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적 공채’는 청년들 가난 탈출구
소말리아 해적이 국제사회의 골칫거리로 떠오른 건 지난 90년대부터였다. 표면상으로는 자국의 어민을 보호하기 위해서, 혹은 온갖 쓰레기로 오염되고 있는 앞바다를 지키기 위해서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은 듯 보인다. 설령 시작은 애국심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노략질로 부를 쌓는 일개 강도와 다를 바 없이 돼버렸기 때문이다. 가령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몸값만 봐도 이들의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는 잘 알 수 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이렇게 받은 몸값을 또 다른 첨단 무기를 구입하거나 개인적인 부를 쌓는 데 흥청망청 사용하거나 혹은 범죄조직에 뇌물로 제공하면서 내부 갈등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까닭에 ‘마약과의 전쟁보다 더 근절하기 어렵다’는 말까지 나오고 있을 정도. 온 세계를 공포에 떨게 만들고 있는 악명 높은 소말리아 해적은 어떤 무리인지 그 실체를 들여다봤다.
▲ 왼쪽부터 빈촌에서 부촌으로 바뀐 ‘해적들의 도시’ 보사소, 레이더망을 피하기 위해 주로 이용하는 작은 보트, 무장한 해적들. |
하지만 지금은 사정이 완전히 달라졌다. 집집마다 어부들이라곤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으며, 어느새 판잣집들 사이로 화려한 색상의 으리으리한 대궐 같은 집들이 올라갔다. 거리마다 달러 뭉치를 손에 든 환전상들이 돌아다니거나 번쩍이는 외국 자동차를 몰고 다니면서 돈을 뿌려대는 젊은 남성들도 적지 않게 보인다.
평범한 어촌이었던 이곳이 지금은 소말리아에서 가장 위험하면서도 또 가장 번영하고 있는 부촌이 된 까닭은 다름 아닌 바로 해적들 때문이다. 이름 하여 ‘해적들의 도시’가 되고 만 것.
특히 ‘뉴 보사소’ 지구는 해적들이 몰려 사는 보금자리이자 신흥 부자 동네가 됐다. 이들은 이곳에서 호텔 등의 사업체를 운영하고 있으며, 매일 밤 파티를 열면서 흥청거리고 있다.
한 지역 주민은 “돈이 있으니 자연히 힘도 생겼다”면서 “해적들은 마을에서 가장 예쁜 처녀들과 결혼한다. 큰 집을 짓고, 자동차를 사고, 소총을 산다”고 말했다.
일단 해적질로 부를 쌓으면 두 번째, 세 번째 부인을 얻는 일은 쉽다. 대개는 가난한 집의 예쁜 처녀들을 골라 장가를 가기 때문에 오히려 해적을 남편으로 맞고 싶어 하는 경우도 많다. 해적의 결혼식에 초대되었던 한 여성은 이틀 동안 열린 화려한 피로연이 인상 깊었다면서 “나도 지금 해적과 데이트 중”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곳이 해적들의 도시가 된 데 대해 불만을 품고 있는 주민들은 “해적들이 마을에 자리를 잡으면서 나쁜 영향들을 미치고 있다. 무장한 해적들 수백 명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으니 치안문제도 심각해졌고, 카트(입안에 넣고 씹으면 흥분 및 각성 효과가 있는 마취제)나 하시시 같은 마약 사용이 늘었다”면서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불만을 뒤로 하고 많은 청년들이 해적이 되겠다며 너도나도 몰려드는 이유는 바로 돈 때문이다. 해적들의 화려한 생활이 알려지면서 각지에서 이를 동경하고 가난에서 탈출하고자 몰려들고 있는 것이다.
이런 까닭에 해적 공개 모집에 지원하는 대부분의 청년들은 가난한 농부나 어부들이며, 나이는 보통 20~35세가 주를 이룬다. 소말리아 전문가인 모하메드 모하메드는 해적들을 다음과 같은 세 가지 부류로 나누었다. 먼저 어부 출신의 해적들은 무리에서 ‘두뇌’ 역할을 담당한다. 누구보다도 가장 바다를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민병대 출신인 해적들은 ‘근육’ 역할을 맡는다. 작전시 현장에서 전투를 지휘하고 벌이는 돌격대인 셈이다. 기술 전문가 출신의 해적들은 컴퓨터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으며, 해적들에게 필요한 첨단 장비들, 가령 위성전화, GPS, 군사장비를 관리하고 다룬다.
또한 해적들은 보통 작은 고무보트를 타고 다니는데 그 이유는 신속한 이동과 첨단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기 위해서다. 그렇다고 이들이 사용하는 무기들이 모두 구식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포켓형 GPS 등 최첨단 장비들을 두루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이 주로 사용하는 무기들은 AKM 및 AK47 자동소총, RPG-7 휴대용 로켓 발사기, TT-30 반자동 권총, RGD-5 및 F1 수류탄 등이다. 이 무기들은 예멘을 통해 소말리아로 들어온 것들이며, 대부분의 해적들은 소말리아의 수도인 모가디슈에서 무기상들을 통해 구입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해적들이 이렇게 값비싼 첨단 장비를 갖추게 된 것은 외국 선박들을 인질로 잡은 후 받아낸 몸값 덕분이다. 보통 한 건당 100만~200만 달러(약 11억~22억 원)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 액수는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령 2008년 우크라이나의 화물선 ‘파이나호’를 피랍했을 당시 처음에는 2200만 달러(약 240억 원)를 요구했다가 800만 달러(약 90억 원)로 낮추기도 했다.
2008년의 경우 해적들이 한 해 동안 몸값으로 벌어들인 돈만 무려 5000만 달러(약 550억 원)에 달했으며, 근 몇 년 동안은 이보다 훨씬 더 많은 약 1억 달러(약 1110억 원)를 벌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보통 해적들에게 전달되는 몸값은 고액권의 미국 달러이며, 마자루에 넣어서 한 번에 지급된다. 전달 방법은 현금이 든 자루를 헬리콥터에서 갑판으로 떨어뜨리거나, 낙하산으로 투하하거나, 아니면 방수 서류가방에 넣어서 소형 보트로 운반하기도 한다.
▲ 2009년 11월 소말리아의 어촌 하라드히에서 한 여성이 해적 소유로 추정되는 호화로운 집 앞을 걸어가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
그렇다면 해적들이 이렇게 다른 곳에 뒷돈을 대고 있는 이유는 뭘까. 이들의 활동자금 출처가 몸값으로 버는 돈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업들의 돈을 자본금으로 사용하고, 몸값을 받은 후 투자자들에게 배당금을 지급하는 ‘해적증시’에서도 이득을 얻고 있다. 투자 대비 수익률이 높기 때문에 점차 배당금도 높아지고 투자 규모도 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마피아와 같은 범죄조직들이나 서방 기업들도 해적들에게 자금을 대주면서 은밀히 해적질을 부추기고 있다. 이들은 자신들이 투자한 액수보다 해적들이 늘 훨씬 더 많은 몸값을 벌어오기 때문에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밖에도 해외에 거주하는 소말리아인들도 해적들에게는 든든한 후원자들이다. 20만 명이 거주하고 있는 캐나다 교민들이 주를 이루며, 활동자금 외에도 무기, 정보 등을 제공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이 이렇게 해적들을 후원하고 있는 이유는 이들에게 해적들은 강도가 아닌 영웅이기 때문이다. 소말리아 국민의 70% 역시 해적들을 해안경비대이자 영웅으로 추앙하고 있다.
실제 해적들이 “도둑은 우리가 아니라 오히려 그들”이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데에는 이런 영웅적 심리가 깔려 있다. 다시 말해서 자신들이 이렇게 외국 선박들을 공격하게 된 것은 사실 자국민 보호 차원에서였다는 것이다.
이들이 문제 삼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불법으로 소말리아 해역에서 조업을 하는 외국의 트롤 어선들이다. 첨단 장비를 갖춘 어선들이 어자원을 싹쓸이하자 자국 어민들이 생존권을 위협받게 됐으며, 따라서 이는 엄연히 ‘불법 침공’이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부 소말리아 의원들은 해적들을 ‘바다를 지키는 해안경비대’라고 칭하면서 의회가 제출한 ‘해적금지법안’을 부결시키기도 했다.
이와 관련, 세인트앤드류스대학의 소말리아 해적 전문가인 피터 레어 교수는 “서로 맞교환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소말리아 해적들은 연간 몸값으로 1억 달러를 벌고 있고, 유럽과 아시아 어선들 역시 소말리아 해역에서 매년 3억 달러 어치의 어자원을 낚고 있다”고 말했다.
이밖에도 외국 선박들이 불법으로 투기하는 산업폐기물과 핵폐기물 역시 문제다. 아흐메두 울드-압달라 소말리아 유엔 대사는 “바다에 버려진 폐기물들은 소말리아 해안의 재앙이자, 소말리아 환경과 소말리아 국민들 모두에게 재앙”이라고 말했다. 아덴만을 따라 조업하는 많은 어부들이 바다 한가운데에 독극물 쓰레기가 둥둥 떠다니거나 죽은 물고기들이 구름처럼 바다 위를 뒤덮은 모습을 여러 차례 목격했다고 말했다.
해적 두목이었던 수굴 알리는 “우리는 불법 조업과 쓰레기 투기를 막기 위해서 해적질을 한다. 우리는 강도가 아니다. 오히려 불법으로 고기를 잡고 쓰레기를 버리는 그들이 강도다”라고 비난했다.
날이 갈수록 해적들이 활개를 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이들에게도 당면한 문제들은 있다. 우선 고령화 문제가 그렇다. 해적들의 평균 연령이 점차 높아지면서 나이 든 해적들이 은퇴도 못 하고 계속 먼 바다로 나가서 싸우고 있는 것이다. 이유는 바로 젊은 청년들이 점차 해적 지원을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비록 큰돈을 만질 수 있긴 하지만 위험하기 짝이 없는 해적보다는 보다 안정된 평범한 직업을 찾는 젊은이들 수가 늘고 있는 것이다.
또한 사냥감이 점차 부족해지고 있는 것도 문제다. 이들의 악명 때문에 소말리아 해역을 드나드는 외국 선박들의 수가 점차 줄어들고 있는 데다 우리나라를 비롯해 미국, 말레이시아 등 연합 함선들이 바다를 지키거나 선박회사들이 고용한 민간경호업체들이 수시로 바다를 감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과연 이런 노력으로 소말리아 해적들이 완전히 소탕될지는 의문이다. 과격하고 폭력적인 이들을 잘못 건드렸다간 되레 벌집을 건드린 것처럼 더 큰 보복을 당할까 하는 두려움도 있기 때문이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