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 입이 모이면 그놈 얼굴 보인다
▲ 메인기사 사진-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이재선 형사가 몽타주를 만드는 과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
수사과정에서 목격자들의 증언을 통해 만들어지는 ‘몽타주’는 범인 검거에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어떻게 하면 목격자들의 입을 통해 범인 얼굴을 시각화할 수 있는지 신기하기까지 하다. 한 장의 몽타주가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다. 몽타주는 오로지 전하는 말에 의해 그려진 그림이다. 그 과정을 들여다보면 여간 어렵지 않은 기술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일요신문>은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의 도움을 받아 그동안 잘 알려지지 않은 몽타주의 세계를 낱낱이 파헤쳐봤다.
몽타주는 마땅한 단서가 없는 미해결사건 수사과정에서 최후의 수단으로 강구되는 전통적인 수사기법이다. ‘모은다(montor)’라는 어원에서도 알 수 있듯, 몽타주는 철저히 목격자들의 증언 속에서 범인 얼굴의 윤곽과 특징을 조합해 만든 그림이다. ‘사진’과 같은 완벽한 싱크로율까지는 힘들더라도 몽타주에는 범인만이 갖고 있는 결정적 특징들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그렇다면 한 장의 몽타주가 나오기까지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기자와 만난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이재선 몽타주 담당형사의 설명을 들어보니, 준비과정부터 쉽지 않아 보였다.
이 형사는 “우리는 일선 수사담당 형사를 지원하는 부서다. 우선 사건을 수사하는 해당 경찰서에서 ‘몽타주’ 작성 의뢰를 받게 된다. 피해자를 만나기 전, 해당 사건 자료를 넘겨받고 기본적인 분석을 실시한다. 이후 피해자의 현재 상태를 파악한다. 대부분 범죄피해로 인해 불안해하기 때문에 기본적인 심리상태를 체크하고, 기본 시력 및 당시 범인 목격 각도와 거리, 범인과의 대화 여부 등을 정밀하게 파악한다. 몽타주는 목격자의 진술이 핵심이기 때문에 이러한 사전 준비과정은 매우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실제 범인의 모습을 묘사할 목격자의 심리상태는 몽타주의 정확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범죄 피해 이후, 심리적 안정이 어려운 피해자를 대상으로는 법 최면전문가를 대동한 가수면 상태의 최면요법이 실시된다. 때로는 심리적 안정을 위해 자택조사가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 형사는 “심리상태가 불안한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최면요법을 실시하면 어느 정도 기억력을 되살릴 수 있다. 나름 큰 효과를 보기도 한다”고 전했다.
본격적인 몽타주 작성에는 ‘응용 프로그램’이 동원된다. 예전에는 일일이 신체 샘플사진을 조합해 몽타주를 만들거나, 직접 손으로 그렸으나 90년대 이후 모든 것이 전산화됐다. 현재 우리 경찰은 지난 99년 국내 업체가 개발한 응용프로그램을 사용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외국에서 프로그램을 빌려 사용하는 실정이었으나, 동양인의 신체적 특징에 맞춰 고안한 현재 프로그램이 개발되면서 정확도가 높아졌다는 평가다.
기자는 ‘몽타주실’에서 진행한 프로그램 시연을 직접 지켜봤다. 기본적인 얼굴 윤곽을 설정한 뒤, 눈과 코, 귀, 입 그리고 머리모양이 차례로 조합되는 시스템이었다. 또 응용프로그램으로 주름살과 낯빛을 설정해 연령대를 조절할 수 있었고 미간 길이와 눈썹 각도 등 세밀한 묘사도 가능했다. 또 프로그램은 스크린 터치가 가능한 태블릿PC에서 가동돼 직접적인 수작업도 가능했다.
하지만 정밀한 프로그램이 갖추어져 있더라도 목격자의 진술이 불명확하면 정확한 몽타주가 나오기는 어렵다. 이 점은 몽타주 작업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한다. 이 형사는 “아무리 실력이 뛰어난 화가나 프로그램이 있다 하더라도 목격자의 진술이 불명확하면 할 수 없는 거다. 얼마 전 관내에서 부부를 상대로 한 강도사건이 발생했다. 부부 모두 범인을 목격했지만, 서로 전혀 다르게 범인을 묘사해 애를 먹었다. 우리 입장에서는 최대한 실물과 비슷한 몽타주를 만들려고 노력하지만 실제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또한 몽타주의 정확도는 절대적으로 시간과 비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사람의 기억력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지워지기 마련이다. 최초 목격 이후 얼마나 단시간에 목격자 진술이 이루어지느냐에 따라 정확도가 결정된다. 만약 사건발생 이후 곧바로 진술이 이루어진다면 정확도가 매우 높은 몽타주가 나올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흔히 말하는 몽타주의 싱크로율은 어느 정도일까. 이를 수치화하기는 매우 어렵지만 일선에서 몽타주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이 형사의 설명에 따르면 대략 60~70%의 싱크로율로 볼 수 있다고 한다. 기자는 경찰이 제공한 검거 후 범인의 사진과 검거 전 작성한 범인의 몽타주를 대비해 놓은 자료를 들춰봤다. 사진과 몽타주를 비교해 보니 싱크로율은 상당한 수준이었다. 비록 사진처럼 실물과 똑같을 수는 없지만 범인의 중요한 특징들은 요모조모 들어가 있었다.
실제 몽타주는 수사선상에서 보조수단으로, 때로는 결정적인 단서로 적극 활용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형사는 “수사를 담당하는 해당 사건의 일선 형사들은 범인 검거 과정에서 몽타주를 적극 활용한다. 실제 몽타주가 큰 도움을 준 사례도 꽤 있다. 일선에서 수사를 담당하는 형사들에게 이러한 말을 직접 듣곤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또 한 가지 몽타주의 결정적인 역할은 용의자에 대한 심리적 압박이다. 자신의 얼굴이 여기저기 내걸리면 용의자는 부담을 가질 수밖에 없다. 그것을 이기지 못해 자수하는 용의자도 꽤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해 8월에 검거된 ‘중랑구 연쇄성폭행 사건’의 범인은 몽타주 수배의 압박을 못 이겨 자수한 바 있다.
한편 현재 몽타주 전문 수사관은 전국적으로 30명가량 포진해 있다. 이들은 정기적으로 인물학자, 화가, 프로그래머 등 전문가들을 통해 해당 분야 연수를 받고 있다. 경찰은 현재 몽타주 전문 수사관들의 별도 인증을 추진하고 있다. 자격요원 인증을 통해 전문성을 더욱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경찰은 얼마 전 방송을 통해 선보인 바 있는 3D 몽타주 프로그램 개발을 적극 추진 중이다. 만약 이 프로그램이 현실화된다면 범인의 세부적인 입체적 특징까지 잡아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화성연쇄살인 범인 몽타주로 재현 화제
20년 숨은 악마 찾을 수 있을까
지난 5월 7일 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800회 특집으로 방영한 ‘대한민국 3대 미스터리 사건-화성연쇄살인사건 편’에서 범인의 몽타주를 공개했다. <그것이 알고 싶다>는 이날 방송을 통해 최초 사건 발생 이후 25년이 지난 현재까지 여전히 미제로 남은 ‘화성연쇄살인사건’을 다시 추적하는 한편, 현대 최첨단 과학기술을 이용한 범인의 입체 몽타주를 완벽히 재현했다.
이날 방송을 통해 공개된 몽타주는 당시 범인을 목격한 버스기사와 범인의 추가범죄로 추정되는 성폭행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됐으며 ‘인체 조형연구소’의 특수 제작기술을 빌어 완성됐다. 공개된 몽타주의 정밀함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몽타주로 재현된 범인은 키 165~170㎝의 단신에 갸름한 턱 선과 눈매를 특징으로 하는 20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의자의 손은 매우 부드러웠으며 이따금 거친 욕설을 내뱉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용의자는 새끼손가락에 일반 남성들은 잘 하지 않는 봉숭아물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지난 86년부터 91년까지 화성 인근에서 발생한 ‘화성살인사건’은 10대 소녀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상대로 10건의 연쇄살인이 발생한 희대의 미스터리사건으로 손꼽힌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속옷 등 옷가지로 결박된 상태로 가학적인 신체훼손이 이루어진 끔찍한 사체로 발견돼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법률개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20년 숨은 악마 찾을 수 있을까
▲ 박스기사 사진-SBS <그것이 알고 싶다>는 화성연쇄살인사건의 범인 몽타주를 재현해내 화제가 됐다. 사진제공=SBS |
이날 방송을 통해 공개된 몽타주는 당시 범인을 목격한 버스기사와 범인의 추가범죄로 추정되는 성폭행 사건 피해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현됐으며 ‘인체 조형연구소’의 특수 제작기술을 빌어 완성됐다. 공개된 몽타주의 정밀함 때문에 네티즌 사이에서 크게 화제가 되기도 했다.
몽타주로 재현된 범인은 키 165~170㎝의 단신에 갸름한 턱 선과 눈매를 특징으로 하는 20대 남성인 것으로 나타났다. 목격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용의자의 손은 매우 부드러웠으며 이따금 거친 욕설을 내뱉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또 용의자는 새끼손가락에 일반 남성들은 잘 하지 않는 봉숭아물을 들인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지난 86년부터 91년까지 화성 인근에서 발생한 ‘화성살인사건’은 10대 소녀부터 70대 노인까지 다양한 계층의 여성을 상대로 10건의 연쇄살인이 발생한 희대의 미스터리사건으로 손꼽힌다. 피해자들은 하나같이 속옷 등 옷가지로 결박된 상태로 가학적인 신체훼손이 이루어진 끔찍한 사체로 발견돼 사람들을 경악케 했다. 이 사건은 2006년 공소시효가 지났지만 살인과 같은 강력범죄에 대한 공소시효 법률개정에 대한 여론이 형성되면서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