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 상용직 반장 ‘체모 섞은 소주’ 강요…악덕 사장 김치 선물 후 “밥 차려줘”
지인의 소개로 만난 이성에게 이러한 말을 듣는다면 마음이 설레기 마련이지만 회사 상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면 어떨까. 직장인 A 씨는 회식자리에서 상사에게 이러한 고백을 받았다. 이후 상사의 행동은 가관이었다. 일방적으로 A 씨의 사진을 찍는가하면 몰래 동영상 촬영까지 해 은밀히 혼자 감상하기도 했다. 요즘과 같은 취업 대란에 회사를 그만둘 수도 없어 상사의 행동을 묵묵히 참아오던 A 씨는 결국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내기에 이르렀다.
인권위에 따르면 최근 A 씨와 같이 직장 내 성희롱을 당한 이들은 한두 명이 아니다. 인권위 측은 이러한 사례(2009년 10월~2010년 10월)들을 모아 <성희롱 시정경고 사례집>을 만들어 공개했다. 그 안에는 직장 내에서 벌어진 상식 이하의 사건 사고들과 해결과정들이 소상히 기록돼 있다. 공직사회, 대학가, 일반회사 등 각 분야의 음지에서 벌어졌던 성희롱 사태의 전말을 들여다봤다.
시청에서 근무하고 있던 직장인 B 씨는 동료 공무원 및 관리반장들과 함께 강원도 영월로 산업시찰을 갔다가 버스 안에서 믿기지 않은 상황을 마주해야 했다. 점심시간 겸 야유회를 가지면서 직원들끼리 화합을 목적으로 음주를 즐긴 것이 화근이었다. 당시 관광버스 안의 직원들은 대부분 만취한 상황이었다. 이때 돌연 상용직 반장 C 씨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상의를 탈의한 후 남성 직원들에게 “다 나와 이 ××들아”라고 욕설을 퍼부으며 강제로 남성 직원들의 상의를 벗기기 시작한 것이다. 이날 버스 안에는 여성반장 4명도 포함돼 있었다. 심지어 C 씨는 자신의 체모를 뽑아 종이컵에 넣은 후 소주를 따라 직원들에게 강제로 마시게 하는 등의 만행을 벌이기도 했다.
당시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한 B 씨는 결국 악몽 같은 날의 정황을 기록해 인권위에 해당 상사의 특별교육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에 따라인권위는 당시 버스 안에 탑승한 주변인과 당사자들에 대한 조사를 벌였다. 당사자 C 씨는 “현장직원 관리 업무를 담당하고 있기 때문에 직원들의 마음을 얻고자 술을 같이 마셨고, 산업시찰 당일에도 분위기를 조성하고 같이 어울리기 위해 노력했다”며 “직원들이 먼저 만취해 옷을 자의적으로 벗어 던졌다”라고 항변했다. 그러나 현장에 있던 다수의 증인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C 씨가 상의를 탈의한 점, 체모가 담긴 술잔을 건넨 사실 등이 퍼즐 맞추듯 사실로 드러났다.
심지어 성교육 관련 문화센터 면접 과정에서 굴욕적인 성희롱이 벌어지기도 했다. D 씨는 청소년 성교육 관련 업무 담당자를 뽑는 채용 면접 과정에서 연맹의 사무총장으로부터 불쾌한 질문을 받았다. 사무총장은 “성관계를 몇 번 가졌냐”고 질문을 던진 후 면접자가 “아직 성경험이 없다”고 답하자 “학생들이 오럴 섹스를 실컷 하고서도 안 한 척 시치미를 뗀다”고 핀잔을 준 것이다. 이후 직무교육 시간에도 이 사무총장은 자신의 성행위 과정이나 성기의 모양 등을 자화자찬하는 등 도가 지나친 행동을 서슴지 않았다.
사무총장은 이러한 발언에 대해 “채용 면접 시 진정인의 경험을 물어본 것은 청소년 성교육 종사자로서 건전한 성 가치관을 가졌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것이었고, 학생들의 성 경험을 언급한 것은 본인이 교육 현장에서 들었던 실제 사례를 참고로 삼도록 얘기해 준 것이다”고 변명했다.
E 씨가 인권위에 진정서를 제출한 후 사장은 어떤 변명을 했을까. 그는 “해당 직원은 근무 시간 동안 책을 읽거나 업무상 전화도 받지 않는 등 비서직에 상당히 맞지 않다고 판단해 인사조치를 했을 뿐”이라고 말했다.
이외에도 사례집에는 “남편은 주식이고 간식이 필요하지 않나” “여성의 출산과정을 보고나면 남편의 성욕이 떨어지니 혼자 아기를 낳아라” “곧 아내와 이혼할 계획이다. 마음이 힘드니 만나달라”는 식의 메시지를 보내는 경우 등 다양한 사례들이 소개돼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성희롱 진정사례들은 어떻게 마무리됐을까. 진정인 측에서 정확한 증거가 될 만한 문자 메시지, 녹취 등을 가지고 있을 경우는 금전적 보상까지 이루어졌다. 그러나 그렇지 못할 경우 참고인 조사를 통해 진정인과 피진정인 측의 주장에 대해 합리성 등을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이때 합리성은 피진정인과 진정인과의 직장 내의 권력관계 등을 분석해 진정인이 피진정인의 성희롱을 제재할 수 있었는지 여부가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됐다.
12월 9일 기자와 통화한 인권위 성희롱 피해상담 관계자는 “성희롱을 당한 후 피해자가 어떤 행동을 보이는가 가 상당히 중요하다”며 “보복이나 불이익을 염려해 무대응이나 애매모호한 답변을 한 후 진정서를 제출한다면 피해관계를 밝히기가 어려워지기 때문에 상대에게 잘못을 명확히 인지시켜 준 후 진정을 요청해야 한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