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수준 LB세미콘 5000억 알짜 회사로…구본천·구본완 계열분리? 지분구조 정리가 관건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에 따르면 LB세미콘은 지난 9월 28일 비메모리 반도체 테스트 설비 증설 및 관련 토지·건물 취득을 위해 955억 원을 투자한다고 밝혔다. LB세미콘은 2020년 9월에도 581억 원 규모의 신규 시설 투자를 공시한 바 있다. LB세미콘의 자회사인 LB루셈은 지난 6월 코스닥 시장에 상장했다. LB루셈은 디스플레이 반도체 부품 생산 업체로 공모 과정에서 모집한 자금 548억 원을 전액 시설 투자에 집행하겠다고 밝혔다.
#고속성장하는 반도체 계열사들
LB세미콘은 반도체 제조 과정 중 후공정에 속하는 범핑 및 테스트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LB그룹이 2005년 LB세미콘을 인수할 당시 매출은 10억 원도 채 되지 않았다. 그러나 LB세미콘은 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2012년에는 매출 1339억 원을 기록했다. LB그룹이 사실상 반도체 스타트업을 인수해 성장시킨 것으로 ‘구본천의 마법’이라는 표현까지 등장했다.
LB세미콘의 매출은 2012년부터 2017년까지 1000억 원대에 머물렀다가 2018년 3756억 원으로 다시 급증했다. LB세미콘은 2019년 3904억 원, 2020년 4428억 원의 매출을 기록했고, 올해는 5000억 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2018년 이후 LB세미콘의 매출이 증가한 이유는 사업 다각화와 고객 다변화에 있다. 특히 2018년 인수한 LB루셈이 성공작으로 꼽힌다. LB루셈의 매출은 2018년 1387억 원에서 2020년 2098억 원으로 늘었다.
인수합병(M&A)뿐 아니라 신규 시설 투자도 성공적이었다. 그간 LB세미콘의 주요 사업은 DDI(디스플레이 구동 칩) 생산이었다. LB세미콘은 2020년 9월 CIS(상보성 금속산화막 반도체), SoC(여러 기능을 가진 시스템을 하나의 칩으로 구현한 반도체) 테스트 사업에 나서는 등 제품군을 확대하고 있다.
LB세미콘이 지난 9월 공시한 시설 투자는 애플리케이션 프로세서(AP) 테스트 분야일 것으로 추정된다. 증권가에서는 LB세미콘이 내년 AP 사업을 통해 200억~250억 원의 매출을 벌어들일 것으로 예상한다. 이순학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LB세미콘의 매출이 AP와 CIS, PMIC(전력관리반도체) 등으로 다변화되고 있는 점은 주목해볼 만한 부분”이라고 전했다.
LB그룹의 매출처가 비 LG그룹으로 확대되고 있다는 점도 의미가 있다. LB세미콘은 올해 삼성전자 2차 벤더로 선정됐고, LB루셈도 삼성그룹 개척이 최우선 목표다. LB루셈의 주요 매출처는 범 LG그룹인 LX세미콘이지만 최근 다수의 매출처를 확보하고 있다. 이미 삼성디스플레이로부터 일부 매출이 발생하고 있으며 노바텍, 하이맥스, 매그나칩, DB하이텍 등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재계 관계자는 “LB세미콘의 삼성향 매출 증가는 분명히 눈에 띄는 성과”라며 “LG그룹이 포기한 반도체 부문에서 LX그룹, LB그룹 등 관계사들이 자리매김하고 있는 것도 인정해줘야 한다”고 전했다.
#동생과의 계열분리 관전 포인트로
구본천 부회장은 2003년 LG벤처투자(현 LB인베스트먼트) 사장에 취임했다. 당시 구 부회장은 적자에 허덕이던 LG벤처투자를 1년 만에 흑자 전환시켰다. 2008년에는 부친 구자두 회장과 함께 LG그룹으로부터 독립했다. 현재 LB그룹은 LB세미콘과 LB루셈, LB인베스트먼트, LB자산운용, LB휴넷 등으로 구성돼 있다. 구본천 부회장은 LB인베스트먼트 하나로 시작해 현재의 LB그룹을 일궈낸 것이다.
구 부회장은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출신으로 한때 경제 관료를 꿈꾼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한국개발연구원(KDI), 매킨지 등에서 기업 경영과 투자를 배웠고, 이는 그의 벤처투자 실적에도 큰 도움이 됐다. LB인베스트먼트가 투자해 성공한 대표적 회사로는 하이브(옛 빅히트엔터테인먼트), 크래프톤, 펄어비스 등이 있다.
LB인베스트먼트는 지난해 매출 249억 원, 영업이익 124억 원을 거뒀다. 증권가에서는 LB인베스트먼트의 기업공개(IPO·상장)를 기대하고 있다. LB인베스트먼트 측은 상장 일정이 확정되지 않았다고 하지만 창업투자업계에서는 내년 안에 상장할 것으로 예측한다.
재계에서 주목하는 또 다른 관전 포인트는 '동생'과의 계열분리다. 현재 LB그룹은 구본천 부회장이 이끌고 있고, 동생 구본완 LB휴넷 대표는 콜센터 업체인 LB휴넷과 유세스파트너스를 경영 중이다. 향후 구본천 부회장이 반도체·창업투자 사업을 이끌고, 구본완 대표가 콜센터 업체를 맡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지분구조를 보면 다른 해석이 나올 수 있다. 구본천 부회장은 지주회사 (주)LB 지분 28.27%와 LB세미콘 지분 10.17%를 갖고 있고, 구본완 대표는 (주)LB 지분 26.65%와 LB세미콘 8.04%를 보유 중이다. 구본천 부회장의 지분율이 더 높지만 문제는 LB휴넷이 (주)LB 지분 6.67%를 갖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LB휴넷은 구본완 대표가 이끌고 있으므로 드러난 것만 보면 구 대표의 지배력이 더 높다.
이 때문에 재계에서는 LB그룹의 형제간 다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 범 LG가는 대부분 경영 승계가 순탄하게 이뤄졌지만 구본성 아워홈 부회장과 구지은 아워홈 대표의 사례처럼 경영권 관련한 잡음이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한 벤처투자업계 관계자는 “LB그룹은 창업투자와 자산운용사 등 금융 계열사, 반도체 회사, 콜센터 회사로 뚜렷하게 나뉘어 있어 합의만 된다면 계열분리는 어렵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반도체와 창업투자 모두 구 부회장이 애착을 갖고 있는 곳이므로 어떻게 정리될지는 더 지켜봐야 한다”고 전했다.
이와 관련, LB그룹 관계자는 “LB세미콘은 이전부터 있었던 반도체 계열사로 특별히 새로운 사업 진출이 아닌 기존 사업을 계속 진행하는 것”이라며 “(계열분리 관련해서는) 아직 관련된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민영훈 언론인
박형민 기자 gody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