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린 1000억 노소영과 무슨 상관?
▲ 지난 1월 24일 열린 수출투자고용확대를 위한 간담회에 참석하는 최태원 SK그룹 회장. 사진공동취재단 |
# 왜 투자했나
최태원 회장이 선물거래에 투자를 한 것은 평소 잘 알고 지내는 지인의 권유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SK 측에서 선물투자와 관련해 함구하고 있기 때문에 어떤 경위로 투자하게 됐는지 확인된 것은 없다. 다만 SK그룹 주변에서는 재미교포 은 아무개 씨와 역술인 김 아무개 씨 중 한 사람이 투자를 권유했던 지인으로 꼽히고 있다.
가장 유력한 인물로 거론되는 이가 미국 대형 헤지펀드인 하빈저스캐피탈파트너스에서 매니저로 활동하는 은 씨다. 그는 어릴 때 가족과 함께 미국으로 건너가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과 퍼듀대 등 명문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2001년에는 33세의 나이로 인텔 한국지사장에 오르며 언론의 주목을 받기도 했다. 한때 호주 맥쿼리가 투자했던 메가박스 대표이사를 맡았던 그는 하빈저스캐피탈파트너스에서 아시아와 중동지역 등을 대상으로 M&A 투자 등과 관련한 업무를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은 씨와 최 회장과의 인연은 지난 2001년 재벌가 3세들과 젊은 벤처기업 최고경영자(CEO) 등이 주축이 돼 만든 모임인 ‘브이소사이어티’의 회원으로 참여하면서 맺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은 씨가 최 회장과 지금까지 친분을 유지했는지, 최 회장의 선물거래에 관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지만 증권업계에선 그가 속한 하빈저스캐피탈파트너스가 최 회장 투자의 연결고리일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현재 언론에서는 은 씨가 외국에 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자신의 집에서 칩거하고 있다는 추측도 있다. 기자는 지난 4월 27일 서울 강남역 삼성타운 인근의 은 씨 집을 찾았다. 기자가 초인종을 누르자 문 너머로 40대 초반으로 추정되는 한 남성이 ‘어디서 왔느냐’고 물었으나 기자의 신분을 밝히자 더 이상 답이 돌아오지 않았다.
은 씨 외에 역술인 김 씨도 최 회장에게 투자를 권유한 인물 중 한 명으로 꼽히고 있다. 실제로 검찰에서는 선물투자 사실이 언론에 보도되기 한 달 전, ‘최 회장과 가깝다’는 역술인에 대한 정보를 수집한 바 있다. 당시 검찰의 한 관계자는 “최 회장이 부친의 묏자리 때문에 알게 된 역술인의 말을 듣고 최근 선물투자를 했다가 큰 손해를 봤다”고 말했다. 4월 27일자 <동아일보>는 최 회장이 선물거래를 할 때 김 씨의 계좌를 사용했다고 보도했다. 김 씨는 과거 SK 계열사의 고문을 맡기도 했다. 그는 ‘도○’라는 법명을 쓰고 있으며 분당의 재력가들 사이에서 제법 유명한 역술인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다면 3~4년 전의 선물투자 사실이 어떻게 지금 와서야 알려지게 됐을까. 특히 최 회장이 본인의 명의가 아닌 차명계좌를 통해 투자를 했기 때문에 금융당국에서도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금융감독원도 뒤늦게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선물투자는 최 회장 이름이 아닌 차명으로 했기 때문에 우리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 어떻게 알려졌나
현재까지 이 사건은 지난 연말 국세청의 SK텔레콤에 대한 세무조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실제로 선물투자 사실이 국세청 조사 과정에서 흘러나왔는지에 대해 국세청은 ‘그럴 가능성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국세청의 한 관계자는 “법인 조사를 할 때는 회장 개인의 자금 흐름까지 추적하지는 않는 것이 원칙인데 세무조사 과정에서 불거져 나왔다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며 의문을 나타냈다. 이 관계자는 “다만 법인 조사 과정에서 자금 흐름을 조금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런 사실이 내부 관계자를 통해 언론에 보도됐을 가능성은 제로에 가깝다”고 주장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 사실이 평소 SK 측에 대해 불만을 가지고 있는 정부 고위 인사를 통해서 밖으로 알려졌다는 말도 나온다. 이 인사는 지난해 언론사 사장들과 만난 자리에서 “SK가 공공재인 전파를 이용해서 사적인 이득을 지나치게 취하고 있다”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낸 바 있다. <조선일보>의 첫 보도가 여권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나왔다는 점에서 그가 유력한 인물로 꼽히고 있다.
이와 관련해 사정당국의 한 관계자는 “국세청이 세무조사 과정에서 최 회장의 선물투자 사실이 나와 이를 청와대에 보고했고, 청와대 측에서 이 사실을 외부로 흘렸을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했다. 이 관계자는 “국세청의 세무조사 내용을 검찰이 알았을 리 없는데, 이미 한 달 전부터 검찰에서 역술인과 관련한 정보를 수집하고 다녔던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그런 얘기도 듣기는 했는데 우리가 뭐라 말할 입장이 아니다”고 밝혔다.
또 다른 한 편에서는 최 회장의 부인인 노소영 아트센터 나비 관장이 평소 친분이 있던 대형 교회 목사에게 관련 내용을 하소연했는데 당시 동석했던 여당 정치인이 이를 듣고 외부에 흘렸다는 설도 나오고 있다.
# 어떤 돈인가
이번 선물투자 손실과 관련한 최대 미스터리는 자금 출처다. 일각에서는 최 회장이 선물에 투자할 여유 자금이 없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지만 SK 측에서는 “최 회장은 2009년 2월 처분한 SK㈜ 보유지분(103만 주, 지분율 2.17%) 매각대금 920억 원과 배당금 등으로 1000억 원을 마련했다”며 자금출처에 대한 의혹을 부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 회장이 차명계좌를 이용해서 투자했다는 사실이나 지난 3월 중소 보험사들에 2000억 원가량의 대출을 문의했다는 사실 등이 하나둘씩 드러나며 자금 출처에 대한 의문은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일요신문> 취재 결과 지난 3월 최 회장은 G 사를 비롯한 몇몇 보험사 등에 2000억 대출을 문의한 것으로 확인됐다. 최 회장은 자신이 가지고 있는 SK 계열사 주식을 담보로 한 대출을 알아봤고, 금리 등 대출 조건을 꼼꼼히 살펴봤다고 한다.
이에 대해 SK 관계자는 “지난해 9월 우리투자증권에서 2000억 원가량을 대출받았는데 금리가 싼 금융기관으로 바꾸기 위해 문의했던 것일 뿐 이번 선물투자 건과는 아무런 연관이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융당국의 한 관계자는 “만기가 6개월이나 남았는데 벌써부터 문의했다는 점이나 대형 금융기관이 아닌 중소 보험사에서 대출받으려 했다는 점 등에서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고 말했다.
사정기관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해서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 놓고 내사를 진행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최 회장의 선물투자 자금이 SK그룹의 오래된 비자금일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3부에서 수사하는 코스닥 투자자문사 B 사의 김 아무개 대표가 SK에 재직할 때부터 노소영 관장의 비자금 관리인이라는 소문이 있었다”며 “SK 계열사들이 B 사에 거액을 투자했다 손실을 본 시기가 최 회장의 선물투자 시기와 겹친다는 점에서 비자금 의혹에 대해서도 들여다볼 것”이라고 말했다. 검찰은 이와 함께 SK그룹 중국법인의 자금 흐름에 대해서도 주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혁진 기자 ph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