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 탓하는 선장 ‘배가 산으로 간다’
▲ ‘의리맨이라더니…’ 지난 20일 국회 농림수산식품위원회에서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농협 전산망 사고와 관련 답변하고 있다. 그는 이번 사태와 관련 “나도 당했다”며 조직의 수장다운 면모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이처럼 여러 면에서 최 회장은 현 정권과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최근 이 ‘왕의 남자’가 시련의 계절을 보내고 있다. 농협 전산 장애 사태로 인해 언론의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고 있는 것. 최 회장은 올해 말 실시될 임기 4년 농협중앙회장 선거에 다시금 출마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생각지도 못한 이번 사건으로 인해 재선은 고사하고 오히려 사퇴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도마 위에 오른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의 리더십을 해부했다.
경상북도 경주 인근 안강 출신인 최원병 농협중앙회장은 1972년 안강 단위농협에서 근무를 시작하며 ‘NH맨’으로서의 첫발을 내딛었다. 1986년 안강농협 조합장에 선출된 그는 이후 내리 6선에 성공하며 20년여 동안 조합장 자리를 지켰다. 그만큼 단위농협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이다.
최 회장은 3, 4대 농협중앙회장을 역임한 정대근 전 회장과 함께 영남지역 단위농협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했던 두 사람으로 소문이 자자했다. 정 전 회장 역시 삼랑진농협 조합장을 20년 넘게 맡아오며 중앙 진출을 위한 교두보를 마련해왔다. 영남지역 농협 쌍두마차로 불린 두 사람이 바통을 이어가며 농협 회장을 맡았던 셈이다.
그런데 최 회장의 프로필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치인의 냄새가 더욱 짙게 풍기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지난 1989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 경주지구당 부위원장을 맡으며 정치에 입문했다. 1991년에 경상북도의원(한나라당)에 당선된 후 4선 도의원으로 활동했다. 4대 때는 도의회 부의장을, 7대에는 도의회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특히 경북을 모태로 정치활동을 하면서 이명박 대통령 친형 이상득 의원과도 친분을 맺는 등 실속 있는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왔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지난 2007년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될 때까지 그는 선거에서 패배해 본 적이 없다. 지역단위 농협조합장이든, 도의원이든 나가는 선거마다 무조건 승리해 경북 지방에서는 그를 ‘선거의 남자’로 부르기도 한다. 최 회장과 가까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선거에서 이기는 방법을 확실히 아는 사람”이라고 그를 평가하기도 했다.
선거전에 강한 그의 면모가 유감없이 드러난 것이 다름 아닌 2007년 12월 27일 실시된 농협중앙회장 선거였다. 회장 선거에는 최 회장을 비롯해 5명의 후보가 출마해 각축을 벌였는데 그는 유효투표수 1183표 가운데 52%인 614표를 얻어 회장에 당선됐다. 선거전에선 최 회장이 당시 대통령에 당선된 지 1주일여밖에 되지 않았던 이명박 대통령의 포항 동지상고 4년 후배라는 점이 쟁점으로 부각되며 ‘양날의 검’으로 작용했다.
경쟁자들은 ‘최 회장이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되면 농협이 권력에 휘둘리게 된다’며 그를 공격했다. 이에 최 회장은 “중앙회장 역할이 대외활동과 농정활동인데 권력유착 운운하는 것은 정부 및 국회와의 협력 체제를 구축해야 하는 회장 역할을 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반박했다. ‘학연은 약점이 아닌 강점’이란 논리로 유권자인 조합장들을 설득한 것. 그의 카드는 적중했고 최 회장은 재투표 끝에 농협중앙회장에 당선됐다. 이 선거를 지켜봤던 한 농협 관계자는 “최 회장이 ‘선거의 남자’다운 면모를 보였다”고 평가했다.
조합장들을 설득해내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외부의 따가운 시선은 더욱 거세졌다. 언론은 최 회장을 사실상의 ‘낙하산 인사’라고 비판했다. 내부적으로는 전임 정대근 회장이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당시 농협에 대한 농민들의 신뢰가 바닥을 기고 있었다. 이러한 내우외환을 우려한 듯 최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강력한 개혁드라이브를 걸었다(<일요신문> 827호 보도).
먼저 메스를 들이댄 곳은 인사 분야였다. 최 회장이 농협 계열사 사장직을 추천방식에서 공모방식으로 바꾼 것이다. 기존 추천방식은 말이 추천이지 대부분 농협중앙회 임원들이 차지해 ‘측근 인사’라는 비난이 많았다. 추천방식을 바꾼 것은 사실상 회장 권한을 축소한 것으로 여겨졌기 때문에 긍정적인 평가가 뒤따르기도 했다. 동시에 인사 청탁을 한 직원들에게는 철퇴를 내리쳤다. 그는 취임 석 달 후 인사 청탁을 한 농협 직원 110여 명에게 ‘경고장’을 보냈다.
외부에서는 이런 최 회장의 개혁에 높은 점수를 줬지만 내부에서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특히 ‘인사 개혁이란 명목으로 자기 사람 심기에 치중했다’는 말이 많았다. 실제로 최 회장 취임 후 농협중앙회에는 경북 지역 사람들이 대거 늘어났다. 보통 지역농협에서 서너 명이 중앙회로 올라오는 데 비해 2008년 인사에서는 열 명이 넘는 경북지역 직원들이 중앙회로 옮겨오기도 했다.
농협 관계자들은 농협 내부의 가장 유력한 조직으로 ‘천년회’를 꼽는다. 천년회란 천년고도 경주 인근에 있는 안강 출신 사람들의 모임을 일컫는 말로, 최 회장 취임 이후 생겨난 조직이다. 농협의 한 관계자는 “천년회 출신 자녀들이 농협에 특혜 취업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내부에서 문제가 된 바 있다”고 말했다.
농협 내부에서 그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지만 대체적으로 ‘의리가 있지만 소통이 잘 안 된다’는 것으로 모아진다. 농협중앙회에 있다가 계열사로 옮겨간 한 임원은 “자기 사람을 너무 챙긴다는 비판을 많이 받지만 이는 어떤 의도가 있어서 아니라 마음이 잘 맞고 의리를 중요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농협 관계자 역시 “한번 자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끝까지 간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반면 한 농협 노동조합 관계자는 ‘불통’이란 단어로 최 회장을 설명했다. 그는 “자기 일에 반대하면 무조건 업무 방해죄로 고소하려 든다. 회사 앞에서 피켓 들고 1인 시위 했다고 업무방해죄로 고소하는 사람이 어디 있느냐”고 반문하며 “도대체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의 얘기를 듣지 않으려 한다. 그렇다보니 주변에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이 없다”고 일갈했다. 농협 일선 창구에서 일하는 한 직원도 “직원들의 얘기가 잘 전달되지 않는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최근 농협법 개정안의 국회 통과 과정에서도 최 회장의 불도저식 리더십이 그대로 반영됐다고 한다. 농협법 개정안은 농협의 신용사업(금융)과 경제사업(유통 및 판매)을 분리하자는 것을 골자로 하고 있다. 이 법안은 김영삼 정부 때부터 추진했으나 이해관계가 엇갈려 포기한 농업계의 해묵은 숙원사업이었다.
농협법 개정안은 지난 3월 11일 여야 합의로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최 회장이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작 이해당사자라 할 수 있는 농민들의 의견이 반영되지 않았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최 회장이 이런 반대를 무릅쓰고 법안 통과를 주도했던 것은 청와대의 강한 의지가 반영됐기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통령은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해내지 못했던 개정안 통과를 본인 임기 내에 하고 싶은 강력한 의지를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농협 내에서 “이 대통령과 최원병 회장의 카리스마가 농협법 개정안 통과를 이끌어냈다”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최 회장이 얻어낸 것도 적지 않다. 이번 농협법 개정안에는 중앙회장의 임기를 4년 단임제로 제한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이 법안은 올 12월 새로 선출되는 회장부터 적용을 받기 때문에 현 회장인 최 회장은 재선 도전이 가능하다. 최 회장이 재선에 도전하기 위해 물밑 작업을 해왔다는 것이 노조 측의 주장이다.
재선을 바라봤던 그에게 최근 변수가 생겼다. 최근 3000만 농협 고객을 들썩이게 한 농협 전산 장애 사태다. 최 회장은 이번 사태에 대해 책임을 회피하는 자세로 일관하고 있어 여론의 호된 질책을 받고 있다. 그는 지난 14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고가 난 뒤 다른 쪽에서 그 소식을 듣고 부속실에 전화해 ‘무슨 소리냐’고 했다. 담당 부장이 전화로 ‘오늘 밤을 새워서라도 해결하겠다’고 해서 그렇게 알고 있었다. 기자들이 당한 것과 똑같다”고 말했다.
이는 조직 수장의 발언이라고 믿기 어려운 말이었다. 그는 다음날에도 한 기자가 “책임을 느끼고 있느냐”고 묻자 “일은 다 지들(IT 담당자)이 했는데 내가 왜 책임져? 나도 보고를 제대로 못 받았단 말이에요”라고 말해 또 한 번 비난이 쇄도했다. 이를 두고 노조 측에서는 “원래 그랬던 사람인데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해서 외부에 드러난 것”이라고 평했다.
이번 사태로 그의 리더십은 도마 위에 올랐다. 개인의 리더십뿐만 아니라 농협의 구조적인 문제도 함께 거론되고 있다. 현재 농협중앙회 인사권은 회장에게 있지만 책임은 계열사 사장이 지는 이중적인 구조로 이뤄졌다. 농협법 개정안 통과로 재선 가도에 파란불이 들어온 것 같았지만 전산 장애 사태로 인해 다시 빨간 불이 켜진 셈이다. 농협 노조는 이번 사태가 마무리되는 대로 대대적인 최 회장 퇴진 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하고 있다.
지난 3년간 금융권의 대표적인 ‘MB맨’으로 불리며 농협을 이끌어왔던 최원병 회장. 과연 이 정권보다 먼저 자리에서 물러날지, 아니면 4년 더 농협 수장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왕의 남자’는 현재 중요한 갈림길에 서 있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