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들 실현 의지 약하고 마케팅용 과대 포장 많단 지적…전문가들 “개념·평가 기준 정립해야”
#너도나도 ESG, 뭔데?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요소인 환경, 사회, 지배구조를 통칭하는 단어다. 유엔환경계획(UNEP)과 금융부문 간의 공공-민간 파트너십인 UNEP FI(유엔환경계획 금융이니셔티브)에서 쓰이다가 2004년 유엔글로벌콤팩트(UNGC)와 스위스 정부가 함께 발간한 한 보고서에서 공식 언급한 이후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기후 변화가 가시화하고 ESG가 재무 실적으로 이어지는 사례가 늘면서, 최근 투자 의사 결정 시 ESG 가치를 반영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가령 국내외 탄소배출권 수요 증가로 배출권 가격이 높아지면 철강 정유 화학 등 배출 기업들의 사업 부담이 커지고, 노사 갈등과 갑질·차별 등 사회적 문제로 기업 주가가 폭락할 수 있다. 또 오너일가에 유리한 지배구조 개편으로 주주의 피해가 발생할 수 있는 만큼, 이를 대비해 투자하는 전략인 셈이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상임이사는 “기존에도 윤리 경영, 지속 가능 경영, 기업의 사회적 책임(CSR) 같은 개념이 있었으나 무엇을 책임져야 하느냐는 질문에는 애매한 대답이 뒤따랐다"면서 "ESG는 비재무적 요소지만 재무 성과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보다 구체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재무제표는 과거 행위에 대한 결과물이라면 ESG는 앞으로 다가올 리스크를 따지는 방식으로, 미래를 잘 대비하는 기업에 투자하겠다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정치적 상황도 한몫했다. 미국에서 민주당 출신 조 바이든 대통령이 당선되면서 친환경 정책을 강조하고 우리나라 문재인 정부도 '탄소 순 배출량'을 2050년까지 0으로 만들겠다는 ‘넷제로(탄소중립)’ 선언을 하면서 ESG 열풍의 불을 지폈다. 이와 관련, 금융권 한 관계자는 “이상기후 현상이 심화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친환경에 대한 당위성이 커지고 강력한 친환경 공약을 내건 조 바이든 행정부가 출범하면서 ESG가 유행처럼 퍼졌다"며 "관련 테마주와 채권이 늘어나며 투자 업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 미국 시장조사업체 블룸버그NEF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전 세계 ESG 채권과 부채(대출·론) 시장 규모는 7321억 달러(약 827조 6000억 원)에 달한다. 2018년 3093억 달러에서 2년 만에 2배 이상 늘었다. 금융위원회 조사 결과, 국내 금융사들의 지난해 말 기준 ESG채권 상장 종목이 총 549개로 상장잔액만 82조 6000억 원에 달하는 등 ESG 경영을 화두로 삼아 금융 상품을 판매하고 있다.
글로벌 금융회사와 투자은행, 신용평가사 중심으로 상품 개발과 투자 의사 결정에 ESG를 적극 반영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국내 연기금과 5대 금융지주를 중심으로 이 흐름에 합류 중이라 기업에서 ESG 중요성은 갈수록 커질 전망이다.
#커지는 회의론, ‘ESG 워싱’ 우려도
산업 전반에서 ESG 경영을 외치고 있지만 개념 정립조차 안 돼 있다는 회의론이 제기된다. 증권사가 ESG 상품을 내놓지만 실제로는 탄소배출량 많은 기업에 대규모 투자하거나 기술주나 성장주를 ESG 펀드에 담는 경우가 많다. 기업들이 ESG 전략을 내놓으며 지속가능성장을 표방하지만 내용을 들여다보면 관련 없는 사업이 많고, 사실과 실현 가능성을 떠나 과대 포장해 마케팅 수법으로 활용하는 ‘ESG워싱’ 사례도 흔하다는 지적이다. 기업 재무 성과와 상관성이 낮다는 인식 속에서 ESG가 금융권 투자 방향이나 기업 경영 전략에 영향을 줄 만큼 위력을 갖진 못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주목도에 비해 실제 기업의 의지도 약하다는 평가다. 기업분석연구소 리더스인덱스가 국내 매출 상위 500대 기업 가운데 상장사 334곳을 분석한 결과 올 상반기까지 ESG위원회가 설치된 기업은 97곳(29%)에 그쳤다. 산업 분야별로는 통신(100%), 상사(83.3%), 철강(75%), 은행(70%) 순으로 설치 비중이 높았다. 포스코·현대제철 등 철강업종은 유럽의 탄소세 부과 등 여파로 설치 기업이 12곳 중 9곳에 달했으나, 철강과 마찬가지로 ESG 도입이 시급한 자동차와 부품, 조선기계 설비, 에너지 업종은 설치 비율이 20%대에 불과했다.
ESG 위원과 위원장 대부분 사외이사가 겸직하고 있어 전문성 논란도 불거진다. 위원장 이력은 학계 출신이 전체의 32%로 가장 많았고, 검찰·국세청 등 관료 출신과 재계 출신이 각각 26%로 뒤이었다. ESG 위원회가 전문성보다는 사외이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조직 아니냐는 지적이 뒤따르는 이유다.
MSCI, 블룸버그 등 글로벌 대형 ESG 평가사들의 평가지표가 상이해 평과 결과의 일관성이 없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무늬만 ESG에 그치는 사업들이 난립하는 만큼 기본 틀을 만들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아울러 ESG는 단일 기업이 아니라 산업 밸류체인 전반에 묶이는 회사들이 다 같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유도해야만 유의미한 성과를 낼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아울러 기업들의 노력이 필요한 만큼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해 자발적 참여를 유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실현성을 점검하려면 ESG 평가지표가 높은 기업들이 계속해서 성장하는지 봐야 하는데 아직 초기 단계로 시행한 기간이 짧아 상관관계를 파악하기 어렵다. ESG 평가방식 자체도 난립해 있어 투자사들이 어느 지표를 근거로 해야 하는지 모른다”며 “정부가 명확한 개념과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고, 중구난방인 ESG 평가방식을 표준화한 뒤, ESG관련 요소들을 의무적으로 공시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증권업계 한 관계자는 “대형 금융펀드와 연기금들이 ESG를 기준으로 점수화해 투자 차별화를 한다고 하니, 국내 금융권과 기업들도 따라가려는 움직임이 있다. 다만 아직은 이 회사가 ESG를 인지하고 있는지를 보는 수준으로, 명확한 기준 없이 ESG를 갖다 붙이는 요식 행위에 가까운 경우가 많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참고해 확실히 ESG라고 말할 수 있는 범주를 만들고, 유의미한 인센티브를 부여한다고 하면 기업들도 참여하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민간 관리 감독 기구에 대한 공적 예산 투입 필요성도 언급된다. 앞서의 양춘승 상임이사는 “ESG 계획을 만들어놓고 실행하지 않는 경우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에 감시가 필요하지만, 정부가 나서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기업 경영에 간섭할 수 있다”면서 “시민들이 기업 활동을 감시하면서 ESG에 반하는 수익 극대화 유혹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민간 기구의 적극적인 ESG 감시를 위한 정부 예산 지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김예린 기자 yeap12@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