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방비 교정’ 발바리가 휘저었다
더욱이 첫 번째 사건이 발생한 지 한 달여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범인을 잡지 못했고, 또 다시 동일한 장소에서 성폭행이 일어났다는 사실은 대학 캠퍼스의 불안한 치안문제에 경종을 울리고 있다. 피의자인 국 아무개 씨(43)는 두 차례나 범죄를 저지르고도 또 다시 사건발생 장소에 나타나 또 다른 범행대상을 물색하는 대담함도 보였다. 해당 학교에는 CCTV는 물론 신고시스템도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피해를 키웠다. 지난 12일 졸지에 범죄 우범 지대로 전락해 버린 대학 캠퍼스 속으로 들어가 봤다.
‘김수철 사건’ 이후 초등학교 내 안전 실태가 경종을 울린 데 이어 이번에는 대학교 교정 안에서 연달아 경악스런 성폭행 사건이 발생했다.
첫 번째 피해는 인천 소재 A 대학 캠퍼스를 가로질러 귀가하던 주민 B 씨(35)에게 발생했다. B 씨는 회사 회식 후 인적이 드문 늦은 도로변을 걸어 귀가하려다 대학 캠퍼스 안을 지나서 가는 것이 더 안전하리라 생각해 발길을 학교 쪽으로 옮겼다. 그런데 그곳에서 예상치 못한 일을 당했다.
지난해 12월 1일 오전 1시 30분경 A 학교 운동장 부근을 지나던 B 씨는 누군가에게 입을 틀어막힌 상태에서 학교 건물 뒤편으로 끌려갔다.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봉변을 당한 B 씨는 날이 밝자마자 인근 경찰서에 신고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범인을 잡을 단서가 아무것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자가 A 대학을 방문한 결과 캠퍼스는 성범죄에 무방비 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캠퍼스 내부에는 CCTV조차 설치돼 있지 않았다. 결국 수사는 피해자의 진술과 몸에 남은 흔적 등에 의존해 진행될 수밖에 없었다. 이때만 해도 첫 번째 피해자가 외부인이다 보니 파장은 크지 않았다.
첫 번째 범행을 저지른 후 캠퍼스가 무방비 상태임을 파악한 피의자 국 씨는 더욱 대담해졌다. 결국 국 씨는 1월 6일경 똑같은 장소에서 범죄를 저질렀다. 방식도 똑같았다. 1차 성폭행을 저질렀던 장소인 운동장 부근에서 손전등을 소지한 채 서성이던 국 씨는 오전 12시 30분경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홀로 기숙사로 돌아가고 있던 C 씨(23)를 보고 입을 틀어막은 후 건물 뒤편으로 끌고가 성폭행했다.
캠퍼스 안에서 외부인에 이어 재학생까지 성폭행 피해를 당했지만 여전히 수사는 오리무중이었다. 학생들이 느끼는 공포감도 더욱 증폭됐다. 범인이 잡히지 않자 재학생이 저지른 범행이라는 소문이 퍼지는가 하면, 사방이 트인 운동장 부근에서 범죄가 발생했음에도 도움을 요청할 곳이 아무데도 없었다는 점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더욱 충격적인 것은 그동안 동일한 인상착의의 용의자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했다고 고백한 여학생들의 신고가 이어졌다는 사실이었다.
총학생회 측은 “굳이 성폭행 피해가 아닐지라도 미수로 그치는 건들이 많아 여학생들 사이에서 피해 제보가 잦았다”며 “캠퍼스 내에서 그동안 사실 우범지대로 분류되는 곳이 있어 학생회에서 재학생들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 야간 순찰을 돌고 있다”고 전했다. 더욱이 교내에는 성폭력상담센터라거나 총여학생회 등과 같은 여성 배려시설도 전무했다. 사건이 발생한 후에야 학교 측은 CCTV 시설 확충은 물론 교내 여학생들을 배려하기 위한 대안을 마련하고 있다.
단서가 부족하다 보니 경찰 수사도 난항을 겪었다. 피해자가 설명한 용의자 인상착의에만 의존해 범인을 찾을 수밖에 없었던 경찰은 삼일 간의 잠복 끝에서야 피의자를 잡을 수 있었다. 피의자 국 씨는 벌써 두 차례나 범행을 저질렀음에도 학교 운동장 부근에 나타나 서성이고 있었다. 경찰은 국 씨의 인상착의를 사진으로 촬영한 후 피해자 B, C 씨의 휴대폰으로 전송, 확인한 후 검거했다.
하지만 국 씨는 경찰조사에서 B 씨와 합의 하에 성관계를 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강제로 성폭행한 혐의 및 C 씨를 동일한 방식으로 성폭행한 혐의에 대해서는 전면 부인하고 있다. 1월 12일 기자와 통화한 인천남부경찰서 사건담당 형사는 “피의자의 자백이 없었을 뿐 피해 여성들의 정황상 증거와 현장에서 범행 도구(손전등)가 발각돼 구속영장을 신청했다”고 말했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