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강’ 바닥까지 샅샅이 파헤친다
▲ 민주당 손학규 대표와 박지원 원내대표, 정동영 최고위원 등이 지난 9일 저녁 서울광장에 설치한 천막 앞에서 한나라당 새해 예산안 강행처리를 규탄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손 대표와 민주당 의원들은 서울광장을 거점으로 ‘4대강 날치기 예산 및 법안 무효화’를 위한 100시간 대국민 서명운동을 벌인 뒤 오는 14일부터 전국을 돌며 권역별·지역별 대규모 규탄대회를 개최, 반정부 투쟁의 수위를 끌어올릴 계획이다. 연합뉴스 |
정치는 실종됐다. 한나라당은 309조 원에 이르는 막대한 예산을 단 8분 만에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여당은 얼마나 급했던지 불교계에 철석같이 약속했던 템플스테이 지원예산이 깎이는 줄도 모르고 날림통과를 시켰다가 뒷북수습을 하고 있다. 여기에 장애인 관련 복지예산 등은 삭감된 반면 이상득 의원 등 실세들의 지역구 예산은 늘어나 국민들의 비난과 원성이 쏟아지자 여권은 엄청난 후폭풍을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은 뒤통수를 확실히 맞았다. 그동안 김윤옥 여사의 대우해양조선 로비 연루 의혹 등을 제기하며 여권에 눈엣가시 같은 존재로 부상하며 상종가를 치던 박지원 원내대표는 이번 예산안 기습공격에 ‘한 해 농사를 완전히 망친 꼴’이 됐다. 민주당은 장외 투쟁을 선언하며 거리로 나섰지만 분열된 지도부가 얼마나 단일대오를 형성하며 효율적인 전투를 벌일지는 미지수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당 일각에서는 “예산안 날치기 정국의 확실한 반격카드로 4대강 비리의혹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벌써부터 4대강 건설 비리에 연루된 의원들의 리스트도 떠돌아다닌다. 이에 민주당이 정보망을 총동원해 조만간 ‘4대강 게이트’를 터뜨릴 것이라는 전망도 흘러나오고 있다. 예산안 날치기 기습으로 수세에 몰린 민주당이 4대강 게이트로 반격의 포격을 가할지 전망해본다.
민주당은 한나라당의 예산안 날치기 통과에 망연자실한 채 크게 흔들리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9일 오후 9시부터 서울광장에서 100시간 천막농성에 돌입하기로 했다. 당 소속 의원 전원에게는 외유 금지령이 내려졌다. 하지만 이는 사후약방문이다. 사실 손 대표는 원외라는 한계가 있고 정세균 정동영 두 최고위원의 견제로 여전히 조직적인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다. 손 대표의 리더십 부재가 한나라당의 날치기 공세를 막지 못한 원인(遠因)이었던 셈이다.
그런데 당 내부에서는 김무성 원내대표와의 ‘우정’을 믿고 적당히 올해 말까지 예산안 정국을 끌고 가겠다는 박지원 원내대표의 안이한 정국인식과 전략부재가 이번 사태를 불렀다는 목소리가 높다. 날치기 뒤 박 대표 스스로 물러날 뜻을 밝힌 것도 그의 직접적인 책임이 컸기 때문이다.
박 대표는 지난 5월 취임 후 세종시 수정안 처리 등 여야 대치 정국에서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정치력을 발휘해왔고, 최근에는 자신의 정보망을 총동원해 김윤옥 여사의 대우조선해양 사장연임 로비연루 의혹을 제기해 청와대로부터 거센 공격을 받는 등 맹활약을 펼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여당의 기습에 박 대표는 그동안 쌓아왔던 치적을 한꺼번에 잃게 생겼다.
민주당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박 대표가 김 원내대표와 하루에도 수차례 통화하는 등 나름대로 라인을 확보하고 있다고 과신했던 것 같다. 한나라당이 그렇게 빨리 쳐들어오리라고는 꿈에도 몰랐을 것이다. 상황 판단이 너무 안이했다. 그동안 의원들은 그가 대포폰 정국 등에서 보여준 치밀한 전략을 굉장히 신뢰했는데, 이번 사태를 접하면서 적잖이 실망했다. 앞으로 당내 구심력이 약화되면서 운신의 폭도 많이 좁아질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번 날치기 정국의 후유증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정치권의 한 정보 관계자는 이에 대해 “이번에 박지원 대표가 가장 큰 정치적 손실을 입었다고 하는데 꼭 그렇지도 않다. 그는 날치기가 통과되기 전 자신의 지역구인 목포의 목포 신항 사업비 등으로 65억 원, F1코리아 그랑프리 지원 200억 원 등의 예산을 이미 확보했던 것으로 안다(이에 대해 박 대표는 ‘일부 언론에서 민주당이 이 판국에 예산을 챙겼다는 거짓보도를 하고 있다’라며 강하게 부인하고 있다). 지난해 예산을 잘 챙기지 못해 호남 의원들로부터 비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올해는 관련 예산을 일찌감치 확보했다고 들었다. 날치기에 대해 거센 저항을 하지 않았다는 비판은 받을 수 있겠지만, 정치적 실리는 챙긴 것 아니겠느냐. 사실 여야 정치인들은 예산안 정국 때만 되면 날치기를 연출하며 싸움을 하지만, 물밑에서는 예산안에 대한 ‘계수조정’을 거의 끝내 놓고 한다. 이런 점에서 서로 밀고 당기는 것을 연출하는 것은 일종의 정치적 쇼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12·8 예산안 날치기 정국에서 민주당이 크게 반발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양측이 ‘미세조정’을 할 새도 없이 한나라당이 너무 빨리 움직였기 때문에 야당이 볼멘소리를 하는 정도라는 해석도 나오고 있다. 예년의 경우 여야는 12월 말까지 데드라인을 잡고 그 사이에 이미 실세 의원들 위주로 수많은 ‘쪽지’가 오고가는 등의 ‘계수조정’을 충분히 해왔던 것으로 알려진다. 여당이 마지막 날까지 끌고 가서 예산안을 통과시키고 그것을 저지하는 것도 일종의 ‘대국민 쇼’일 뿐, 그동안 이미 실세들의 예산이나 정부의 마지노 선 예산은 조정이 대충 끝난다는 얘기다. 이런 국회의 예산안 통과를 둘러싼 ‘나쁜 관행’은 날치기 정국의 후유증이 그리 오래 가지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거리로 뛰쳐나간 민주당이 오히려 주목하는 것은 날치기로 타격을 입은 야당의 맷집을 회복하는 길이다. 민주당 전략 관계자들 사이에선 “수세 정국 전환을 위한 ‘꺼리’를 빨리 만들지 않으면 계속 여당의 공세에 끌려 다닐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그래서 현재 민주당 ‘선수’들이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이 바로 4대강 사업과 관련한 수주 비리 의혹이다. 최근 민주당 일각에서는 ‘4대강 사업과 관련해 몇몇 건설사들이 수주와 건설 공기 등을 두고 정치인들에게 로비를 벌였다’는 의혹이 제기되고 있다. 그리고 당의 전략·정보 관계자들이 4대강 건설 비리 의혹에 대한 첩보와 제보를 꾸준히 수집해 곧 4대강 게이트를 띄울 계획도 세우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올해에도 8조 원(수자원공사의 4대강 공사 예산도 포함한 액수)이 투입되는 4대강 건설 사업에 대한 비리 의혹은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 왔다. 최근에는 중견 건설업체 몇 곳이 4대강 건설 관련 상임위 의원들에게 법인카드를 제공했다는 의혹도 나오고 있는 것으로 안다. 여의도 일각에서는 대상 정치인의 리스트도 떠돌아다니는데 전임 상임위원장부터 친이계 의원 3~4명, 친박계 2명, 그리고 민주당에서도 2명 정도 거론되고 무소속 의원도 포함된 것으로 들었다. 또한 건설사들이 공무원들에게도 로비를 한 의혹도 있다고 한다. 일부 직원들에게 현금처럼 쓸 수 있는 기프트 카드를 제공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라고 말했다.
민주당의 한 보좌관도 이에 대해 “그동안 4대강 건설 사업 비리에 대해 꾸준히 자료를 모으고 정보를 수집해왔다. 여기에 여의도에서 제기되는 의혹들도 모아서 계속 추적하겠다. 이번 예산안 날치기로 현 정권에 등을 올린 공무원들에게 양심선언이나 정보 제공 협조를 기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특히 민주당은 손학규 대표가 장외투쟁을 이끌어 가고 있지만 예산안 날치기 정국만으로는 지속적인 대여 전투가 어려울 것으로 보고 4대강 사업 비리 규명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여기에 친노그룹 등이 참여하는 야권 연대도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여 4대강 게이트가 민주당에 의해 본격적으로 부양될 경우 상당한 파괴력이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예산안 날치기로 뒤통수를 맞은 민주당이 4대강 게이트 띄우기로 반격 채비를 갖추고 있지만, 지도부의 분열과 장외투쟁에 대한 국민들의 엇갈린 시선 등이 걸림돌이 될 전망이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