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짝 잃은 외기러기(이혼·사별 후 홀로 사는 중년남)’도 위험하다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자살 기도를 한 사람 가운데 94%는 이전에 자살을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있으며, 자살에 대한 고민 후 평균 1~2년 뒤에 자살을 시도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처음으로 자살을 시도한 연령은 계획된 자살군의 경우 24세였으며, 충동자살군은 26세였다.
자살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이 첫 자살 시도까지 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계획군은 1.1년, 충동자살군은 1.9년으로 나타났다. 자살시도는 계획된 자살군이 약 2회로 충동자살군 1.4회보다 높아 계획된 자살군이 실제로 자살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났다.
대부분(94%)의 대상자는 자살시도를 하게 만드는 어떤 원인이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자살 직전 어떠한 원인이 폭발해 자살을 시도하는 것이다. 계획된 자살군과 충동자살군 모두 가장 큰 원인은 가족 간 갈등이었고 다음은 경제 문제, 별거나 이혼, 질병 등 순으로 나타났다.
자살시도를 한 경우 우울증, 알코올 오남용을 비롯한 정신적인 취약성이 있는 경우가 전체의 절반 이상이었다. 특히 충동자살군은 우울증이 있는 경우가 더 많았다. 조울증 같은 양극성 장애가 있는 경우에 충동적인 자살 시도의 위험은 3.5배 증가했다.
#여성이 자살률·우울증 위험 더 높아
여성의 경우 자살률과 우울증 발병 위험이 남성보다 더욱 높아 주의가 필요하다. 여성들의 우울증 평생 유병률은 약 20% 정도로, 남성의 약 10%에 비해 2배나 높다.
여성은 9~13세에 우울증 발생빈도에서 남녀차를 보이기 시작해 사춘기 이후부터 중년기까지 남성보다 높은 발생 빈도를 보인다. 15~44세 여성에서의 각종 질환의 질병부담 중 1위를 차지하는 것이 바로 우울증이다. 따라서 여성은 남성보다 우울증 조기 발병위험이 높은 편이고, 가임기 연령에 우울증 발생 빈도가 가장 높다.
여성의 우울증에는 유전적 원인과 함께 여성의 생식주기에 따른 월경 전, 임신 중, 출산 후, 폐경기 같은 특정 시기의 여성 생식호르몬 변화가 영향을 미친다. 또한 여성은 쌓이는 스트레스로 인한 우울증과 계절성 우울증이 남성보다 3배가량 더 많다.
#중년 남성 우울증도 느는 추세
여성보다 적기는 해도 우울증에 시달리는 중년 남성들도 의외로 많다. 평소 지나치게 세심하거나 꼼꼼한 성격, 강박적인 성격을 가진 남성들이 우울증에 잘 걸린다.
“남성의 우울증은 방치하는 사이에 증상이 심해지면 좀 더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해, 자살 시도자 중에 실제 자살에 이르게 될 확률이 여성보다 높다”는 것이 유제춘 을지대학병원 정신과 교수의 설명이다.
보통 남성이 여성보다 심리적으로 강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만도 않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의 강도가 높아져 직장과 관련된 스트레스 때문에 중년 우울증에 걸리는 경우가 가장 많다.
또 가족과 떨어져 살거나 이혼·사별 등으로 혼자 사는 남성들도 주변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어 보여도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대상이다. 당뇨병처럼 꾸준한 관리가 필요한 만성질환 때문에 우울증이 찾아오기도 한다.
하지만 우울증에 걸린 남성의 대부분은 자신이 우울증이라는 사실을 모르거나, 알더라도 자신이 우울하다는 사실을 다른 사람들에게 숨기려는 경향이 강해 주변에서 눈치 채기가 어렵다. 그래서 단순한 두통이나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 알코올 의존 등의 증상으로 다른 과를 거쳐 우울증 클리닉을 찾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말기보다 초기에 자살 시도
전체 우울증 환자의 자살률은 10~15%(가벼운 우울증은 빼고 주요 우울증으로 진단이 되는 환자 중)에 이를 정도로 우울증은 자살을 유발하는 가장 흔한 정신장애다. 주로 우울증 말기보다는 초기에 자살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우울증이 있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겨 방치하거나 정신질환에 대한 편견으로 지레 여러 가지를 걱정해 병원을 찾지 않는다. 정신과 진료를 받는다고 모두 치료를 하는 것은 아니고, 우울증이 유전질환도 아니다.
우울증으로 진단,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약물치료뿐만 아니라 상담을 통해 원인이 되는 부분에 대해 공감하고 일상생활에서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을 배우는 정신치료, 인지행동 치료를 병행하게 된다.
유제춘 교수는 “하지만 우울증이 좋아지더라도 스트레스를 받는 환경이 개선되지 않고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해소할 방법이 없으면 재발률이 높다”고 강조했다.
물론 우울증을 스스로 인정하지 않거나 자각하지 못하는 이들도 많다. 전문가들은 실제 치료를 받는 이들은 환자의 20% 정도에도 못 미칠 것으로 본다. 때문에 우울증 환자들이 제대로 치료를 받지 못한 채 술로 기분전환을 하다 충동적으로 자살에 이르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된다.
만약 환자가 자살, 죽음에 대해 말할 때는 반드시 전문가에게 알리고 함께 대처해야 한다. 죽음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우울해하던 사람이 신변정리를 하거나 아끼던 물건을 주는 경우, “고맙다”는 투의 말을 주변 사람들에게 하는 경우, 외모에 전혀 무관심해지거나 갑자기 기분이 좋아지는 등의 변화를 보이기도 한다.
특히 자살을 시도하는 사람은 충동적으로 자살 행동을 하기도 하지만 오랜 시간 동안 절망감 속에 자살에 대한 계획을 세우기도 하기 때문에 주변의 관심과 배려가 중요하다.
송은숙 건강전문 프리랜서
도움말=유제춘 을지대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