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전들 다 빠져도 ‘잇몸’으로 정상 꽉
▲ 2010~2011 프로농구 정규리그 우승을 차지한 부산 KT 전창진 감독.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우승 당일에는 가슴이 벅차 올라 터질 정도였지만 하루 자고 나니까 이상하게 허무하더라고. ‘내일 뭐 하지?’ 하는 생각이 드니까 맥이 쫙 풀리는 거야. 너무 우승이 빨리 왔어. KT 부임 3년 차에 한 번 해보려 했는데. 하지만 이런 기회가 쉽게 오는 건 아니잖아. 왔을 때 못 잡는 사람이 바보지. 우리 팀은 4라운드 후반부터 조금씩 흔들렸어. 오랫동안 1위 자리에 있다 보니까 선수들이 그걸 지키려고 자기 플레이를 못하더라고. 1위를 한 경험들이 없다 보니까 소극적인 경기를 하다가 한 차례 혼도 나고 그랬지.”
도전
“동부를 떠날 때 주위의 90% 사람들이 만류했어. 더욱이 KT로 옮겨간다는 얘기에 어이없어 하는 표정들이었지. 솔직히 나도 좀 무모한 결정이란 생각도 들더라고. 하지만 번복할 수가 없잖아. 처음에 KT 선수들을 만나서 내 목표가 ‘우승’이라고 하니까 살짝 비웃더라고. 아무리 전창진이라고 해도 KT에서의 우승은 불가항력쯤으로 생각했나봐. 하지만 명색이 감독이란 사람이 목표를 플레이오프 4강 진입으로 잡을 수는 없는 거잖아. 선수들과의 두 차례 워크숍을 통해 서로의 마음과 귀를 열 수 있었어. 워낙 훈련 매섭게 시키는 감독으로 소문난 탓에 선수들도 잔뜩 긴장했고, 스타플레이어도 없고, 높이도 안 되고, 조직력도 없는 선수들한테 할 수 있는 건 무조건 훈련밖에 없었다고.”
부상
“정말 이 부분에선 3박4일을 얘기해도 모자랄 것 같아. 내가 제일 가슴 아파했던 부상이 송영진이었어. 영진이가 1쿼터에서 손가락이 부러졌는데도 그 사실을 숨기고 붕대로 손가락을 칭칭 감아 매고 연장전까지 뛴 거야. 다음 날 손가락이 골절됐다는 걸 알게 된 거지. 영진이는 우리 전력의 40%였다고. 신장도 크고 수비폭도 넓고 상당히 근성있는 선수거든. 그런 선수가 전력에서 이탈했으니 내가 뭘 할 수 있겠어. (표)명일이? 그 놈은 갈비뼈가 부러졌는데도 숨기고 뛰다가 상대 선수와 부딪힌 후 아예 드러누워버렸지. 박상오는 또 어떻게. 영진이 (김)도수, 명일이도 모두 누워있는데 팀 전력의 핵심인 박상오마저 발가락 부상을 당한 거야. 진짜 내가 그동안 죄를 많이 지었구나 싶었어. 그렇지 않고선 한 시즌에 주전 선수들이 마치 약속이라도 한 듯이 줄줄이 드러누울 수 있냐고. 다행이라면 박상오 부상이 오래 가지 않았다는 거야. 그런데 더 감사한 건, 이런 줄부상 속에서도 팀이 흔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지. 주전들이 빠지고 후보 선수들이 들어가서 뛰어도 팀 전력이 크게 달라지지 않는 거야. 정신력으로 커버한 거라고. 내가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한두 발자국씩 더 뛴 거지. 정말 KT 선수들 대단한 애들이야. 존경스러울 정도로 애들이 완전히 달라졌어.”
제스퍼 존슨
“시즌 막판에 제스퍼 존슨이 부상으로 아웃됐을 때 겉으로는 KT 우승이 물 건너간 분위기였어. 나도 순간적으론 끝났구나 싶었지.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보면 제스퍼 존슨 때문에 놓친 경기가 꽤 되거든. 그 친구의 플레이가 상당히 불만족스러웠던 적이 많았어. 제스퍼 존슨한테는 정말 미안한 얘기지만, 그가 부상을 당함으로써 내가 가야 할 방향이 확실히 세워졌어. 올 시즌 KT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 버티는 데 익숙해 졌거든. 제스퍼 존슨이 없으면 찰스 로드를 중심축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지. 찰스 로드가 저렇게 펄펄 뛸 줄 누가 알았겠어. 수많은 용병들 중에서 나한테 가장 많이 혼난 선수가 찰스 로드인데 지금은 나한테 농담도 걸고 살살 장난도 칠 정도로 친근감을 표현해. 용병들 중에서 찰스 로드가 제일 착한 놈인 것 같아.”
노하우
“난 외국인 선수라고 해서 예외를 안 둬. 그래서 외국인 선수를 뽑을 때 실력보다 인성을 먼저 보고 뽑지. 내가 지랄을 해도 꾹 참고 견딜 수 있는 선수인지 아닌지를 가늠해 보는 거야. 훈련도 똑같이 하고, 욕도 똑같이 먹고, 외국인 선수에 의존하는 플레이보다는 코트에서 뛰는 5명의 선수들과 벤치에서 대기 중인 7명의 선수들이 똑같이 움직일 수 있는 플레이를 중요시해. 그래야 선수가 교체돼 들어가도 같은 흐름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 찰스 로드는 김승기 코치의 작품이야. 그 친구도 처음 KT에 왔을 때는 지금 들어온 앤서니 존슨 같은 체력이었다고. 훈련량이 많다고 불만을 토로하고, 코트에서 어슬렁거리다 혼도 많이 났어. 김 코치가 찰스 로드를 맡아서 훈련시킨 덕분에 40분을 뛰어 다녀도 멀쩡한 체력으로 탈바꿈된 거지. 한번은 단장님과 짜고 찰스 로드를 집으로 돌려 보내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후 숙소에서 쫓아낸 적도 있었어. 네가 월 2만 5000달러를 받는 선수라면 그에 걸맞은 실력을 보여줘야 하는데, 지금처럼 성의 없는 플레이로 일관한다면 집으로 돌려보낼 수밖에 없다고 내보낸 거지. 단장이 찰스 로드를 불러서 잘 타일렀어. 감독 말 안 들으면 비행기 태울 수밖에 없다고. 그 다음부터 조금씩 달라지더라고. 그 친구들은 절대 안 돌아가. 미국에서 2만 5000달러 벌기가 어디 쉬운가?”
위기
“내가 제일 좋아하는 말이 ‘난세에 영웅이 난다’는 말이야. 네 번째, 다섯 번째 선수들이 다쳐서 못 뛰면 여섯 번째, 일곱 번째 선수들이 그 역할을 해줘야 하는데, 우리가 그걸 해냈어. 윤여권 양우섭 박성운 등은 1년 내내 코트에서 뛰지 못하고 공만 줍던 선수들이었어. 그런 선수들이 지방 원정 경기 갔다가 새벽 12시에 숙소에 도착했는데 잠도 안 자고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하더라고. 내가 나가서 그만하고 잠을 자라고 만류해도 몰래 새벽에 연습을 했던 친구들이 결국엔 큰일을 해내는 모습을 보며 내가 감동할 정도였어. 우리 팀 애들은 포지션별로 경쟁을 벌이면서도 서로 시기하는 경쟁이 아닌 서로를 가르쳐주고 격려하며 경쟁을 벌여. 이런 거 보면 내가 참 인복이 많은 사람이야.”
은인
“난, 내가 감독을 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했어. 원주 동부에 있을 때 지금 KCC의 최형길 단장이 어리바리한 날 감독으로 만들어 줬지. 그 분이 나한테 원주 동부 사령탑을 맡겼을 때 정말 고민 많았어. 내가 과연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최 단장이 뭘 믿고 나하테 그런 중책을 맡겼을까 싶기도 했어. 그래서 난 그 분을 평생 잊지 못해. 지도자 경험이 없었던 내가 택한 방법 중 하나가 선배 감독들한테 항상 물어봤다는 거야. 위기 관리 능력이나 전술, 용병술, 이런 부분 등을 최인선 감독이나 김태환 감독, 최희암 감독님께 많이 질문 드렸어. 내가 어떻게 해야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는지를. 앞으로 최형길 단장과 날 이끌어준 선배 감독님들에 대한 고마움을 갚아가면서 살아가고 싶어.”
한때 승부에 대한 스트레스가 심하다 못해 정신과 상담을 받으며 마음을 다스리기도 했다는 전창진 감독. 담당 의사의 권유로 잘 때마다 목사님 설교 테이프와 찬송가를 틀어놓고 잠자리에 들었다는 그는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이 스트레스인 것 같다고 토로했다. 연신 담배를 피워대는 그한테 ‘만약 KT가 챔피언결정전에 오른다면 어느 팀이 상대팀으로 만날 것 같냐’고 물었다. 그는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한다.
“아무래도 KCC와 맞붙을 확률이 높지 않을까? KCC는 지난 시즌에도 챔프전에 올라간 경험에다 우승 경력까지 있기 때문에 결코 무시할 수 없는 팀이거든. 허재가 내 앞에선 허허실실 작전을 펴도 그 속은 알 수가 없어. 내가 자주 얘기하잖아. 허재한테는 ‘치명적인 매력’이 있다고. 하하.”
전주=이영미 기자 riveroflym@ilyo.co.kr
전창진-허재-은사 최형길의 수다
허재 “형 땜에 감독들 스트레스”
전창진 감독과 인터뷰가 있는 날, 전주 KCC 허재 감독과 최형길 단장이 전 감독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 감독이 평생 은인으로 꼽는 최 단장이 경기 전날 전주로 내려온 이유는 전 감독의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농구 코트에서는 상대팀 감독과 단장의 관계지만 사석에서는 ‘적과의 동침’을 즐기는 세 사람답게 상대방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주고, 아픔을 같이 슬퍼해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허 감독은 전 감독에게 이런 하소연을 늘어놨다.
“요즘 형 때문에 감독하기가 더 힘들어졌어. 경기에서 패하면 부상 선수들 많아서, 외국인 선수가 말을 안 들어서, 전력 보충이 안 돼서, 등등의 핑계를 대기가 어려워. 형이 그런 상황에서도 우승을 했기 때문에 다른 감독들이 핑계를 못 대. 형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감독들이 늘어났다니까.”
물론 약간의 진정성이 담긴 농담이었다. 이 얘기는 다른 종목의 한 감독한테도 들은 내용이다.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는 바람에 5연패를 거듭하자, 구단 고위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는 것. ‘농구의 전창진 감독은 주축 선수가 모두 부상당해도 1위만 하는데, 우린 왜 그게 안 되느냐’며 소속팀 감독에 대한 원망을 늘어놨다고 한다.
전 감독의 우승 스토리는 모기업인 KT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전 감독을 아끼는 KT 이석채 회장이 사장단 모임에서 농구팀 우승을 꺼내들며 ‘악조건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이 진정한 기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무슨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얘긴 하지도 말라’고 야단을 쳤다는 것.
이에 대해 전 감독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걸 부산KT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라고 말했다.
허재 “형 땜에 감독들 스트레스”
전창진 감독과 인터뷰가 있는 날, 전주 KCC 허재 감독과 최형길 단장이 전 감독과 저녁 식사를 같이 하기 위해 기다리는 중이었다. 전 감독이 평생 은인으로 꼽는 최 단장이 경기 전날 전주로 내려온 이유는 전 감독의 정규리그 우승을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비록 농구 코트에서는 상대팀 감독과 단장의 관계지만 사석에서는 ‘적과의 동침’을 즐기는 세 사람답게 상대방의 기쁨을 같이 기뻐해주고, 아픔을 같이 슬퍼해 주는 부분이 인상적이었다.
허 감독은 전 감독에게 이런 하소연을 늘어놨다.
“요즘 형 때문에 감독하기가 더 힘들어졌어. 경기에서 패하면 부상 선수들 많아서, 외국인 선수가 말을 안 들어서, 전력 보충이 안 돼서, 등등의 핑계를 대기가 어려워. 형이 그런 상황에서도 우승을 했기 때문에 다른 감독들이 핑계를 못 대. 형 때문에 스트레스받는 감독들이 늘어났다니까.”
물론 약간의 진정성이 담긴 농담이었다. 이 얘기는 다른 종목의 한 감독한테도 들은 내용이다. 주축 선수가 부상으로 전력에서 이탈해 있는 바람에 5연패를 거듭하자, 구단 고위 관계자가 이런 얘기를 하더라는 것. ‘농구의 전창진 감독은 주축 선수가 모두 부상당해도 1위만 하는데, 우린 왜 그게 안 되느냐’며 소속팀 감독에 대한 원망을 늘어놨다고 한다.
전 감독의 우승 스토리는 모기업인 KT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일으켰다는 후문이다. 전 감독을 아끼는 KT 이석채 회장이 사장단 모임에서 농구팀 우승을 꺼내들며 ‘악조건에서도 성공하는 기업이 진정한 기업으로 거듭난다. 앞으로 무슨 이유 때문에 하지 못했다는 얘긴 하지도 말라’고 야단을 쳤다는 것.
이에 대해 전 감독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 각자가 처한 상황이 다르기 때문에 모든 걸 부산KT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