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보다 국익…대통령 선택 옳다”
▲ 오는 7월이면 취임 5주년을 맞는 김문수 경기지사를 만났다. 대선후보로 꼽히는 김 지사는 박근혜 전 대표가 최근 주장한 ‘신공항 추진’에 대해 “약속보다 중요한 것은 국익”이란 점을 강조하며 박 전 대표와 대립각을 분명히 했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인터뷰 직전에 전국 시·도지사 협의회에 다녀왔다는 김문수 지사에게 어떤 이야기가 오갔는지 먼저 물어보았다. 비서진이 “오늘 강경한 발언을 하고 오셨다”고 귀띔했기 때문. 김 지사는 “경기도 지방재원의 57%를 차지하는 취득세를 정부가 우리한테 한마디 상의 없이 절반을 깎아버렸다. 부동산 거래를 활성화시킨다는 이유인데 그런다고 거래가 활성화되는 것도 아니고, 지방자치제를 하지 말든가, 하려면 우리한테 상의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상식에 어긋나는 일이기 때문에 철회를 요구했고, 만약에 한다면 국회의원들과 함께 입법저지운동을 하겠다고 했다”면서 “강경이 아니라 내 입장에선 너무나 상식적인 얘기를 했을 뿐”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연임 중인데 경기지사로 내세울 수 있는 가장 큰 성과는 무엇이라고 보나.
▲서민들이 가장 좋아하는 공약은 대중교통환승할인제인 것 같다. 전체적으로 본다면, 경기도의 GTX(수도권광역급행철도) 사업이 가장 큰 기대를 받고 있다. 그동안 지방에서 제안한 정책 중에 이렇게 빨리 국가사업으로 지정된 경우가 없는 것으로 안다. 내가 제안한 지 3년여 만에 국가사업으로 채택됐고 내년에 착공하게 된다.
―내년에 착공하면 대선행보에 좀 도움이 되지 않겠나.
▲글쎄… 개통이 되면 모를까, 공사한다는 것 자체로만은 큰 득이 있겠나(웃음).
―지난주에 천안함 사건 1주기를 맞이해서 자작시를 지어 화제가 되기도 했는데(김 지사는 ‘그대들이 있어 조국이 푸르다’라는 제목의 추모시를 지어 블로그에 올렸다. 지난 설 연휴엔 민통선 마을을 찾아 하룻밤을 묵고 통일을 기원하는 내용의 ‘대성동의 밤’이라는 자작시를 짓기도 했다).
▲남들은 시라고 하지만 내가 볼 땐 그냥 소감이지 뭐(웃음). 내가 공식 등단한 시인도 아니고 예전부터 간혹 몇 마디씩 써왔다.
‘말랑한’ 질문은 이것으로 끝내고 뜨거운 정가 현안으로 질문을 이어갔다. 우선 4·27 재보선에 관한 내용부터 시작했다.
―강원지사 선거가 가장 큰 주목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고 있나.
▲강원지사 선거는… 전망을 잘 못하겠다(웃음). 아직 후보가 최종 결정은 안 되었지만 엄기영 예비후보가 되지 않겠나 싶다. 엄기영 후보는 상당히 훌륭한 분이라고 본다. 나랑 나이도 동갑이어서 개인적으로도 가깝게 지내고 있다. 강원도백으로서 능히 역량과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김 지사는 “‘이광재 동정론’이 어느 정도 주효할 것이라고 보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엄기영, 최문순 후보가 대결한다면 MBC 전직 사장들끼리의 대결이 될 텐데, 강원도민으로선 누가 되든지 복”이라며 즉답을 피해갔다.
―엄기영 예비후보(4월 4일 후보 결정)는 한나라당을 선택하기 전에 민주당으로부터도 영입의사를 받고 양당에서 고민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 비판받기도 했는데.
▲그분은 원래 정치인이 아니니까 양당과 다 사이좋게 지내야 하는 입장 아니겠나. 하지만 정치적 결단을 내려야 할 때엔 우리 한나라당을 택할 것으로 봤다. 엄 후보는 성향과 성품, 생각 등이 민주당보다는 한나라당과 잘 맞는 분이다. 본인이 좋은 결정을 내려서 나로선 고맙게 생각하고 있다. 경선 전에 어떤 자리에서 잠깐 마주친 적이 있는데 ‘잘해주시기를 바란다’는 얘기를 전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특위 고문을 맡은 박근혜 전 대표가 사실상 강원지사 선거를 돕고 있는데 지원효과가 얼마나 될 것이라고 보나.
▲박 전 대표가 나타나면 사람들이 좋아하고 표가 있는 게 사실이다. 박 전 대표께서 강원지사 선거만이 아니라 재·보궐 선거 전체에 역할을 하셨으면 한다.
―재보선 결과가 안 좋다면 지도부 책임론이 제기될 가능성도 있는데.
▲선거 결과가 좋기를 고대하고 있다. 공무원 신분이기 때문에 내가 직접 선거운동을 하러 돌아다닐 수는 없지만 마음속으로는 늘 기도드리고 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가 분당 을에 출마 선언을 했다. 손 대표는 차기 대선에서 경쟁 상대이기도 한데, 어떻게 평가하는가.
▲손학규 대표는 아주 훌륭한 분이신데 한나라당 후보로 나왔으면 참 좋았겠다는 생각을 늘 한다. 한나라당의 대선후보가 되었다면 현재 아주 유력한 후보가 되었을 것이다. 지난 대선 전에 민주당으로 가셔서 나로서는 늘 뵐 때마다 어색하고 안타깝고 그렇다. 분당이라는 데가 경기도 내에서도 한나라당에 유리한 지역이고, 민주당으로선 참 어려운 지역인데, 왜 당을 바꾸셔서 고생을 하시나 싶다.
―김 지사는 앞으로 당을 바꿀 가능성이 없나(웃음).
▲나는 (한나라당에) 입당한 지 17년 1개월째인데 한 번도 당을 바꿔본 적도 없고 바꿀 생각을 해본 적도 없다. 그런데 자꾸 나한테 ‘경기지사는 다 탈당하는 족속들 아니냐’고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다. 허허. 내 앞에 이인제, 임창렬, 손학규, 세 명이 있는데 다 탈당했다. 그래서 ‘너희들은 다 탈당하는 DNA가 있다’는 거다. 그런데 나는 절대 탈당은 안한다. 이 말은 좀 확실하게 써 달라(웃음).
―분당 을 지역에 애초 한나라당에서는 정운찬 전 총리를 영입하려고 했다. 친이계 일부에서 부상시키려는 주자이기도 했는데, 정 전 총리에 대해서는 어떻게 평가하나.
▲서울대 총장까지 하신 분인데 훌륭한 분 아니겠는가. 나는 서울대학교를 24년 6개월 만에 졸업한 사람이다(웃음).
김 지사는 “정 전 총리와 ‘친이 주자’ 자리를 놓고 경쟁할 가능성이 크지 않았느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훌륭한 분과의 경쟁이라면 얼마든지 할 것”이라고 웃음을 보였다. 정운찬 전 총리 이야기가 나온 김에, 최근 파문을 일으킨 신정아 씨의 자전적 에세이 <4001>에 관한 생각도 물었다.
―신정아 씨 책이 큰 논란이 되었다. 혹시 읽어 보았는지.
▲읽을 게 워낙 많아서 그거까지 읽을 시간도 없고 관심도 없다(웃음). 나는 표지도 못 봤는데 언론에 보도가 많이 되는 것 같다. 기사를 통해 보니 거의 가십성 얘기인 것 같더라.
―정운찬 전 총리가 많이 거론됐는데.
▲그 내용이 사실인지 아닌지 내가 판단할 수도 없고… 그냥 재미있게 보는 사람이 있는지는 몰라도, 그걸 가지고 진위를 가릴 수도 없지 않나. 청문회를 할 것도 아니고(웃음). 책이 인기가 있다니까, 정운찬 전 총리가 좀 당황스럽겠더라. 소설이라 하더라도 실명이 거론되면 난처할 텐데, 자전 에세이라니 더 당혹스러울 것이다. 만약 내 실명이 나왔다면 거 참, 아니라고 할 수도 없고 참 난처하겠더라.
―유시민 국민참여당 대표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경쟁한 바 있다. 지방선거에서는 김 지사가 이겼지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는 유 대표에게 밀리고 있는데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나.
▲유시민 대표가 공고한 지지층이 있다. 젊은 층이라든지 좀 더 우리 사회를 급진적으로 바꾸자는 층에서 유 대표에 대한 선호도가 있다. 나도 옛날에는 유 대표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데 내가 옛날 생각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경합관계가 될 수 있다고 보지만, 지금은 생각이 다르니까…. 유 대표가 10%가 넘는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지만, 내가 볼 땐 우리 사회의 건전한 발전을 위해서 그 방향은 맞다고 보지 않는다.
김문수 지사를 만난 당일, 정부의 동남권 신공항 건설사업 백지화 발표에 대해 박근혜 전 대표가 ‘반대’ 입장을 밝혀 뜨거운 이슈가 되었다. 박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 문제를 차기 대선공약으로 내걸 수 있다는 가능성을 내비치기도 했다. 박 전 대표와 경쟁구도를 이루고 있는 김 지사의 생각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박근혜 전 대표는 동남권 신공항 건설을 계속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인데.
▲공항을 만드는 것을 대선 공약으로 하는 것이 옳으냐를 생각해봐야 한다. 신공항 입지평가위원회에서 ‘타당하지 않다’고 결정한 것 아닌가. 전문가들이 경제성이나 타당성이 없다고 판단을 내린 것을 전적으로 믿지 않고 해야 한다는 것인데, 그렇다면 (해야 한다는) 근거는 무엇인지 설명해야지, 다만 표가 될 것 같으니까 계속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야말로 포퓰리즘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국익을 우선해야 하지 않나. 세종시가 대표적인 예다. 세종시가 낭비공약이라는 건 다 아는데 약속한 거니 무조건 지키라는 건 말이 안 된다. 약속이니까 지켜라, 이것이 제1의 가치라는 주장에 대해선 나는 아니라고 본다. 하지만 어찌 됐든 대통령께서는 신공항 건설 공약을 백지화하게 된 것에 대해선 정중한 사과를 해야 할 것이다.
김 지사는 박 전 대표를 의식한 듯, “약속을 지키면 좋은 대통령이고 약속을 못 지키면 나쁜 대통령이 아니라, 국익을 우선하고 국민을 잘 받드는 것이 좋은 대통령”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또한 이 대통령을 향해서도 “못 지킬 약속을 한 부분에 대해선 반드시 사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로 인터뷰 다음날인 4월 1일 이명박 대통령은 신공항 문제와 관련해 특별기자회견을 열고 사업을 백지화하게 된 배경을 설명하면서 “공약을 못 지켜 안타깝고 송구하다”는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여당의 대선후보가 되기 위해선 우선 박근혜 전 대표와 경선을 치러야 한다. 이길 자신이 있는가.
▲나야 자신 있지만 객관적으로 가능할지는 당원과 국민들의 판단 아닌가. 시간을 가지고 설득해가야 할 것이다.
―대권주자로서의 박 전 대표를 평가해 달라.
▲국민들이 이미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나. 여론조사처럼 박 전 대표가 높은 인기를 얻고 있는 예비주자라고 본다.
―박 전 대표의 단점은 무엇이라고 보나.
▲내 입으로 얘기하면 그게 내 단점이 될 것 같아서 말 못하겠다(웃음).
―김 지사는 여권의 대권주자로서 한나라당의 전통적 지지권인 영남지역, 특히 대구·경북의 지지율이 낮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지지율 상승을 위한 전략이 있나.
▲나를 아는 사람 자체가 국민의 절반이 안 되는 것 같다. 나를 알리고 지지하게 만드는 과정은 참 간단치 않은 과정이다. 내 부족함이 큰 것 같다(웃음).
―최근 ‘쪼개기 후원금’ 문제로 곤욕을 치렀는데 혹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나는 피의자도 아니고 참고인도 아니고 피고발인도, 혐의자도 아니다. 그런데 마치 다 죽은 사람처럼 비춰져 피해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과거에도 후원금 문제로 벌금 낸 사람들이 많고 지금도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이게 온라인으로 오기 때문에 누가 보냈는지 알 수가 없다. 문제될 것도 없는 일인데 나만 이렇게 보도가 돼서 난감했다.
―후원금 문제로 인해 정치자금법 개정 논란이 뜨겁다. 후원금 양성화를 위해 기업과 단체의 정치후원금을 허용하자는 선관위 입장에 대해 청와대가 반대하고 있는데.
▲기업후원금을 받는 문제는 별도로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역대 대통령 선거 때마다 차떼기로 검은 돈이 오가서 받지 못하도록 한 것인데, 이것은 정치자금 정화를 위해 잘한 일이다.
마지막으로 김 지사에게 “대권 도전에는 언제쯤 나설 생각인가”라는, 인터뷰 때마다 물었던 질문을 다시 던졌다. 김 지사는 “잘 모르겠다”고 즉답을 피하면서도 “(정치인들 중) 그런 마음을 안 가지는 사람이 누가 있겠느냐”며 대권에 대한 도전 의지를 드러냈다. “나 혼자 잘 났다고 고개 뻣뻣이 들고 나갈 수는 없는 것 아니겠나. 민심과 역사의 부름을 받아야만 나갈 수 있다고 본다.” 말 그대로 그는 민심이 불러주는 ‘때’를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
‘김문수표 복지정책’ 곧 뚜껑 열린다
‘박근혜표 복지엔 없는 것 담았다’
박근혜 전 대표가 일찌감치 ‘복지정책’으로 차기 대권 이슈를 선점한 것과 달리, 김문수 지사에게서 자신만의 뚜렷한 정책과 공약을 아직 떠올릴 수 없다는 것은 아쉬운 점으로 지목된다. “박근혜 전 대표가 복지정책을 자신의 대선공약으로 ‘브랜드화’했는데 김 지사에겐 어떤 것이 있는가”라고 묻자, 김 지사는 “우리가 복지정책은 훨씬 더 많다. ‘무한돌보미’ 사업과 같은 정책은 벌써 몇 년간에 걸쳐서 해왔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으로 경기도에서 실시하고 있는 저소득층 가정을 위한 ‘무한돌보미’ 사업은 큰 호응을 얻고 있는 복지 정책 중 하나이기도 하다.
김문수 지사는 ‘박근혜표 복지정책’에 대해 각을 세우며 “박 전 대표의 복지정책은 언론에 많이 소개되었기 때문에 더 알려진 것일 뿐 구체적인 내용은 없지 않는가”라고 덧붙였다. 과연 그의 복지정책은 뭐가 다를까. 마침 오는 4월 13일 ‘김문수표 복지정책’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해 대대적으로 밝힐 예정이라고 한다. 경기도청 관계자는 “그동안 실시해 왔지만 알려지지 않았던 복지 정책들이 꽤 많다. 김문수 지사의 복지 정책의 모든 것을 공개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문수표 복지정책’이 향후 어떤 평점을 받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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