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전대 김부겸 지지선언한 심일선 선임…심 “2015년부터 계열사 사외이사 맡아, 김 후보자와 무관”
그런데 정가에선 영풍그룹의 사외이사 채용을 놓고 뒷말이 나온다. 영풍그룹은 3월 24일 정기주주총회를 통해 심일선 신임 사외이사 선임을 결정했다. 심 이사는 한국은행 노조위원장 출신 노동계 인사다. 그는 2020년 8월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를 앞두고 ‘노동인 5000인’을 대표해 김 후보자 지지선언을 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사진=임준선 기자
더불어민주당 전당대회 분위기가 후끈 달아오르던 지난해 8월 18일, 국회 소통관에선 ‘더불어민주당 김부겸 당대표 후보를 지지하는 노동자 5000인’ 기자회견이 열렸다. 연단에선 ‘개혁과 통합을 위한 노동연대’ 심일선 상임대표가 마이크 앞에 섰다. 심 대표를 비롯한 노동인들은 민주당 전당대회에 앞서 ‘비문계’로 분류되는 김부겸 후보자를 향한 지지선언을 했다.
심일선 대표는 “촛불혁명 제2막을 이끌어갈 지도자로 노동자 5000명은 김부겸을 지지한다”면서 “앞으로 이어질 선거에서 민주당의 승리를 견인할 주인공을 고르니 김부겸이었다”고 했다. 심 대표는 “김부겸은 반칙과 특권이 없는 나라, 상식과 합리가 통하는 사회를 약속했던 노무현 대통령과 지역주의 타파라는 정치적 궤를 함께해 온 사람”이라고 덧붙였다.
김부겸 후보자는 심일선 대표를 비롯한 노동계 관계자들에 감사 인사를 전했다. 김 후보자는 지지선언에 앞서 심 대표와 노동계 관계자들을 만나 “노조의 격려와 믿음을 받는 것 자체가 영광”이라면서 “큰 힘이 된다”고 했다.
심 대표는 4월 29일 일요신문과의 통화에서 “노동계 쪽에선 이낙연 후보보다 김부겸 후보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져서 그런 지지선언을 한 것이며 나도 그런 생각을 가져서 지지를 한 것”이라고 했다. 심 대표는 “지지 선언 발표하는 날 (김 후보자를) 처음 한 번 봤다”고 했다.
2020년 8월 18일 국회 소통관에서 노동계 5000인 김부겸 지지선언 기자회견을 하는 장면. 사진 가운데 마이크 앞에 선 이가 심일선 사외이사. 사진=연합뉴스
그러나 노동계 지지가 승리로 이어지진 않았다. 김 후보자는 전당대회에서 패배의 쓴맛을 봤다. ‘대세론’ 훈풍을 타던 이낙연 의원이 당권을 쥐었다. 이후 김 후보자 행보는 잠잠했다. 그러던 2021년 4월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말 국정 운영을 책임질 국무총리로 김 후보자를 지명했다.
김 후보자가 국무총리로 지명받기 얼마 전인 3월 24일, ‘김부겸 지지선언’을 했던 심 대표는 영풍그룹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됐다. 심 대표는 감사위원으로도 임명됐다. 영풍그룹 계열사인 코리아써키트 또한 심 대표를 신임 사외이사로 선임했다고 3월 29일 공시했다.
영풍빌딩 정문. 사진=박정훈 기자
영풍그룹은 국내에서 보기 드문 경영 시스템을 갖춘 기업으로 유명하다. ‘2개 가문 공동경영’을 실천하고 있는 까닭이다. 영풍은 장병희·최기호 창업주가 공동 창업했다. 3대에 걸쳐 두 가문이 협력해 거대한 그룹을 경영 중이다. 장 씨 일가는 지주사인 영풍, 최 씨 일가는 고려아연을 중심으로 그룹을 함께 이끌고 있다.
야권에선 심 대표가 영풍그룹 사외이사 직에 선임된 것과 ‘김부겸 지지선언’ 간에 연관 관계가 있는 것은 아닌지 의심한다. 하지만 심 대표는 김부겸 지지선언 이전부터 영풍그룹과 관계를 맺은 것으로 나타났다. 심 대표는 2015년 3월부터 영풍그룹 내 또 다른 복수 계열사에서 사외이사로 활동한 이력이 있다.
2015년 3월 20일 영풍그룹 계열사인 인터플렉스는 공시를 통해 심일선 사외이사를 선임했다는 정기주주총회 결과를 발표했다. 김 후보자 딸이 결혼한 다음 날 발표된 소식이다. 영풍그룹의 또 다른 계열사인 시그네틱스도 사흘 뒤인 2015년 3월 23일 심일선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고 공시했다.
그 뒤로 인터플렉스와 시그네틱스 두 기업은 2015년부터 해마다 심 대표의 재선임을 발표했다. 심 대표는 2021년 3월까지 두 기업 사외이사로 활동했다. 심 대표는 2021년 3월 인터플렉스와 시그네틱스 사외이사 임기가 만료된 뒤 영풍과 코리아써키트 사외이사로 신규 선임됐다.
심 대표는 일요신문에 “2015년부터 영풍그룹 계열사인 시그네틱스와 인터플렉스 사외이사를 했다”면서 “거기가 임기가 다 돼서 이쪽으로 바뀐 것이다. 김부겸 후보자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는 이야기”라고 했다. 2015년 3월 김 후보자 딸이 결혼한 뒤 영풍그룹 계열사 사외이사로 선임된 것에 대해 심 대표는 “나는 (김 후보자 딸이) 결혼을 언제 했는지 알 수 없다”면서 “몇 년 이상 (사외이사를 같은 회사에서) 못하는 게 있다. 그래서 영풍 계열사 내에서 옮겨진 것”이라고 했다.
심 대표는 “영풍과 고려아연은 동업 기업이며 (영풍은) 김부겸 사돈가와는 완전히 분리돼 있는 기업”이라고 했다. 그는 “사외이사 선임에 있어서 대가성은 없고, 김 후보자가 영향을 행사할 수도 없고 내가 그걸 부탁할 정도로 실력이 없는 사람이 아니다. 절대 오해를 말아 달라”고 강조했다.
이어 심 대표는 “김 후보자와 아예 인연이 없는 것은 아니다”라면서 “노무현 정부 당시 노동계에서 지지선언을 하고 와서 안면이 있는 정도”라고 했다. 이어 심 대표는 “처음엔 이 회사(영풍그룹)가 김부겸 사돈가인지도 모르고 왔다”면서 “나도 언론을 보고 알았다”고 해명했다. “두 회사는 법적으로 동일기업으로 묶였을 뿐이지 별개의 회사”라는 게 심 대표 설명이다.
심 대표는 한국은행 노조위원장 출신이다. 한국은행 부국장 출신으로 1997년부터 1997년까지는 전국민주금융노동조합연맹 위원장직을 맡았다. 노무현 정부 출범 과정에서 대통령 인수위원회 자문위원으로 활동했으며 정권 출범 이후엔 대통령 비서실 정책자문위원,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자문위원 등 직함을 달았다. 2007년 11월부터 2008년 5월까진 산재의료관리원 이사장을 지냈다. 여권 내에선 유력한 노동계 인사로 꼽힌다.
심일선 영풍 사외이사가 2020년 8월 8일 올린 소셜미디어 글.
심 대표는 지난해 8월 4일 자신의 소셜미디어를 통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 부인과의 인연에 대해 설명하기도 했다. 심 대표는 “(김부겸 후보자) 부인께서는 나와 같이 한국은행에 근무하셨던 분”이라면서 김 후보자 아내가 전당대회를 앞두고 전한 메시지와 관련한 기사를 공유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심 대표는 “1970년대에 한국은행 대구지점에 김 후보자 부인이 근무했다는 것을 나중에 알게 됐다”고 했다.
영풍그룹 측은 최근 사외이사로 심 대표를 신규선임한 것에 대해 “김부겸 국무총리 후보자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밝혔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김 후보자와 사돈관계인 고려아연 일가는 영풍과 지분을 공유하고 있지만, 사외이사를 선임한다든지 영향력을 행사하진 않는다”고 했다.
심 대표는 “한국은행 부국장과 노조위원장, 대통령 임명직도 역임했던 사람으로서 이런 의혹 자체가 불명예스럽고 치욕적인 이야기”라면서 “그런 경력을 감안해 영풍에서 이사직을 제의한 것이다. 제기된 의혹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고 했다.
이동섭 기자 hardou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