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울리는 찌질남? ‘난 억울해~’
단지 인생의 선배로서, 상사로서 한마디 한 것뿐인데 눈물 한 방울이면 졸지에 천하에 냉혈한이 된다. 최대한 둥글둥글한 언어로 멀리 돌려서 조언을 한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너무한다는 시선이 등에 꽂힌다. 세무 관련 회사에 근무하는 M 씨(32)의 현재 상황이다. 처음에는 곱게 자란 꽃 같은 여자 신입이 밑에 들어왔다는 것이 참 좋았다. 하지만 지금은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예쁜 여자 신입의 사수가 됐다고 다들 부러워했었지요. 근데 막상 업무를 시작하고 가르쳐 보니까 그게 아니었어요. 이 신입이 군대로 치면 ‘고문관’이지 뭡니까. 한번은 간단한 전산 입력 업무도 계속 실수하기에 단순한 업무지만 숫자 하나로 액수가 확 변하니 집중해서 해라, 이런 업무를 믿고 맡길 수 있어야 그 다음에 더 큰일을 맡기지 않겠느냐고 했습니다. 조용히, 그것도 친절하게요. 그런데 신입은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울기 시작했어요. 지나가면서 다들 적당히 좀 하지…, 그러는데 속 터지데요. 신입의 눈물샘은 마르지 않더라고요.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난 지금도 위에 상사들이 잘 좀 해주라고 합니다. 더 이상 어떻게 잘 해줄까요. 일을 대신할 수도 없고 말이죠.”
이와는 반대의 상황, 상사 앞에서 같이 혼나는 입장일 때도 눈물에 한방 맞을 수가 있단다. 컨설팅 업체에 근무하는 J 씨(28)는 제대로 맞은 그 한방 때문에 아직도 아프다.
“하나뿐인 여자 동기와 나름대로 죽이 잘 맞는 콤비였어요. 서로 의지하면서 지냈는데 비중 있는 프로젝트를 맡게 됐어요. 자료조사부터 분석까지 사실 제가 거의 다 도맡았고 일도 대부분 다 했지만 동기니까 꾹 참았습니다. 분수에 안 맞는 큰 프로젝트였기에 결국 결과가 좋지 않았습니다. 상사한테 불려가서 신나게 깨지려는 찰나 동기가 갑자기 어깨를 들썩이며 눈물을 보이더니 밤샘작업에 무리해 가면서 욕심냈지만 모든 게 자신의 탓인 것만 같아 죄송하다며 선수를 치는 겁니다. 사실 동기는 왜 벌써 이런 업무를 주느냐면서 투덜대기만 했지 제대로 한 일도 없었거든요. 바로 넌 뭐했느냐면서 상사의 화살이 모조리 다 저에게 꽂혔습니다. 어이상실이죠.”
“원래 매너가 좋은 편이에요. 업무상 협조 구할 때가 많은 다른 팀 여직원한테 보답 차원에서 말투도 더 부드럽게 하고 화이트데이 같은 날도 챙겨줬어요. 점심도 몇 번 샀어요. 그러다가 제가 회사 밖에서 여자친구를 사귀게 됐고 마냥 신나는 터라 여기저기 자랑을 했어요. 그런데 얼마 뒤부터 다른 여직원들의 차가운 눈초리를 느끼게 됐어요. 사정을 알고 보니 그 다른 팀 여직원이 자신을 상대로 제가 양다리를 걸쳤다고 한 겁니다. 손 한번 안 잡은 여자한테 그런 소리를 들으니 억울해서 당장 찾아갔는데 저를 보자마자 바로 엎드려 울기 시작해서 뭐라고 할 수도 없더군요. 저만 나쁜 남자가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S 씨는 이제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이 됐다. 친절한 것이 마냥 좋지만은 않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그는 “여직원들에게 말을 건네야 할 때는 최대한 무뚝뚝하게 질문하고 대답은 되도록 짧게 한다. 하지만 아무리 차갑게 행동해도 바람둥이 이미지는 쉽게 지워지지 않더라”며 씁쓸해 했다. 홍보 이벤트 회사에서 일하는 L 씨(35)는 오해로 하마터면 큰일 날 뻔했다고 털어놓았다. 대형업체 오픈 이벤트를 무사히 마치고 가진 회식자리에서 치한으로 몰리는 낭패를 겪었다.
“거래처 매출도 상당히 괜찮았던 날이라 다들 기분이 좋았어요. 같이 참여했던 모델들도 함께 회식에 참석했는데 누군가 성능 좋은 카메라를 가져와서 우르르 단체사진을 찍는 분위기가 형성됐죠. 그렇게 이리저리 모이면서 찍고 있는데 옮기는 와중에 모델 가슴에 제 손이 스쳤나 봅니다. 저도 모르게요. 근데 갑자기 그 모델이 목소리를 높이면서 ‘왜 이러세요!’ 하는 겁니다. 영문을 모르는 제가 멀뚱하니 쳐다보니까 무시하는 거냐면서 펑펑 울기 시작했습니다. 멍하게 있다가 순간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고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누가 봐도 제 편은 하나도 없었습니다. ‘변태 유부남’으로 낙인찍히고 말았지요. 억울하기도 했지만 저에게도 상처였어요. 한번 실추된 명예를 회복시키기는 거의 불가능하지 않습니까.”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도 서리가 내린다는 말이 있다. 스포츠 관련 업체에 근무하는 Y 씨(31)는 이 말을 뼈저리게 느꼈다고.
“어느 날 몇몇이 모인 자리에서 연예인 성형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아무 생각 없이 여기도 성형한 사람 있다고 농담을 했어요. 다들 웃고 넘어갔는데 알고 보니 옆자리 여직원이 성형을 했더라고요. 다음날부터 여직원의 태도가 싹 달라졌어요. 어느 날은 책상위에 둔 중요한 서류가 없어졌어요. 며칠 밤을 새면서 준비한 서류였는데 컴퓨터에 저장한 파일도 완벽하게 삭제됐더군요. 사내에서 제 컴퓨터 비밀번호를 아는 사람은 그 여직원밖에 없었죠. 그녀를 추궁하자 다른 동료들이 다 듣도록 큰소리로 울면서 왜 자신을 의심하느냐고 하는 겁니다. 명확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차라리 그냥 다시 할 걸 후회막급이었습니다.”
“제약회사 영업부라 외근이 잦고 지출 경비도 많은 편입니다. 그동안 특별히 지출결의서 없이 영수증을 꼬박꼬박 모아뒀다가 바로 총무팀에 내면 경비를 되돌려 받았어요. 그런데 영수증을 제출하고 얼마 뒤 통장을 확인해 보니 입금이 안 됐어요. 총무팀 여직원한테 말하니 제가 영수증을 주지 않았다고 하더군요. 저는 분명히 모아서 줬는데 말이죠. 서로 옥신각신 하는데 여직원이 받지 않았다며 흐느껴 울었어요. 그 순간 승부는 정해졌고 저는 몇 십만 원을 고스란히 날렸습니다. 영수증을 분실한 게 분명한데 눈물로 위장하고 딱 잡아떼니 당해 낼 재간이 있나요. 포기했고요, 그 후론 증거를 꼭 남깁니다.”
직장생활에 있어서 통상적으로 여직원들은 ‘대부분’ 억울하고, 남직원들은 ‘때로’ 억울한 경우가 있다. 그래서 여성들이 ‘눈물’이라는 무기를 마련하는지 모른다. 서로에게 반격할 기회를 노리기보다는 억울할 일이 애초부터 생길 수 없는 업무 환경을 만드는 게 상책일 듯싶다. 쉽지 않겠지만.
이다영 객원기자 dylee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