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지노 앵벌이’ 기구한 도박인생
▲ 평일인데도 만원사태인 강원랜드 카지노. 허름한 옷차림으로 도박자 뒤에 조수처럼 붙어있는 ‘카지노 앵벌이’들을 쉽게 볼 수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한때 중견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박 씨는 기자에게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가고 싶다”는 말을 반복하며 기구한 사연을 털어놨다.
전직 공기업 임원과 기업체 사장 등 사회 고위층 인사들이 명예와 화려한 삶을 뒤로한 채 하루 아침에 카지노 앵벌이로 전락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카지노와 도박의 늪에 빠져 급기야 앵벌이 신세로 전락한 사회지도층 인사들의 기구한 도박인생 사연들을 들어봤다.
강원도 정선의 산골짜기 위에 위풍당당하게 자리잡은 불야성 강원랜드의 밤은 길었다. 2월 8일 밤 10시. 화려한 불꽃을 보고 달려드는 불나방처럼 늦은 시간임에도 강원랜드 카지노는 ‘한탕’을 노리는 손님들로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기자는 공항을 방불케 하는 삼엄한 보안검색대를 통과해서야 겨우 카지노에 입장할 수 있었다. 평일이었는데도 게임 테이블에 가까이 갈 수 없을 정도로 카지노는 만원사태였다. 테이블마다 사람들이 겹겹이 둘러싸고 있어서 테이블을 자세히 볼 수도 없을 정도였다. 자세히 보니 각 도박자 뒤에는 머리가 엉망이고 해진 옷을 입은 몇 사람이 조수처럼 붙어 있었다. 이들은 도박을 즐기는 사람 뒤에 서서 칩을 받아 들거나 자리를 맡아 주기도 했고, 할 일이 없을 때는 게임 테이블 주변을 어슬렁거리기도 했다. 이들은 다름 아닌 카지노 신종 거지로 통하는 이른바 ‘카지노 앵벌이’들이었다.
카지노 청소 관계자는 “카지노 측에서 단속을 심하게 해 앵벌이들이 많이 줄었다. 예전에는 진짜 많았는데…. 흡연실에 가면 더 많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때 3000명에 육박했던 것으로 알려진 이들 앵벌이는 강원랜드가 도박 중독 등 사회적 부작용을 줄이기 위해 카지노 영업장의 출입 일수를 15일로(한 달 기준) 제한하자 현재 300여 명으로 줄어든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남루한 초록색 점퍼를 입은 이 아무개 씨(여·44)는 “왕년에 남편이 작은 사업체를 운영해서 사모님 소리도 들었었다”며 “지금은 하루에 20시간씩 여기서 산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그는 “새벽까지는 우리(앵벌이)가 일하는 시간이라 이럴 틈이 없다”라며 바삐 자리를 떴다.
카지노에서 밤을 지샌 고객들과 앵벌이들은 새벽 6시 폐장시간이 돼서야 비로소 카지노 출입문을 빠져 나왔다. 강원랜드 앞 길가에는 ‘○○찜질방’ ‘○○모텔’이라고 쓰인 봉고차가 빼곡이 들어서 있었다. 강원랜드 주차 요원은 “새벽마다 앵벌이들을 각 찜질방이나 모텔로 실어 나르는 이런 차들이 줄지어 서있다”고 말했다. 취재 차량은 모 찜질방 차를 따라 불빛 하나 없는 폐광촌 깊은 골의 어둠을 뚫고 10여 분을 달려 찜질방에 도착했다. 찜질방에 딸려있는 식당에서는 카지노에서 만났던 이 씨를 비롯해 10여 명이 삼삼오오 모여 아침을 해결하고 있었다.
이 찜질방은 강원랜드 카지노에서 가진 것을 모두 잃어 갈 곳 없는 일명 ‘카지노 앵벌이’들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었다. 찜질방 주인은 “이들은 20만 원 월세 이 외에 밥값을 따로 내고 산다”고 설명했다. 그 곳에서 기자는 연휴 때 통화했던 박 아무개 씨와 그의 동료들로부터 카지오 앵벌이들의 삶에 대해 자세히 들을 수 있었다. 이미 소주에 얼큰하게 취한 박 씨는 자신의 신세 한탄으로 이야기를 풀기 시작했다.
1990년 초까지 ○○유업이라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했다는 그의 표정은 쓸쓸해 보였다. 박 씨는 “나는 친구들이랑 스키 타러 왔다가 강원랜드 초창기인 90년대에 처음 카지노에 발을 들였는데 도박 때문에 사업체를 잃었어”라며 힘겹게 말문을 열었다.
당시 돈으로 시가 40억 원 하던 사업체를 5년 만에 날렸다던 박 씨는 긴 한숨을 내쉬었다. 환갑을 훌쩍 넘은 그는 카지노에서도, 찜질방에서도 고참에 속했다. 그는 “여기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수십 억원씩 잃은 사람들이야. 다 잘 사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는 나이 먹어서 서울 올라가도 일도 못한다. 입소문이 나서 사업을 다시 시작하려 해도 도와주겠다는 사람도 없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옆자리에 앉아있던 김 아무개 씨(67)도 한참을 망설이던 끝에 어렵게 입을 열었다. 모 공사 임원이었던 그는도박으로 명예와 퇴직금 그리고 가족을 잃었다고 했다. 퇴직 직후, 늦은 나이에 강원랜드에 첫 발을 들인 그는 첫 게임에서 600만 원을 땄다고 한다. 도박에 재미를 붙인 그는 그 후로 3년여 만에 10억 원을 날렸고, 가족과도 연락이 두절됐다. 그는 “90세를 바라보는 어머니께서 나 때문에 쓰러지셨다”며 “처음에는 도박을 끊으려고 이를 악물어 보기도 했지만 지금은 포기했다”고 말했다. 이어 김 씨는 “명절에 300만 원을 잃었고, 오늘은 80만 원을 잃었다”고 말을 흐렸다.
놀랍게도 찜질방에서 기거하는 앵벌이 중에는 30대의 젊은 사람도 있었다. 식당 주인은 “젊은 사람 하나가 결혼 날짜 잡아놓고 친구들이랑 스키 타러 왔다가 저녁에 게임을 했다”며 “하루 만에 결혼 자금 7500만 원을 다 날려서 집에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고 귀띔해줬다. 그는 “운이 좋아서 오늘 200만 원을 따더라도 내일은 400만 원을 잃는 데가 여기”라며 “여기에 다시는 오지 마세요”라는 말을 연발했다.
그렇다면 가진 돈을 모두 잃고 갈 곳 없는 앵벌이들이 생활비와 도박 자금은 어떻게 마련하고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이들의 수입 원천은 다름 아닌 카지노였다. 이들 대부분은 카지노에서 자리매매, 대리게임 등으로 수입을 얻고 있었다. 카지노에서 자리를 맡으려면 아침 10시 개장 전에 ARS 자리 예약을 해야 하는데 이 자리를 미리 예약하고 이것을 다른 도박자에게 판다는 것이다. 평일 하루 1만여 명이 드나드는 카지노의 자리 예약은 하늘의 별따기인 만큼 자리값은 그야말로 ‘부르는 게 값’이었다.
더불어 대리게임도 쏠쏠한 수익을 안겨주고 있었다. 최고참 격인 박 씨는 “여기서는 안면이 많아야 조직을 만들어서 일할 수 있다. 카지노는 한 게임당 최고 투자액 30만 원이라 옆에 사람들을 끌고 다녀야 도박액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예를 들어 제한액 이상을 베팅하고픈 도박자가 5명의 앵벌이를 모아 명의를 빌려 150만 원을 도박에 건다는 것이다. 대리게임은 앵벌이가 도박자들을 대신해 게임을 하는 것으로 돈을 딸 경우 앵벌이에게 대가로 10%~ 20% 정도의 배당이 주어지고, 잃을 경우엔 노동력만 상실하는 조건으로 이뤄진다.
뿐만 아니라 카지노에는 ‘자리맡기’라는 수법이 불법적으로 성행하고 있었다. 시간 제한이 있는 카지노 테이블에서는 도박자가 자리를 비우면 자리를 잃기 때문에 앵벌이들이 대신 자리를 맡아주는 것이다. 대가는 평균 두 시간에 10만 원 정도였다.
이렇게 앵벌이들이 카지노에서 버는 돈은 언뜻 보기엔 많아 보였지만 그들은 실제로 찜질방 월세 내기도 빠듯한 듯했다. 김 씨는 “이렇게 어렵게 번 돈을 다시 도박으로 다 잃는다”며 “강원랜드에서 마련해 놓은 도박중독 예방 프로그램에도 참여해 봤지만 효과가 없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그는 시계가 7시를 알리자 “이제 두 시간쯤 자고 10시 개장 시간에 맞춰 다시 들어가야 한다”며 피곤하다는 듯 자리를 떴다.
오전 10시가 되자 카지노 입구로 몰려드는 고객들 사이로 찜질방에서 만났던 앵벌이들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었다.
과연 이들 앵벌이들은 언제쯤 도박의 늪에서 빠져나와 다시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있을까. 강원랜드를 나오는 기자의 발걸음은 무겁기만 했다.
우선미 기자 wihts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