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공화국에 ‘폭탄’ 한방
▲ 4월 26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제3차 미래와 금융 정책토론회에서 곽승준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이 기조연설하고 있다. 연합뉴스 |
그럼에도 곽 위원장이 ‘갑툭’ 말을 던질 때마다 터보엔진이 걸리는 것은, 여권 내 그의 포지션 때문이다. 그는 이명박 대통령과는 10년 넘게 호흡을 맞춰온 MB노믹스의 경제실세 6인방 가운데 한 명이다. 연기금 발언에 대해 재계가 즉각 민감하게 대응하거나 여당에서도 재빠르게 ‘표 계산’을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지만 ‘사교육 철폐’ 등 그의 갑툭 발언이 정책의 핵심이 된 적은 거의 없다. 오히려 ‘뒷감당 못하고 일만 저지르는 악동’이라는 이미지가 덧칠돼 있다. 이상을 향해 죽으러 달려가는 돈키호테 같은 ‘왕의 남자’ 곽승준 위원장의 이면을 탐색해봤다.
“한쪽에서는 곽승준이 또 사고 쳤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은 지난 4월 26일 ‘공적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를 주제로 한 정책토론회에서 “대기업 경영진의 잘못을 연기금이 나서 견제해야 한다”는 요지의 발언 말미에 이렇게 ‘사고 쳤다’는 말도 했다. 그동안 사교육 철폐 발언 등 몇 번의 사고 전력이 있는 그로서는 자신의 직격탄이 어떤 파편을 만들어낼지 충분히 의식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그의 ‘예상’대로 직접 이해관계가 있는 재계는 말할 것도 없고, 일선 경제부처 더 나아가 여당에 이르기까지 ‘삼 파장’이 일고 있다. 재계는 오너의 기업 소유권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생존권 문제에, 경제부처는 청와대의 성장압박을 거스를 수 있는 정책 딜레마에, 여당은 집토끼를 잃어버릴 수도 있다는 정무 위기감에 각기 몸을 떨고 있기 때문이다.
먼저 여당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도 ‘생소하다’며 코멘트 하기를 꺼렸던 ‘난데없는’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라는 개념에 대해 간략하게 짚고 넘어가자. 정부 산하기관인 국민연금은 우량기업인 포스코와 하이닉스, KT, KB금융지주의 1대 주주이며, 무려 139개 상장사 주식의 5% 이상을 갖고 있는 ‘큰손’이다. 하지만 정부는 민간기업 통제 논란 등의 이유 등으로 그동안 의결권과 같은 주주로서의 권리를 적극적으로 행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연기금의 주주권 행사는 지난 2002년 김대중 정부도 추진했고, 2004년 노무현 정부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를 명문화했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김대중 정부는 외환위기 수습책으로 재벌 개혁을, 노무현 정부는 진보적 이념을 바탕으로 대기업 견제를 하려고 했지만 모두 구두선에 그쳤을 뿐 실질적인 정부-기업 간 전쟁은 없었다. 이런 점에서 곽 위원장의 연기금 발언도 갑자기 나온 건 아니다. 하지만 정책추진의 배경은 좀 차이가 있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김대중-노무현 정권 당시만 해도 연기금 주주권 행사는 대기업이 문어발식 확장으로 공룡기업으로 진화하는 것을 정부가 가진 지분으로 견제하겠다는 취지였다. 기업의 투명성을 높이고 경제구조를 바로잡겠다는 명분이다. 그런데 곽 위원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동반성장 등의 문제는 정부의 직접 개입보다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를 통해 접근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라고 말한 게 확전의 도화선이 되고 있다. 과거 정부처럼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에 대한 견제라고 했으면 앞선 정권과 별 차별점이 없었지만 이명박 정권이 최근 급추진하고 있는 동반성장이란 단어가 들어가면서 경제논리가 ‘정치화’되고 있는 것이다.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최근 “공개적인 주주권 행사는 오히려 환영한다”며 연기금 주주권 행사에 대해 ‘동의’한 데서 나타나듯, 재계도 그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연기금은 이사회나 주주총회를 통해 권한을 행사함으로써 대기업을 좀 더 투명하고 윤리적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공감대가 형성돼 있다. 그것이 결국 글로벌 기업으로 향하는 지름길이자, 기업을 오래가게 만드는 길이기도 하다.
하지만 곽 위원장이 방점을 찍고 있는 대기업-중소기업 동반성장이란 ‘갑툭 명제’에 대해선 손사래를 치며 발끈하고 있다. 재계에선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통해 투자 수익성을 높일 수는 있어도 대기업의 미래 성장 동력을 발굴한다거나 대-중소기업 상생을 촉진한다는 얘기는 듣보잡(듣도 보도 못한 잡스러운) 이야기다”라며 비난하고 있다. 곽 위원장을 비롯한 현 정권의 동반론자들이 최근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동반성장이라는 개념은 옳지만 연기금 주주권 행사라는 도구를 이용한다는 것은 ‘연목구어’(나무에 올라 고기를 얻으려고 한다는 뜻으로, 목적과 수단이 맞지 않아 불가능한 일을 굳이 하려 함)라는 판단이다.
여기서부터 곽 위원장의 돈키호테식 정책추진 논란이 발화하고 있다. 그동안 그의 ‘행적’을 보면 큰 틀에서 옳은 이야기였지만 정책추진이라는 옷을 만들 때 현실의 몸에 전혀 맞지 않게 멋대로 재단만 한다는 비판이 정·재계에서 줄기차게 제기돼 왔다. 대표적인 것이 사교육 철폐 논란이었다. ‘학원 10시까지 교습제한’ 등 일부 성과도 있었지만 결국 정부와의 갈등만 유발한 채 실패한 정책으로 막을 내렸다. 이렇듯 여권에서 곽 위원장은 사고 잘 치고 톡톡 튀는 실세로 정평이 나 있다. 이는 이명박 대통령의 인사관과 직결되는 부분이다. 이 대통령의 독특한 인사관이 곽승준이라는 ‘돈키호테’ 참모를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다음은 대선 캠프의 한 고위 관계자 증언.
“이 대통령은 사석에서 수시로 ‘사고를 치는 사람이 일을 잘하는 사람이다. 가만히 앉아서 주어진 일만 조용히 하는 사람은 능력이 없는 사람이다. 사고를 쳐야 성과가 난다’라고 말했다. 참모들도 당연히 그런 말에 긴장하게 된다. 무리수를 두게 되는 것이다. 일단 튀고 달그락거리며 소리를 내 일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었다. 하지만 실제로 튀는 전략들이 먹히는 사례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일종의 로또식 인사스타일 아니었겠느냐.”
사실 한나라당 소장파 정두언 나경원 의원 등은 곽 위원장의 연기금 발언에 적극 동조하고 있다. 재벌개혁이라는 큰 틀에서 연기금 견제는 방향이 맞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소장파 내에서 다른 목소리도 들린다. 소장파의 한 핵심 전략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곽 위원장은 박영준 지식경제부 차관과 친분을 유지하다 소장파와도 가깝게 지내는 등 신뢰감이 별로 들지 않는 인물이다. 언행도 직설적이라 없는 적도 만들어 내 분란을 일으키는 스타일이다.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정책 추진 방향과 과정에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이번 논란도 곽 위원장이 이 대통령의 본심을 정확히 간파했다고 착각한 나머지 오버한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실제로 이 대통령은 그의 발언이 있고 이틀 뒤 ‘우리 정부의 본질은 친 시장이며, 그 다음이 못 따라오는 약자를 배려하는 것이다. 그 기조에 혼동을 주는 쓸데없는 이야기들이 안 나왔으면 좋겠다’라며 연기금 논란을 봉합하는 발언을 했다).
한나라당의 한 초선 의원도 이에 대해 “경제 실세 6인방이면서도 여권 내에서 별다른 포지셔닝을 하지 못하고 있는 곽 위원장이 정권 후반기로 가면서 아무런 실적이 없자 조급한 마음에 정부 부처와의 사전 조율도 없이 일단 저지르고 본 것 같다(김희정 청와대 대변인도 정부부처와의 조율이 없었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에게 수시로 보고를 하는 과정에서 ‘진행하라’는 사인을 확대 해석하며 독단적으로 밀어붙였을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경제실세 6인방(강만수 사공일 윤진식 류우익 백용호 곽승준) 가운데 한 명으로서 초대 국정기획수석직에 올랐다가 촛불집회 때문에 4개월 만에 청와대를 떠났다. 그 뒤 2009년 1월 장관급인 미래기획위원장으로서 화려하게 복귀한 뒤 이 대통령과 가끔 따로 만나 국정 현안에 대해 의견을 나누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런 부침의 과정에서 곽 위원장이 정책결정의 변방으로 밀려났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지만 부친이 현대건설 부사장으로 이명박 ‘사장’을 오랫동안 보좌해온 인연으로 대통령의 곁을 지킬 수는 있었지만 입지가 점차 좁아짐을 느끼자 이번에 ‘사고를 친 것’이라고 보는 사람도 있다.
청와대의 한 관계자는 이에 대해 “곽 위원장과 함께 공정론에서 쌍벽을 이뤄온 백용호 정책실장이 청와대로 들어온 뒤 정책 핵심실세로 부상한 데다 최근 재경부 장관 후보에 거명되는 등 확실한 자리매김을 한 데 반해 곽 위원장의 최근 입지는 상대적으로 약해졌다고 본다. 연기금 발언 배경에는 그가 줄기차게 주장해온 ‘미드필드 강화론’(중산층 강화정책)을 다시 한 번 여권에 각인시켜 자신의 존재감을 부각시키려는 욕심도 있었던 것 같다”라고 말했다.
이런 점에서 이 대통령의 실적위주 인사 스타일과 곽 위원장의 여권 내 포지션 불안 등이 겹치면서 연기금 주주권 행사 추진이라는 조율되지 않는 갑툭 정책이 튀어나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 내에서는 “곽 위원장의 연기금 발언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대권전략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며 “그 의미 자체를 깎아내려선 안 된다”고 주장하는 측도 있다. 주로 소장파에서 곽 위원장의 주장에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더구나 이번 재·보궐 선거 패배로 여당은 30~40대 지지층 확보에 비상이 걸린 상황이다. 내년 총선과 대선에서 젊은 층 확보를 위해 곽 위원장의 연기금 주주권 행사와 같은 파격적인 ‘경제이슈 파이팅’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는 상황이다. 곽 위원장이 평소 중산층 강화와 양극화 줄이기를 줄기차게 외쳐왔다는 점에서 이번 연기금 발언은 총선-대선을 겨냥한 다분히 의도적인 발언이라는 해석도 그래서 나온다.
하지만 한나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에 대해 “이번 연기금 논란은 장기 국가 정책이나 발전전략이 총선-대선을 앞두고 정치논리로 왜곡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은 백년대계 정책이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않도록 확실한 비전과 전략을 제시해 연기금 논란을 수습해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사고치는’ 왕의 남자 곽승준 미래기획위원장. 그는 명쾌한 논리와 박진감 있는 추진력으로 일찌감치 여권의 ‘책사’로 주목받아 왔다. 하지만 그가 어떤 의도에서 연기금 주주권 행사를 주장했는지 현재로선 확실치 않다. 이 때문에 정재계가 혼란스런 눈빛으로 지켜보고 있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청와대에 ‘비타민 바람’ 부는 까닭
비타민 같은 정치는 안될까요
최근 청와대에 때 아닌 ‘비타민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꼬박꼬박 비타민 알약을 챙겨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주위의 몇몇 측근들에게도 권유하며 ‘비타민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상당수 참모들은 비타민 애용자가 됐다는 전언.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춘추관의 한 직원은 평소 알고 지내는 기자들에게 “VIP(이명박 대통령)가 즐겨 먹는 비타민”이라며 선물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소문이 나자 비타민을 생산, 판매하는 제약업계가 분주해졌다. 이 대통령이 어떤 회사 제품을 먹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 대통령이 먹는다는 ‘상징성’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2월 청와대 입점은행을 놓고 시중은행들이 치열한 경쟁(농협 승리)을 펼쳤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과연 어떤 종류의 비타민을 즐겨 먹을까.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이 대통령이 복용하는 비타민은 유럽 쪽에서 원료를 수입해 제조한 한 회사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조회사 측이 이를 확인하더라도 당장 ‘대통령의 비타민’을 홍보에 활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27 재보선에서 드러난 ‘가라앉은 민심’ 때문이다. 청와대가 비타민 같은 정치를 해준다면 앞으로 경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
비타민 같은 정치는 안될까요
최근 청와대에 때 아닌 ‘비타민 열풍’이 불고 있다는 소식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꼬박꼬박 비타민 알약을 챙겨 복용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 대통령은 주위의 몇몇 측근들에게도 권유하며 ‘비타민 예찬론’을 펼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상당수 참모들은 비타민 애용자가 됐다는 전언. 언론을 담당하고 있는 춘추관의 한 직원은 평소 알고 지내는 기자들에게 “VIP(이명박 대통령)가 즐겨 먹는 비타민”이라며 선물도 했다는 후문이다.
이러한 소문이 나자 비타민을 생산, 판매하는 제약업계가 분주해졌다. 이 대통령이 어떤 회사 제품을 먹는지가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른 것. 대통령이 먹는다는 ‘상징성’만으로도 엄청난 홍보 효과를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12월 청와대 입점은행을 놓고 시중은행들이 치열한 경쟁(농협 승리)을 펼쳤던 것과 비슷한 논리다.
그렇다면 이 대통령은 과연 어떤 종류의 비타민을 즐겨 먹을까. 청와대 관계자들에 따르면 현재 이 대통령이 복용하는 비타민은 유럽 쪽에서 원료를 수입해 제조한 한 회사 제품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제조회사 측이 이를 확인하더라도 당장 ‘대통령의 비타민’을 홍보에 활용하기는 어려워 보인다. 4·27 재보선에서 드러난 ‘가라앉은 민심’ 때문이다. 청와대가 비타민 같은 정치를 해준다면 앞으로 경우가 다르겠지만 말이다.
동진서 기자 jsdon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