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론 색기로 때론 ‘빽’으로 영사들 주물럭
▲ 한국 외교가를 뒤흔든 ‘상하이 마타하리’ 덩신밍 모습. 사진제공=서울신문 |
2001년 한국 기업의 중국 주재원으로 일하던 진 아무개 씨는 지하철역에서 덩 씨를 우연히 만난 것을 시작으로 결혼에까지 이르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진 씨는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결혼 당시만 해도 아내는 가정생활에 전념하는 평범한 주부였다고 전했다. 결혼 후 진 씨와 덩 씨는 딸 하나를 낳고 남부럽지 않은 결혼생활을 즐겼다.
하지만 가정의 화목은 5~6년이 지나자 깨지기 시작했다. 덩 씨가 상하이시의 공무원으로 취직해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집에 거의 들어오지 않는 날이 많아졌던 것이다. 덩 씨는 어느 날엔 상하이 시장의 비서 역할을 한다고 했다가 얼마 안가 경찰에서 일한다고 하더니 상하이 엑스포 준비로 바쁘다고 말한 이후에는 아예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고 한다. 부부관계가 급격히 멀어지던 어느 날 진 씨는 상하이에 거주하는 한 교민으로부터 아내에 대한 소문을 듣게 된다. 덩 씨가 법무부 소속 H 전 영사와 깊은 내연관계라는 내용이었다.
분개한 진 씨는 증거를 찾기 위해 집안에 남아 있는 덩 씨의 소지품을 뒤지기 시작했고, 아내의 USB 안에 저장돼 있는 파일을 열어봤다. H 전 영사와의 외도 사실을 밝혀내기 위해 파일을 열었던 것인데, 거기에서 발견한 아내의 수상한 행적은 그를 기절초풍하게 만들 만큼 충격적이었다.
H 전 영사뿐 아니라 다른 영사 6명과 다정하게 찍은 사진이 있었고, 한국 정부 주요 관계자들은 물론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후보 선거캠프에서 일했던 인사들을 포함해 모두 200여 명의 이름과 연락처, 직위 등이 담긴 문건이 들어 있었던 것이다. 그 중에는 외교관들의 연락처와 정보당국의 기밀자료도 포함돼 있었다.
그는 감당할 수 없는 아내의 정체를 결국 법무부의 판단에 맡기고 일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부로서의 인연을 끊고 조용히 살고 싶다”고 전했다.
진 씨가 가진 퍼즐조각이 물음표라면 상하이 교민들 사이에서 덩 씨는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최고 권력 실세’로 기억 속에 남아 있었다. 복잡한 비자문제도 덩 씨를 통하면 쉽게 해결될 수 있다는 소문이 교민사회에 파다하게 번졌다. 덩 씨는 실제 영사관의 비자발급 현황과 한국 교민이 총영사관에 보낸 투서까지 사진으로 찍어 보관하고 있었다. 남편이 공개한 투서 내용에는 “여인(덩 씨)의 의지대로 한국 영사관에서 비자를 내준다. 그래서 요즘 비자를 받기 어려운 사람은 그 여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라고 쓰여 있었다.
투서내용과 그녀가 보유한 대사관 및 영사관 내부정보만 하더라도 덩 씨는 상당한 정보망 및 권력을 가지고 교민 사회를 쥐락펴락했음을 알 수 있다. 그런 덩 씨의 배후에 누가 있느냐를 두고 여러 가지 루머가 돌기도 했다. 그녀가 막강한 권력을 휘두를 수 있는 것은 중국 고위층과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며, 이 인맥 덕분에 기업인들까지 덩 씨에겐 ‘을’의 위치에 설 수밖에 없다는 검증 안 된 소문까지 번지기 시작한 것이다.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는 여인. 그게 상하이 한국 교민사회가 기억하는 덩 씨에 대한 단상이다.
그렇다면 현재까지 밝혀진 덩 씨 배후의 남자들은 누구이고, 그들과는 어떤 관계를 유지했던 것일까. 그와 접촉한 것으로 알려진 6명의 영사들 중 김정기 전 총영사(2008년부터 2011년 2월)만이 소명자료를 내고 그동안 직간접적으로 목격한 덩 씨와 영사들과의 관계에 대해 구체적으로 진술했다. 그의 기억 속에 덩 씨는 ‘치명적인 매력을 가진 두 얼굴 여인’이었다.
김 전 총영사에 따르면 지식경제부 소속 K 전 영사가 덩 씨를 처음 만난 것은 부임 첫날 공항에 도착하면서부터였다. 입국 심사를 받던 K 전 영사는 당시 자신의 이삿짐에 다른 사람의 짐을 포함시켰다가 중국 세관에 발각돼 밀수 혐의를 받게 됐다. 교민들의 민원 업무를 돌보고 해결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된 영사가 입국부터 문제를 일으킨 다는 것은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러나 이제 막 도착한 그로선 상하이에서 이 문제를 해결해 줄 라인도 없었다. 전전긍긍하던 K 전 영사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친 이가 덩 씨였다. 덩 씨는 상하이 고위층 인맥을 활용해 세관 측에 손을 써서 아예 없던 일로 만들어 줬다. 이 일을 계기로 K 전 영사는 덩 씨와 급격히 가까워졌다고 한다. 덩 씨는 이후에도 이런 식으로 K 전 영사를 적극적으로 도왔다.
같은 해 5월경에는 신정승 당시 주중대사가 상하이를 방문했을 당시 부총리급인 위정성 상하이 당서기와 장관급인 한정 상하이 시장을 동시에 면담할 수 있게끔 다리를 놔주기도 했다. 당시만 해도 한국 주중 대사가 상하이 최고 권력자인 당서기와 시장을 동시에 만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기에 영사로서 업무에 굉장한 성과를 얻은 셈이었다.
덩 씨는 이런 방식으로 현재까지 밝혀진 것만 해도 전 현직 영사 6명 등을 자신의 손아귀로 끌어 들였다. 업무에 도움을 줘 자신에게 의지하게 만든 후 외교부와 영사관 비밀정보는 물론 이명박 대통령 연락처 및 MB정부의 측근인사들에 대한 정보까지 건네받았다.
정보를 건네받은 전후에는 정보 제공자와 다정한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그리고 건네받은 문건은 반드시 사진을 찍어 컴퓨터 파일로 보관했는데, 디지털카메라로 촬영된 파일에는 촬영 시간이 정확히 기록돼 있었다. 그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든 자료를 꼼꼼히 USB 속에 저장해뒀다.
처음엔 상대의 욕구와 요구조건을 채워줬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덩 씨는 조금씩 무리한 요구를 하기 시작했고, 거절 시엔 불륜 폭로 및 암살 협박도 서슴지 않았다. 때문에 몇몇 영사들은 ‘나의 사랑은 영원히 변치 않고, 배반 시엔 손가락을 자르고 6억 원을 지불하겠다’는 내용의 각서를 쓰기도 했다.
상하이 교민사회와 주변인들 사이에서 덩 씨는 다양한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지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상하이 내에서 그가 가진 힘이 막강했다는 사실이다. 김 전 총영사는 “덩 씨가 2009년 중국 국경일 행사와 2010년 상하이 엑스포 폐막식에서 한정 시장·위정성 당서기 옆에 붙어 환담하는 모습을 목격했다”며 그녀의 영향력에 대한 근거를 주장하기도 했다. 때문에 덩 씨가 단순히 사기꾼이라거나 비자 브로커에 지나지 않는다는 주장은 설득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그가 북한이 교육시킨 간첩이라는 루머도 나돌고 있는 실정이다.
덩 씨의 정체에 대해선 이처럼 다양한 소문이 나돌고 있지만 아직까지 그녀의 정확한 실체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녀가 정보를 수집한 이유와 배경에 대해서도 추측만 오갈 뿐 정확히 드러난 건 없다. 때문에 범법 사실이 밝혀지지 않는 현재의 상황에선 덩 씨에 대한 추적이나 체포 등은 진행하기 힘들다는 게 수사기관의 입장이다.
정부가 현재 사건의 진상을 조사 중이지만 현재로선 덩 씨 본인이 등장해 입을 열거나 중국의 수사당국이 적극 나서지 않는 이상 그의 실체를 밝혀줄 마지막 퍼즐조각은 영원히 찾지 못할 가능성이 더 높아 보인다.
손지원 기자 snorkle@ilyo.co.kr
동서양 대표 마타하리 재조명
앞에선 홀리고 뒤에선 빼먹고
미녀 스파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 ‘마타하리’.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 물랭루주의 댄서로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면서 프랑스 군부와 정계의 고위층으로부터 정보를 빼내 독일에 넘기다 1917년 프랑스 정부에 체포돼 반역죄로 총살당한 인물이다. 덩 씨 역시 남성들을 유혹한 후 업무 관련 비밀문건을 빼냈다는 점에서 동양의 ‘마타하리’로 묘사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보세계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타하리’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먼저 동양의 대표적인 미녀 간첩은 지난 2월 대만 출신의 30대 여간첩이다. 이 여간첩은 무역업자로 위장한 후 한 현역 소장을 포섭해 7년 동안 섹스와 금품 공세를 펼쳐 극비 정보들을 모두 빼내 중국 정부에 넘겼다. 결국 이 여성이 적발되면서 현역 소장은 구속됐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사교계의 거물로 이름났던 러시아 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화제가 됐다. 온라인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28세의 이혼녀 채프먼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화려한 외모로 뉴욕의 고급 클럽과 레스토랑을 드나들며 인맥을 쌓았다. 그는 그중에서도 미국 정부 관리들과 사업가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건네받았으며, 이후 러시아에 넘기다 체포됐다. 다른 미녀 간첩들이 발각 후 총살되거나 반역죄로 목숨을 일은 반면 채프먼은 정계 진출을 고려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에서도 마이크 핸콕 하원의원의 여성 보좌관 카티아 자툴리베테르가 러시아 대외첩보 수집기관에 국방정보 유출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
앞에선 홀리고 뒤에선 빼먹고
미녀 스파이의 원조라 할 수 있는 네덜란드 출신의 무희 ‘마타하리’. 그는 1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 파리 물랭루주의 댄서로 사교계에서 명성을 날리면서 프랑스 군부와 정계의 고위층으로부터 정보를 빼내 독일에 넘기다 1917년 프랑스 정부에 체포돼 반역죄로 총살당한 인물이다. 덩 씨 역시 남성들을 유혹한 후 업무 관련 비밀문건을 빼냈다는 점에서 동양의 ‘마타하리’로 묘사되고 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정보세계에서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마타하리’가 자주 등장하곤 했다. 먼저 동양의 대표적인 미녀 간첩은 지난 2월 대만 출신의 30대 여간첩이다. 이 여간첩은 무역업자로 위장한 후 한 현역 소장을 포섭해 7년 동안 섹스와 금품 공세를 펼쳐 극비 정보들을 모두 빼내 중국 정부에 넘겼다. 결국 이 여성이 적발되면서 현역 소장은 구속됐다.
지난해 미국에서는 사교계의 거물로 이름났던 러시아 스파이 안나 채프먼이 화제가 됐다. 온라인 부동산 회사를 운영하고 있던 28세의 이혼녀 채프먼은 유창한 외국어 실력과 화려한 외모로 뉴욕의 고급 클럽과 레스토랑을 드나들며 인맥을 쌓았다. 그는 그중에서도 미국 정부 관리들과 사업가들에게 접근해 정보를 건네받았으며, 이후 러시아에 넘기다 체포됐다. 다른 미녀 간첩들이 발각 후 총살되거나 반역죄로 목숨을 일은 반면 채프먼은 정계 진출을 고려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영국에서도 마이크 핸콕 하원의원의 여성 보좌관 카티아 자툴리베테르가 러시아 대외첩보 수집기관에 국방정보 유출 혐의로 체포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