 인사는 “무조건 지시하기보다는 아랫사람들을 믿고 역할을 위임하는 스타일”이라면서 “성격이 분명하면서도 평소엔 온건한 태도를 부하들에게 보여주는 외유내강형”이라고 귀띔했다.
다른 군 관계자는 “김 장관이 이상희 전 장관과 김태영 전 장관의 중간형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탱크같이 밀어붙이는 야전형의 이상희 전 국방장관과 정무적 판단을 중시하며 좌고우면하는 김태영 전 장관의 스타일을 모두 갖고 있는 인물이란 얘기다. 이 관계자는 “김관진 장관은 정치적 언동을 하는 일이 거의 없는 사람”이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런 모습은 그의 타고난 성품 탓도 있지만 독일 육군사관학교에서 터득한 성향과 분위기도 한몫한 것 같다고 군 관계자들은 말한다. 독일 육사는 전통적으로 매우 냉철하고 이성적이며 합리적인 성향을 중시한다고 한다. 육사 28기인 김 장관은 독일 육사에서 유학했다. 한 해 후배인 김태영 전 장관이 김관진 장관의 바통을 이어받아 독일 육사를 다녔다. 합참의장 자리도 김관진 장관을 거쳐 김태영 전 장관에게 건네졌다.
이처럼 줄곧 선배를 따라오던 김태영 전 장관은 이번에는 김 신임 장관에게 국방장관 자리를 내주는 상황이 됐다. 군 관계자는 “육사 28기는 우수한 인재들이 정말 많은 기수로 평가받고 있다”고 말한다. 군비통제관을 지낸 영국 유학파 전략통인 김국헌 예비역 장군을 비롯한 탁월한 인물들 가운데 김관진 장관은 늘 선두를 달렸다고 한다.
김관진 장관은 군단장·사령관 등을 두루 거친 전형적인 야전 전략통으로 알려져 있다. 합동참모본부 군사전략과장과 작전본부장 등의 작전 분야 요직을 거친 군 내 작전통이면서 육군본부 전략기획차장, 기획관리참모부장으로도 근무해 전력 증강과 기획 분야에도 밝다는 얘기가 나온다.
35사단장·2군단장·3군사령관 등 군내 주요 보직을 역임해 군 조직을 강화하고 떨어진 군 사기를 다잡아나갈 적임자란 평가도 있다. 내정 발표 직후 홍상표 청와대 홍보수석이 “국방개혁을 내실 있게 추진하고 안보 위기 상황에서 국군에 대한 신뢰를 회복하고 군의 사기를 높이기 위해서는 전문성과 소신, 강직함으로 군 안팎의 신망을 받고 있는 김 후보자가 적임”이라고 밝힌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11월 26일 이뤄진 김관진 국방장관의 장관 내정 과정에는 극적인 반전이 있었다. 하루 전까지 가장 유력한 후보로 꼽혔을 뿐 아니라 1순위로 추천된 이희원 대통령 안보특보의 내정이 기정사실화됐던 것. 26일자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은 1면에 ‘이희원 국방장관 내정’기사를 실었다. 하지만 발표가 예상됐던 이날 오전 청와대에 이상기류가 감돌기 시작했다. ‘내정한 사실이 없다’거나 ‘복수의 후보를 놓고 막판 검토 중’이란 이야기가 흘러나왔다. 결국 진통 끝에 이날 오후 7시에야 장관 후보자에 대한 청와대의 발표가 나왔다. 뜻밖에도 2순위에 있던 김관진 전 합참의장이 낙점된 것이다.
두 사람의 관운을 가른 건 북한의 연평도 공격이었다. 청와대는 당초 북한의 연평도 공격과 무관하게 연말 연초 개각을 목표로 후임 장관을 물색해 왔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의 집권 후반기 주요 화두인 국방개혁 작업을 무난하고 꾸준하게 추진해온 이 특보는 1순위로 장관 후보 자리에 올랐다. 이 특보와 김 장관을 포함한 서너 명의 후보들이 후보군에 거론됐지만 청와대 관계자들 사이에선 “다음 장관은 무조건 이희원”이란 이야기가 정설처럼 돌았다. 언론들이 ‘이희원 내정’을 서둘러 확정적으로 기사화한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북한의 연평도 공격으로 우리 정부와 군의 대응에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등 상황이 심각하게 돌아가자 청와대 핵심부의 기류가 급변했다. 이 대통령은 주변 참모들에게 “군을 제대로 장악할 만한 강한 국방장관감이 없겠느냐”는 말을 했다고 한다. 여러 가지 상황을 체크해본 결과 이희원 특보로는 약하다는 생각을 굳혔기 때문이란 게 관계자의 설명이다.
▲ 지난 11월 26일 이명박 대통령이 연평도 포격으로 전사한 고 서정우 하사(22)와 문광욱 일병(20)의 빈소가 마련된 성남 국군수도병원을 찾아 조문하고 화랑무공훈장을 추서하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
발표 당일인 26일 청와대가 실시한 자체 모의청문회도 두 ‘후보’의 명암을 갈랐다. 오전에는 이희원 특보, 오후에는 김관진 장관에 대한 청문이 이뤄졌다. 군 조직 장악과 개혁에 대해 무난한 어조의 일반론을 쏟아낸 이 특보와 달리 김 장관은 연평도 포격 이후의 군에 대한 처방에 집중했다고 한다. 청와대의 평가대로 김 장관은 평소 지론인 ‘강력한 군’과 ‘군의 정신무장’을 강조했다.
모의청문회에서도 김 장관은 “평시체제가 60년 이상 지속되다 보니 군이 행정적인 조직이 돼가고 있다”거나 “군인들이 개인의 ‘입신양명’에만 신경을 쓴다”는 취지의 언급을 하며 정신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고 한다. 이명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가려워하던 곳을 시원하게 긁어준 셈이다. 한 참석자는 “누가 위기상황의 군을 틀어잡고, 개혁을 강하게 밀어붙일 만한 강단이 있는지가 모의청문의 최대 승부처였다”고 말했다. 이 특보보다 김 장관이 이런 관점에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다는 것이다.
그가 후보자 신분을 갖자마자 국방부에는 당장 큰 변화가 일었다. ‘김관진식’ 업무 스타일을 입소문을 통해 파악한 국방부 간부들과 군 인사들이 맞춤형 변신을 꾀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과거 그를 보좌하거나 지휘를 받았던 장교들의 입을 통해 보고 및 결재 노하우가 회자되기도 했다.
대표적인 야전형 인물로 알려진 김관진 장관이 전략형으로 분류되는 김태영 전 장관과는 업무처리나 군을 다루는 방식 등이 크게 다를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군 관료들이 발 빠른 대응을 했던 셈이다. 군 조직은 ‘위국헌신, 군인본분’이란 그의 좌우명에 맞춰 새로운 복무방침이 어떤 식으로 짜일지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고 있다.
군 관계자들이 꼽는 ‘김관진 스타일’의 대표적인 콘셉트는 ‘간단명료’라 할 수 있다. 김태영 전 장관은 전략통답게 업무 전체를 파악할 수 있는 방대한 양의 자료와 브리핑을 선호했다. 하지만 김 장관은 야전에서의 작전상황 보고를 받듯이 핵심을 파고드는 압축형 보고서와 설명에 후한 점수를 준다고 한다. 이런 분위기 변화에 따라 군 내부에는 ‘모든 보고서는 A4용지 1장으로’ ‘중간보고는 생략하고 팩트 위주의 최종 보고에 주력’ ‘장관이 결심(정)해야 할 사항만 보고’ 등의 지침이 전파됐다고 한다.
김 장관의 청문회 준비과정에서도 방대한 양의 대비자료 준비보다는 이를 어떻게 찾아보기 쉽고 설명이 용이하도록 만드느냐가 핵심 요구사항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군 관계자는 “김 장관의 스타일 덕분에 김태영 전 장관 시절처럼 200여 쪽의 보고서를 작성하는 일은 없겠지만 한두 쪽으로 요약하는 것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3일 열린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김관진 장관은 강한 톤으로 북한의 도발에 대한 대책을 설명했다. 그는 북한의 추가 도발이 발생할 경우 “분명히 항공기를 통해 폭격할 것”이라고 밝혀 의원들의 관심을 집중시켰다. 교전규칙에 대해서도 “교전규칙은 우발충돌시 하나의 가이드라인으로 유효하지만 도발을 당한다면 이것은 자위권 차원으로, 적의 위협 근원을 완전히 없앨 때까지 충분히 응징할 수 있다”고 답했다. 김 장관은 “가용한 모든 전투력을 투입하고 부족하다면 합동지원전력까지 투입, 추가적 타격을 할 수 있다. 그렇게 고쳐가겠다”고 밝혀 향후 우리 군의 대응수위가 상당히 높아질 수 있음을 예고했다.
이런 대북 강경 입장을 가진 김관진 장관은 노무현 정부 합참의장 출신이다. 2006년 11월 합참의장에 임명된 그의 전임자는 이상희 전 장관이었다. 이상희 당시 합참의장은 끝까지 군 내부의 전통적 입장을 대변하다 노무현 대통령과 갈등을 빚었다. 이 전 장관이 10월 1일 국군의 날 행사 뒤 군 수뇌부가 모인 자리에서 노 대통령에게 “전시작전통제권 반환 시기를 연기했으면 좋겠다”고 건의해 임기를 못 채우고 조기 퇴진한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 바 있다.
이희원 연합사부사령관, 권영기 2군사령관, 김명립 합참차장, 남해일 해군참모총장 등이 임기 2년을 채우지 못하고 줄줄이 옷을 벗자 군 내부에서는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반환에 반대하던 군 수뇌부가 전면 물갈이된 것”이라는 분석도 제기됐었다. 이런 상황에서 합참의장 임명은 김 장관의 운신 폭을 좁게 했다. 노무현 정부의 대북정책과 군 관련 정책에 불만을 가져온 보수성향의 예비역 장성들 사이에서는 일부 비판의 소리도 나왔다. 당시 그는 취임식에서 “북한은 우리의 경제적·인도적 협력 노력에도 불구하고 미사일 발사와 핵실험으로 우리의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며 “군은 어떠한 위협에도 이를 결연히 극복해야 한다”고 ‘강군론’을 폈다.
김관진 장관은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에서 근무한 경력도 있다. 그가 근무할 당시 군은 하나회 척결과 율곡 비리 감사 등으로 시련을 겪었다. 군 관계자는 “당시 청와대 국방비서관이 김희상 준장이었다”며 “김관진 장관이 대령으로 그곳에 근무할 때 이상희 김태영 전 장관이 모두 그 라인으로 청와대를 거쳐 갔다”고 귀띔했다. 김 장관은 당시 동료 장교들에게 “군이 비판받을 수는 있어도 ‘나쁜 집단’으로 매도당해선 안 된다”고 말했을 정도로 군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러면서도 평소 주변 사람들에게 “군을 개혁하려면 정신 상태부터 뜯어고쳐야 한다”며 군의 자기개혁을 강조해 왔다.
인사청문회에서 김관진 장관은 장관 취임 이후 군심 결집과 군의 기강 및 전투의지 고양, 군대다운 군대, 군인다운 군대를 만들어 국민의 신뢰를 회복하는 것을 최우선적으로 강조했다. 김 장관은 ‘햇볕정책’에 대해 “남북 간 대화와 경협사업 등 교류협력을 진전시킨 성과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 목표인 북한의 개혁·개방과 핵무기 개발 및 대남 무력도발 포기 등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했다”고 한계를 지적했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때 논란이 됐던 주적개념에 대해서도 “2010 국방백서에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관련 내용을 포함하기 위해 수정·보완 중이며 북한 위협과 관련된 표기 문제는 북한군 위협의 심각성을 명확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신중하게 검토할 것”이라고 답변했다.
군 안팎에선 김 장관이 합참의장 시절 자신이 추진했던 사업들에 다시 속도를 붙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한미 공조체제의 강화와 육해공 3군 합동성 강화 등이 대표적이다. 그가 평소 우리 군의 국제평화유지활동(PKO)에 각별한 관심을 가졌던 점도 주목된다. 또 육군 전략기획처장 시절 국방개혁추진위원회에 건의한 1군사령부와 3군사령부 통합에 탄력이 생길지 모른다는 얘기도 나온다. 천안함과 연평도에 대한 공격에 미흡하게 대처했다는 비판이 군을 향해 쏟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신임 국방장관 김관진’이 어떤 방식으로 국방부와 군 조직에 메스를 들이댈지 군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김성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