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적절한 관계냐 브로커 농간이냐
▲ 선수협 고위 간부가 게임업체로부터 금품을 받았다는 혐의로 내사를 받고 있다. 사진은 기사 특정 내용과 관련없음. |
이 방송사는 후속보도를 통해 ‘검찰이 게임개발업체가 초상권 독점 계약을 위해 브로커 이 아무개 씨를 통해 A 씨에게 지난해 10월까지 30억 원에서 40억 원 정도를 건넸다는 단서를 잡았다’며 ‘브로커 이 씨가 작성한 장부를 보면 A 씨 자녀의 유학비용과 룸살롱 접대비 등의 명목으로 수십억 원이 건네진 것으로 돼 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선수들은 대체로 “믿어지지 않는다”며 침통해 했지만 많은 야구인은 “충분히 예견됐던 일”이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온라인 야구게임은 사실성과 재미를 위해 실제 구단과 선수의 이름, 사진을 그대로 사용한다. 선수협이 게임업체로부터 초상사용권료를 받기 시작한 건 지난해부터다. 2009년까진 게임업체들과 독점계약을 맺은 KBO만 받았다. 비리혐의에 연루된 것으로 알려진 A 씨는 선수협이 게임업체로부터 초상사용권료를 받는 데 큰 공을 세웠다.
검찰은 A 씨가 KBO로부터 선수들의 초상사용권을 넘겨받으면서부터 게임업체들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기 시작한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니까 이때를 기점으로 게임업체들에 독점계약을 해주겠다며 접근해 거액의 뒷돈을 받아챙겼다는 것이다. 브로커 이 아무개 씨도 검찰에 같은 내용의 진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 씨와 선수협의 주장은 완전 딴판이다. 모든 것은 이 아무개 씨가 혼자서 꾸민 것이고 A 씨는 이번 건과 아무 관련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A 씨가 게임업체와 처음 만난 건 2009년 10월이었다. 당시 선수협은 KBO에 위임한 선수 초상권을 독자적으로 행사하고자 법적인 준비를 하고 있었다. 때마침 KBO의 마케팅 자회사 KBOP가 CJ인터넷의 마구마구와 초상권 독점사용 계약을 체결하며 선수협은 강하게 반발했다. 선수협만 반발한 게 아니었다. CJ인터넷의 초상사용권 독점계약으로 2010년부터 선수들의 실명을 쓰지 못할 위기에 처한 게임업체 B 사도 마찬가지였다.
A 씨에 따르면 그즈음 모 언론사 관계자가 “게임업체 측과 직접 대화를 하는 게 어떠냐”며 자리를 주선하겠다는 뜻을 나타냈다. A 씨는 주저했지만, “B사의 게임업체 부사장 이 아무개 씨가 나온다”는 말에 승낙했다. 실제로 모처에서 만난 이 씨는 A 씨에게 B 사 부사장 직함의 명함을 내밀었다. 서로의 바람이 통했던 선수협과 사업 중단 위기에 몰린 B 사는 얼마 후, 초상사용권 계약을 맺었다.
그러나 이때부터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 이 씨가 “B 사 말고 다른 게임업체와도 초상사용권 계약을 맺도록 도와주겠다”며 “그러려면 선수협 명함이 필요하다”고 요청한 것이다. 신원이 원체 확실했던지라, A 씨는 이 씨에게 선수협 명의의 명함을 제공했다. 처음에는 자문이었지만, 나중엔 ‘재정고문’으로 바뀌었다. 이 씨가 “선수협을 재정적으로 돕겠다는 뜻을 밝혔기 때문”이란 게 선수협의 설명이다.
이때부터 이 씨는 모 게임업체에 “선수협과 초상사용권 계약을 맺게 해주겠다”고 접근했고 이 게임업체는 의심 없이 이 씨와 만나 계약을 논의했다.
이 씨의 정체가 밝혀진 건 지난해 10월이었다. 이즈음 B 사는 유명 포털사이트에 매각됐다. 매각 작업을 진행하던 모 법무법인 관계자는 서류들을 들춰보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이 관계자는 A 씨에게 전화를 걸어 “혹시 B사가 이 씨를 통해 전달한 마케팅 보증금과 메이저리그 판권 구입비 등 총 40억 원을 받았느냐”고 물었다.
A 씨는 깜짝 놀랐다. 40억 원은 고사하고 40원도 받은 사실이 없기 때문이었다. A 씨는 곧바로 B 사 관계자들과 대면했다. 다음은 A 씨의 주장.
“알고보니 이 씨의 진짜 이름은 김 아무개 씨였다. B 사의 부사장이란 직함도 사실이 아니었다. B 사에 접근해 ‘선수협과 초상사용권 계약을 체결해줄 테니 이를 위해 B 사의 부사장 직함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협과 B 사가 다 같이 이 씨에게 놀아난 것으로 드러났다. 선수협 재정고문 직함도 다른 게임업체에 접근하려고 의도적으로 부탁한 것이었다. 나와 게임업체들이 꼼짝없이 사기를 당한 셈이었다.”
A 씨가 이 씨의 정체를 알고, 문제가 불거지자 이 씨는 돌연 A 씨를 사기 혐의로 수원지검 성남지청에 고소했다. 이 씨는 소장에서 “B 사로부터 받은 대부분 자금이 A 씨에게 뇌물로 제공됐다”고 주장했다. 당시 A 씨는 검찰 조사에서 “이 씨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 아니다”라며 반박했다. B 사도 A 씨 편을 들자 이 씨는 얼마 지나지 않아 고소를 취하했다.
검찰 수사가 재개된 건 올 들어 금융정보분석원으로부터 B 사의 자금 흐름이 수상하다는 첩보가 들어오면서부터다. 검찰은 3월 25일 B 사와 자금 관리 담당자의 집 등 모두 일곱 곳을 압수수색해, 관련 장부와 회계 기록 등을 확보하고, 계좌 300여 개를 추적했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100억 원대 비자금 가운데 일부를 B 사 관계자와 자금 담당자 등이 일부 가로챈 단서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100억 가운데 상당액이 선수협 측에 부당하게 흘러간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하지만 B 사의 설명은 다르다. “우리가 아니라 이 씨가 세운 유령회사 4곳이 수사대상”이라는 입장이다. 검찰도 이를 부인하지 않는다. 검찰 관계자는 “유령회사 4곳의 자금 흐름을 추적하다보니 대부분의 자금이 B 사로부터 흘러들어온 것으로 확인돼 수사에 착수했다”고 밝혔다.
항간에 알려진 것처럼 A 씨도 수사의 중심이 아닌 듯하다. A 씨는 “검찰로부터 수사는 고사하고, 연락을 받은 적도 없다”고 했고, 검찰 관계자 역시 “A 씨는 수사의 중심이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A 씨의 금품수수 혐의에 대해서도 “아직 말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과연 사건은 어떻게 결말이 날까. A 씨와 선수협의 주장처럼 이 씨의 사기극일까 아니면 또다른 진실이 숨어있는 것일까. 확실한 진상은 하와이에 체류 중인 이 씨가 귀국해야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