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사일 지침 폐기 호재 속 우주개발 사업 박차…구 회장 10월 취업 제한 해제돼 복귀 주목
김지찬 LIG넥스원 대표이사는 지난 3월 25일 전라남도 고흥군 나로우주센터에서 열린 ‘우주 전략 보고회’에 참석해 “위성항법시장은 2035년 아시아에서만 400조 원 이상이 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KPS가 성공하려면 다수의 위성이 필요하고, 이 과정에서 약 6만 개의 일자리 창출과 7조 원 이상의 경제 가치가 나타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업계에 따르면 김지찬 대표는 이날 우주개발 업계 대표 자격으로 발표를 맡았다. LIG넥스원은 고무된 분위기인 반면 경쟁사들은 LIG넥스원에 주도권을 내줘 아쉽다는 반응도 있다. 한 경쟁사 관계자는 “LIG넥스원은 방위산업체이다 보니 그동안 외부 활동에 소극적이었다”며 “최근의 공격적 홍보는 다소 이례적”이라고 평가했다.
한편에선 LIG넥스원의 움직임을 두고 구본상 LIG그룹 회장의 복귀를 점치는 목소리도 나온다. 구본상 회장은 사기성 기업어음(CP)을 발행한 혐의로 2012년 징역 4년을 선고받은 후 아직 LIG그룹에 복귀하지 못하고 있다. 구 회장은 오는 10월 취업 제한이 풀려 LIG넥스원 등기임원 선임이 가능하다.
#보험 떼고 혁신 넣은 LIG
LIG넥스원은 LIG그룹의 유일한 연 매출 1조 원대 기업이다. 1999년 LG그룹에서 분할된 LIG그룹의 핵심 계열사는 보험사였다. LIG그룹은 LIG손해보험을 중심으로 방산업, IT서비스업, 증권업, 건설업 등을 영위했으나 사기성 CP 발행 논란에 휘말리면서 2013년 보험사와 증권사 등을 통매각했다.
당시 LIG건설은 법정관리 신청 10일 전까지도 CP를 발행했다. 법정관리를 신청할 것을 알면서도 개인투자자 등으로부터 대규모 자금을 조달해 투자자들에게 큰 손해를 입혔다. 결국 고 구자원 LIG그룹 명예회장은 물론 구본상 회장, 구본엽 전 LIG건설 부사장 등 삼부자가 모두 수감됐다. 이 여파로 오너 일가가 모두 회사를 떠났고, LIG그룹은 LIG넥스원 한 곳만 남은 반쪽짜리 그룹으로 전락했다.
LIG그룹은 지난해 상표권을 ‘Leading Insurance Group’에서 ‘Leading Innovation Group’으로 변경했다. 슬로건에서 보험(Insurance)을 떼고 혁신(Innovation)을 넣었다. 기존 슬로건은 보험사가 없는 LIG그룹에게 적절하지 않다는 지적이 있었다. 때맞춰 LIG그룹은 큰 그림을 제시하기 시작했다. 증권업계 대상 기업설명회에서 수송 드론, 초소형 인공위성 개발 계획을 공개하는 등 우주개발업체로서의 위상 확립을 위해 노력하는 것.
실제 LIG넥스원은 관련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영상 레이더(SAR) 정찰위성, 차세대 군용무전기(TMMR) 위성통신 단말기 등에서 독보적인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LIG넥스원은 향후 KPS 사업에 참여하면 위성탑재체·위성항법장비 기술을 갖출 수 있게 되고, 이를 기초로 기존 주력사업을 더욱 고도화하는 한편 사업 다각화를 실현해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사일 지침이 폐기된 것도 LIG그룹 입장에서는 호재다. 더는 미국 눈치를 보지 않고 미사일을 개발할 수 있게 된 것으로 국가 차원에서 새로운 먹거리를 발굴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주가에도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다. 지난 5월 21일 LIG넥스원의 주가는 3만 원대였지만 5월 25일 한때 4만 9000원까지 상승했다. 최진명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전체 매출액 중 미사일 관련 사업이 70% 이상을 차지하는 LIG넥스원이 이번 한미 미사일 지침 종료의 최대 수혜주”라며 “전통적으로 미사일 개발 사업을 수주해오던 LIG넥스원 입장에서는 새로운 먹거리가 생겨난 것”이라고 분석했다.
#천문학적 자금 필요 “오너가 이끌어야”
문제는 돈이다. 초소형 인공위성 등 우주개발 사업은 상당히 많은 자금이 소요된다. 정부 지원을 받는다고는 하지만 기업 측 부담도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LIG넥스원은 적지 않은 자금을 연구개발(R&D)에 쏟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산업부)와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이 최근 발표한 ‘2020년 1000대 R&D투자기업 스코어보드’에 따르면 LIG넥스원은 국내 기업 중 매출 순위는 216위지만 R&D에 쓰는 자금은 연 655억 원으로 61위에 올랐다. 지난 3월 말 기준 LIG넥스원 직원 3168명 중 R&D 인력은 1489명으로 절반에 가깝다.
구본상 회장 개인적으로도 회사 복귀가 절실하다. 회사를 떠난 지 9년이 되면서 자금 여력 등이 충분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일례로 지주회사 (주)LIG는 매년 배당액을 늘리고 있다. (주)LIG는 2015년까지 배당을 하지 않다가 2016년부터 2019년까지 총 29억 3000만 원의 배당을 집행했다. 2020년에는 배당액을 48억 8400만 원으로 늘렸다.
다만 10월이 된다고 해서 취업 제한이 100% 풀리는 것은 아니다. 구본상 회장과 동생 구본엽 전 부사장은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조세포탈 혐의로도 재판을 받고 있다. 검찰은 2015년 LIG넥스원의 상장 및 오너 일가 간 지분 정리 과정에서 두 형제가 1330억 원의 세금을 포탈했다고 보고 있다.
구본상 회장이 금고 이상의 형을 받으면 LIG넥스원 재취업은 수년 더 미뤄진다. 방산 업체인 LIG넥스원은 총포·도검·화약류 등의 안전관리에 관한 법률(총포화약법)을 적용받는다. 총포화약법은 금고 이상의 형으로 집행유예를 받은 자에 대해 유예기간이 끝난 날부터 1년 동안 관련 기업에 임원으로 취업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IG넥스원은 자주국방 차원에서 연구개발에 많은 투자를 하는 상황”이라며 “우주개발까지 속도를 낸다면 강력한 오너십이 필요할 수 있다”고 전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무기 수출은 장기간에 걸쳐 진행된다”며 “따라서 협상 단계에서 상대 국가가 오너의 보증을 요구할 때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와 관련, LIG넥스원 관계자는 “구 회장 복귀에 대해서는 아직 결정된 것이 없다”고 밝혔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