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앓이 끝에 스러진 아이들…유족 “공정하고 철저한 수사·재판으로 진실 밝혀달라”
지난 5월 친구의 의붓아버지로부터 성범죄 피해를 당한 뒤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알려진 충북 청주의 여중생이 남긴 유서가 공개됐다.
22일 숨진 피해자 A 양의 부모는 딸의 유품을 정리하던 중 발견했다면서 이날 청주 성안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편지지 4장 분량의 유서 내용을 최초 공개했다.
'사랑하는 부모님께'로 시작되는 유서에서 A 양은 "엄마아빠 가슴 아프게 해서 미안하다. 부모님이 내 곁에서 위로해줘서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것 같다"며 "나 너무 아파 어쩔 수 없었다. 솔직하게 다 털어놓았으면 좋았을 텐데, 그러면 우리 엄마아빠가 또 아플까봐 미안해서 못 얘기했다. 그만 아프고 싶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우리 아빠 누구보다 많이 여려서 아파하실까 걱정된다"며 "아빠가 나 때문에 걱정 많이 하고 잠 못 드는 게 싫다. 마음 쓰지 말고 편하게 지내셔야 해, 꼭"이라며 마지막까지 가족을 걱정했다.
이어 "나는 그만 아프고 싶어서. 혼자 이기적이어서 미안합니다. 불효녀가 되고 싶진 않았는데 미안해요"라며 극단적 선택을 암시하기도 했다.
A 양은 또 "나에게 하나 뿐인 소중한 엄마, 아빠여서 고마웠다"며 "나쁜 사람은 벌 받아야 한다. 이 일이 꼭 좋게 해결됐으면 좋겠다. 그날만 생각하면 손이 막 엄청 떨리고 심장이 두근댄다"며 피의자가 엄벌을 받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유서 말미에는 친구들을 향한 마지막 인사도 남겼다. A 양은 "중학교 친구들이 너무 그립고 보고싶다. 너희의 소중함을 이제서야 느낀다. 내 얼굴 잊지말고 기억해 달라"고 적었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유족들은 "아동·청소년 성폭행은 그 자체가 삶을 죽이는 살인"이라며 "사건의 진실이 무엇인지 철저한 수사와 재판을 통해 밝히고 더 이상 한 맺힌 아이들이 생기지 않도록 법과 제도를 개선해 주시길 간곡히 요청한다"고 호소했다. 또 피의자에 대해서도 "재판에서 뻔뻔하게 (범죄를) 부인하고 있다"면서 "공정한 재판을 통해 엄벌해 달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앞서 지난 5월 12일 오후 5시께 청주 오창읍의 한 아파트에서 여중생 2명이 극단적 선택을 한 채 발견됐다. 두 학생은 숨지기 전 경찰에서 성범죄와 아동 학대 피해로 조사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으며, 피의자는 숨진 두 학생 중 한 명의 의붓아버지였다.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위반(친족관계에 의한 강간), 아동학대 등 혐의로 기소된 피의자는 지난 7월 23일 열린 첫 공판에서 의붓딸과 A 양에게 자신의 집에서 술을 마시게 한 혐의는 인정했지만 성범죄는 모두 부인했다. 2차 공판은 오는 9월 15일 오후 2시 청주지법 223호 법정에서 열린다.
김태원 기자 deja@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