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라 안된다고? ‘안보 열공’ 통했다
▲ 지난 11월 25일 연평도 전투에서 전사한 해병대 서정우 하사와 문광욱 일병의 합동 분향소에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조문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
연평도 포격 사건 이후 국가 안보와 대북관계 등을 놓고 팽팽한 긴장감이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연평도 사건에 대한 정부와 군의 대처방식을 두고 전문가들은 물론 정가에서도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적지 않은 상황. 이런 가운데 박근혜 전 대표가 이례적으로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진 직후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하고 나서 그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국가적인 긴급 사안에 대한 정치인으로서의 마땅한 언급이라는 평가도 있으나, ‘침묵 모드’를 지켜온 이전 행보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어서 박 전 대표 발언의 정치적 함의를 놓고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는 것.
일각에선 이번 연평도 사건 관련 입장 표명이 박 전 대표의 ‘안보리더십 강화’ 전략의 일환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여론의 호응도 박 전 대표의 발 빠른 대처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과연 박 전 대표의 연평도 사건에 대한 대응에는 어떤 함의가 담겨 있던 걸까. 차기 대권 전략과의 함수 관계를 들여다보았다.
# 즉각 대처 입장 피력
박근혜 전 대표는 연평도 포격 사건이 터진(11월 23일) 지 하루 만에 기자들과 만나 자신의 입장을 피력했다. 박 전 대표가 이처럼 즉각적으로 정가 이슈에 대해 의견을 밝힌 것은 이례적인 일이었다. 박 전 대표는 트위터와 미니홈피를 통해서도 연평도 사건에 대한 발언을 내놓았다. 박 전 대표는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도발에는 반드시 큰 대가가 따른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연평도 포격은) 명백한 도발행위이자 선전포고나 다름없다”며 북한에 대한 강경한 대응책을 촉구했다. 또 연평도 사건으로 사망한 군인들의 분향소를 찾아서도 “안보를 촘촘히 해서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겠다”며 “좋은 대북 정책을 만들겠다”는 차기 대권주자로서의 계획을 밝혔다.
이처럼 즉각적으로 대응한 배경에는 측근들과 자문그룹의 조언도 있었으나 무엇보다 박 전 대표의 의지가 강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박 전 대표 측 한 관계자는 “안보 문제는 특히 박 전 대표가 신경을 써오고 있는 분야다. 연평도 사건 이전에도 수시로 여러 분들을 만나 이 문제에 대한 조언을 듣고 의견을 나누어 왔다”고 설명했다. 지난 대선 캠프에서 박 전 대표의 안보자문그룹에 속해 활동했던 한 관계자 역시 “박 전 대표는 남다른 성장과정 때문인지 안보의식이 매우 투철하다. 자문단의 의견을 경청하면서도 안보 강화에 대한 자신만의 신념과 철학이 강해 인상적이었다”고 밝혔다. 자신의 생각을 종종 ‘비유적 발언’으로 내놓는 박 전 대표는 대북 정책에 대한 기본적 신념에 대해 “점심 때 절대 먹을 수 없는 두 가지가 뭔지 아느냐. 아침과 저녁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이 절대 가져서는 안 되는 두 가지는 핵무기와 인권유린”이라고 이야기한 적도 있다고 한다.
박 전 대표는 연평도 사건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안보자문팀과 긴급회의를 가진 것으로 전해진다. 이 자문팀에 속한 한 의원 측 관계자는 “아무래도 중요한 국가적 긴급 사안이었던 만큼 박 전 대표가 의견을 밝혀야 하지 않겠느냐는 공감대가 형성되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 측에서는 연평도 사건과 관련해 즉각적인 대처에 나선 것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다. 여론의 반응 또한 호의적인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연평도 포격 사건이 벌어진 기간 실시된 리얼미터의 지난 11월 22일~11월 26일 여론조사에서 박 전 대표의 지지율은 이전 조사(11월 15일~19일)의 28.6%에서 30.8%로 2.2%p 상승했고, 11월 29일~12월 3일 조사에서도 30.8%를 유지했다. 반면 손학규 민주당 대표는 같은 기간 11.0%→8.2%→8.3%로 떨어져 연평도 사건으로 타격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 여성 정치인의 한계?
박근혜 전 대표가 ‘여성’이라는 점은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과연 불리하게 작용할까.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한나라당의 김문수 경기지사와 비교한다면 병역 의무가 없는 여성의 신분이 상대적으로 나을 수도 있지만, ‘여성’이라는 근본적 한계가 안보정국에서는 단점이라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은 “여성 리더십이야말로 위기에 강하다”며 과거 청와대에서 5년 동안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던 풍부한 국정경험을 근거로 든다. 또한 박 전 대표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독일의 메르켈 총리나 영국의 대처 전 총리 등 여성 지도자가 군통수권자로서 모자람이 없다는 점도 사례로 들고 있다.
그러나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서 연평도 포격 사건과 같은 급박한 사태가 언제든 벌어질 수 있는 불안한 안보 상황이라는 점은 박 전 대표에게 결코 유리한 환경은 아니라는 분석이 적지 않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박 전 대표가 안보, 외교 정책에 대해 특히 신경 쓰고 있다는 점은 여성주자라는 한계상황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는 셈이기도 하다. 여성이라는 점 때문에라도 박 전 대표는 대북 관계나 안보 관련 정책을 더욱 철저히 준비해갈 것”이라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에게 한 번의 ‘속 쓰린’ 기억이 있다는 점도 그의 안보정책 강화의 동력이 되고 있다. 지난 대선 이전 박 전 대표는 한나라당 주자 중 지지율 1위를 기록해 오다가 2006년 10월 북핵 사태가 터지며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지지율을 역전당한 적이 있다. 당시 이명박 후보가 발 빠르게 안보 이슈를 선점하자 이에 밀린 박 전 대표는 이후 안보팀을 강화하는 등 정책과 공약 마련에 보다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2007년 6월 대선주자로는 처음으로 대규모 국방안보 자문단 및 특보단을 발표한 것도 이의 연장선상이었다.
지난 대선 때 이명박 대통령과 대북 정책에 관해 시각차를 드러낸 것도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 후보는 ‘철저한 비핵화를 전제로 북한과 유연한 협상을 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박 전 대표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위해 압박과 설득을 병행하는 정책을 구사해야 한다’는 보다 강경한 정책을 주장한 바 있다. 또한 과거 김대중·노무현 정부의 대북 평화번영 정책 기조에 대해 이명박 대통령이 “상황에 따라 탄력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반면, 박 전 대표는 “원칙 없는 대북 지원으로 일관하는 정책은 남북관계 개선에 걸림돌이 된다”며 햇볕정책에 변화를 주어야 함을 강조한 바 있다.
박 전 대표의 원칙적 입장은 연평도 포격 사건과 맞물려 여론의 호응을 얻을 가능성이 크다는 분석이다. 한 정치컨설턴트는 “대북 정책에 관해서는 이명박 대통령보다 박 전 대표의 입장이 더 강경한 편이다. 연평도 포격 사건으로 북한에 대한 신뢰관계가 더 악화된 상황에 보수여론뿐 아니라 중도 표심 중 상당수도 박 전 대표의 정책을 선호할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 안보 자문팀 면면은
박근혜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대선 주자 중 처음으로 17명에 이르는 대규모 국방안보 자문단 및 특보단을 발표한 바 있다. 2007년 6월, 대선을 6개월여 앞둔 시점이었다. 캠프 내부에서는 구체적인 명단까지 발표하는 것에 대해 신중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지만, 북핵 사태로 타격을 받은 이후였기에 이를 만회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었다고 한다.
당시 발표된 국방안보 자문단은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현 한미안보연구회 회장) 외에 박승춘 전 합참정보본부장, 권영준 전 해군 참모차장, 박정성 전 해군 2함대사령관, 김현수 전 국방대 부총장 등 9명, 특보단은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현 서경대 석좌교수)을 단장으로 송영근 전 기무사령관, 정중민 전 육군 군수사령관 등이 포함되었다. 1군 사령관 출신으로 지난해 4·29 재보선에서 경북 경주에 출마해 당선된 정수성 의원 역시 안보특보단 출신이다.
박 전 대표는 이들 안보팀과 지난 대선 이후 계속해서 의견을 나누며 국방·안보 정책을 논의하고 있다고 한다. 이번 연평도 포격 사건 당시에도 김재창 전 한미연합사 부사령관, 남재준 전 육군참모총장 등과 대책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정수성 의원 역시 지근거리에서 박 전 대표를 돕고 있다. 특히 정 의원은 한나라당 황진하·김장수·한기호 의원, 민주당 서종표 의원, 자유선진당 이진삼 의원 등 장군 출신 의원들과 정기적으로 모임을 가지며 안보정책에 대한 의견을 교류하고 있기도 하다. 정수성 의원 측은 “안보 문제에 관해선 여야를 떠난 논의가 필요하다는 생각에 정기적으로 모임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외에 공로명·홍순영 전 외교통상부 장관을 중심으로 ‘신외교안보포럼’과 전역 장성들의 모임인 ‘성우회’ 주요 멤버 등도 박 전 대표의 자문 그룹으로 알려져 있다. 1965년 창립된 성우구락부가 모태가 되어 만들어진 성우회는 2000명이 넘는 회원을 갖고 있으며 지난 대선 후보 경선 당시 박 전 대표 당선을 위해 적극적 지원을 하기도 했다. 여기에 최근 안보 분야 강화를 위해 새로운 전문가 그룹을 만들었다는 얘기가 전해지기도 했지만, 이에 대해 박 전 대표 측 이정현 의원은 “안보팀을 새로이 만들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아직 구체적 명단을 밝힐 시점은 아니지만, 박 전 대표는 많은 분들과 두루두루 만나며 의견을 듣고 있다”고 설명했다.
박 전 대표는 지난 대선 당시 주요 이슈로 ‘안보와 경제’를 꼽은 바 있다. 경제 문제뿐 아니라 연평도 사건으로 인해 ‘안보’ 이슈는 차기 대선에서도 중요 화두로 부각될 가능성이 높다. 당시엔 두 가지 분야 모두에서 이명박 후보에게 이슈 선점을 당했던 박 전 대표이기에 이번 연평도 사건에 대한 발 빠른 대응은 차기 대권을 준비하는 그의 각오가 남다름을 짐작케 하는 부분이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