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진대제 장관 | ||
이는 사실상 정통부가 SK텔레콤 고사작전을 펴고 있는 것이어서 시장논리에 어긋난다는 비판과 함께 정부의 민간경제 통제라는 논란을 불러일으킬 전망이다.
도대체 SK텔레콤은 무슨 미운 털이 박혔길래 정통부는 SK텔레콤에 대한 규제를 준비하고 있는 걸까.
이 문제는 거대그룹인 삼성그룹과 SK그룹, 그리고 LG그룹의 이해가 복잡하게 얽힌 데다, 공기업 성격인 KT그룹과 해당 주무부서인 정통부 장관의 특정기업 주식보유와 정통부의 신규 사업 허가권까지 겹쳐 있는 등 얽히고 설켜 있어 파문이 어디로 튈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정통부에서 SK텔레텍이라는 자회사를 통해 스카이 브랜드라는 휴대전화를 만드는 SK텔레콤이 사실상 휴대전화 제조사업에서 손을 떼도록 하는 법안을 추진중이라는 것이다.
정통부는 정기국회를 앞두고 SK텔레콤의 단말기 사업 규제를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개정을 추진하는 내부 문건을 작성해 진대제 장관에게 보고했다.
이 문제가 불거지자 정통부는 “검토중”이라며 사실상 인정했지만 진 장관은 입을 다물고 있다.
진 장관이 삼성전자 사장 출신으로 사회단체의 압력에도 삼성전자의 주식 소유를 포기하지 않고 있는 데다 SK텔레콤의 단말기 사업 포기로 가장 큰 이득을 보는 곳 중의 하나가 삼성전자이기 때문에 그가 입을 열면 곤란한 처지에 놓일 수 있다.
일각에선 이번 SK텔레콤의 단말기 제조 금지 법안 추진을 정통부의 SK 견제라는 시각보다는 삼성과 SK의 전면전으로 보고 있는 이유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SK텔레콤의 단말기 제조사업 본격화로 가장 큰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기업이 바로 삼성전자라는 것.
사실 SK 계열사인 SK텔레텍에서 생산중인 스카이 휴대폰의 브랜드 이미지가 젊은층에서 애니콜에 비해 결코 떨어지지 않는 데다 고가폰이라는 이미지를 갖고 있다. 최근 2~3년간 휴대폰 시장의 주력모델로 자리잡고 있는 슬라이드폰의 경우 스카이 모델에서 처음 들여와 성공시킨 것이다.
때문에 내년 말 연간 1백20만 대 생산이라는 SK텔레텍의 생산 허가 조건의 시한이 만료되는 경우 삼성전자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예상이 나오고 있다.
최근까지 SK텔레콤에 납품하는 제조사별 비율은 삼성이 30~40%대, LG와 팬택앤큐리텔이 각 20% 안팎, SK텔레텍이 10%의 비율을 보이고 있다. LG의 경우 LG전자가 휴대폰을 생산하고 또 다른 계열사인 LG텔레콤에서 통신서비스(019)를 하기 때문에 이번 논란에서 발을 빼고 있다.
SK에선 통신 사업자가 계열사를 통한 휴대폰 생산을 금지하려면 LG나 KT 계열의 KTF테크놀로지도 같이 묶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번 SK텔레콤의 휴대전화제조 금지 법안을 추진하고 있는 주체는 정통부지만, 보이지 않는 손은 삼성과 팬택앤큐리텔이 지목되고 있다.
그러나 팬택에선 “우리는 SK텔레콤에 납품하고 있는 만큼 앞장 설 입장이 아니다”라며 “이번 법안 추진과 관련 없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업계에선 이번 파문을 삼성전자와 SK텔레콤의 대결구도로 보고 있다.
사실 이번 사태는 지난 5월부터 감지됐다.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린 스비야 엑스포콤2004에 삼성전자가 대규모로 참여했고, 국내 기자들도 현장을 방문했다. ‘때마침’ 러시아를 방문했던 김창곤 정통부 차관이 현장 취재를 나간 국내 기자들에게 “이동통신사업자의 제조업 진출은 신중해야 한다. 산업간 고유영역이 무너지지 않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SK를 겨냥한 발언을 했다. 이어 7월 중순엔 삼성전자 휴대폰 사업부의 이기태 사장이 언론 인터뷰를 통해 “서비스 업체가 제조업을 겸하는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으며, 심각한 불공정 행위를 불러올 수 있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삼성이 국내 경쟁업체에 대해 대놓고 공격하기는 최근에 결코 볼 수 없었던 모습이다. 그만큼 삼성에서 이 문제를 민감하게 생각했던 것.
이 무렵 SK텔레콤이 국내 몇몇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대해 인수합병을 검토하고 있다는 얘기가 나왔다. SK는 그중 한 곳과는 ‘공식 협상중’이라고 인정했다. CDMA 방식의 휴대폰 제조뿐 아니라 유럽식 GSM단말기 제조기술을 가진 업체를 인수해 수출전략 사업으로 키우겠다는 것.
이런 SK의 움직임은 삼성과 팬택 진영을 자극했다. 무슨 이유에서인지 SK는 정기국회를 한 달여 앞두고 휴대전화제조업체 인수 백지화를 선언했다. 대신 이들은 중국 휴대전화 제조업체에 투자하겠다고 밝혔다.
SK의 논리는 “우리도 수출하겠다”는 것이다. 정유사나 통신사 등 ‘정부의 인허가가 필요한 내수용 사업만 한다’는 비판을 불식시키고 수출로 사업을 키우겠다는 것이다. 당시 업계에선 SK가 국내 휴대전화 제조업체의 인수로 생길 수 있는 ‘역풍’을 대비한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그때부터 삼성이나 SK에서 정기국회를 겨냥한 논리개발 싸움에 들어갔다. SK는 LG텔레콤이 LG전자에서 납품받는 단말기 비율이 전체 소요량에서 60%가 넘고, KTF가 KTFT에서 납품받는 비율이 전체 구매량의 30%가 넘는 데 비해 SK텔레콤은 SK텔레텍에서 납품받는 비율이 10%대 미만이라며 삼성이 주장하는 것처럼 우려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삼성은 지난 7월 정통부와 일부 언론에 돌린 ‘휴대폰 제조부분의 불공정성 심화에 대한 우려’라는 문건을 통해 “구매력에 기초하여 (통신 서비스 사업자가) 자체 계열사의 영향력 내지 수익성을 조절하고자 하는 이동통신 사업자의 시장 행태를 규제하는 방안이 필요하며, 이러한 부문에 있어서 공정거래위원회의 권한이 강화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문제는 공정거래위원회에서 SK텔레텍의 연간 1백20만 대 생산 쿼터가 내년 말로 끝나면 더 이상 규제를 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공정위쪽에선 불공정 거래가 발생할 경우 그때 관련 법규를 적용하면 된다는 입장이다. 지난 8월9일 공정거래위는 “한 번 내린 결정은 만료되면 그것으로 끝난다”며 SK텔레텍의 생산제한 규정만료를 공식화했다. 때문에 업계에선 공정위 카드가 없어지자 정통부가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정통부에서 단말기 시장의 불공정 거래를 ‘걱정’하는 이유에 대해서 “단말기 회사간에 공정한 경쟁은 공정거래위 소속이지 정통부 소관은 아니다. 다만 서비스 업체가 제조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어서 규제방안을 검토중”이라고 해명했다.
진대제 장관이 이 법안이 입법 실현될 경우 수혜를 입게 되는 삼성전자의 주식을 갖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하나은행에 백지신탁을 해놓은 상태”라고 해명했다. 진 장관은 장관 취임 초기부터 이해당사자이고 특정 기업 출신이기에 해당 기업 주식을 포기해야 한다는 시민단체의 요구를 거부하고 백지신탁이라는 방법을 택한 것. 때문에 이번 정통부의 관련 법안 추진은 더욱 논란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