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도적으로 방치”…정치권, ‘영 케어러’ 간병 문제 공론화
10일 대구고법 형사2부(양영희 부장판사)는 존속살해 혐의로 기소된 A 씨(22)에 대한 항소를 기각했다. A 씨는 지난 8월 13일 1심에서 실형을 선고받은 뒤 항소했으나 이날 원심이 그대로 유지됐다.
A 씨의 아버지 B 씨(56)는 지난해 9월 심부뇌내출혈 및 지주막하출혈 등의 증세로 사지 대부분이 마비돼 약 8개월 간 병원에서 투병생활을 했다. 수술비와 병원비 등에 시달리던 A 씨는 지난 4월 23일 B 씨를 퇴원시킨 뒤 집안에서 홀로 간병했다. 그러나 A 씨는 지난 5월 1일부터 B 씨에게 물과 음식을 먹이지 않았고, B 씨는 8일 영양실조 등으로 숨진 채 발견됐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퇴원할 때 병원에서 받아온 처방약을 피해자에게 단 한 차례도 투여하지 않았다”며 “피고인이 피해자를 퇴원시킨 다음날부터 피해자를 죽게 할 마음을 먹고 죽을 때까지 의도적으로 방치했다는 점이 인정된다”고 밝혔다.
다만 “거동이 불가능한 아버지를 방치해 살해한 것으로 그 패륜성에 비춰 비난 가능성이 매우 크다”면서도 “어린 나이로 경제 능력이 없는 상황에서 간병 부담을 홀로 떠안게 되자 미숙한 판단으로 범행을 결심하게 된 것으로 보이는 점 등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인터넷 매체 ‘셜록’은 A 씨가 월세가 밀리고 도시가스가 끊기는 상황에서 먹을 음식이 없어 삼촌에게 “쌀 사 먹게 2만 원만 보내달라”고 하는 등 극도의 생활고에 시달렸던 사연을 전했다. 이날 항소심 판결을 앞두고 시민 6000명 이상이 탄원서를 보낸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치권에서도 다양한 목소리를 보탰다.
국회 예산결산위원회(예결위) 소속 최기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 5일 예결위 종합질의에서 A 씨에 대해 “젊은 나이부터 부모를 돌봐야 하는 청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부른다”며 “국민의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해 국가는 적극적인 복지 정책을 수행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에 김부겸 국무총리는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분들조차 국가가 자신들에게 다가온다는 생각을 가지게 하지 못한 것은 저희들의 책임”이라고 답했다.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도 “이런 사건 발생을 미연에 방지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덧붙였다.
심상정 정의당 대선후보도 같은 날 A 씨 사연과 관련해 “한 청년의 삶을 통째로 내던져도 감당하기 어려웠을 비극 앞에서 우리 공동체는 왜 그를 돕지 못했나”라며 탄식했다.
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7일 “22세 대구 청년의 비극을 다룬 기사에 마음이 멈췄다”며 “‘자기든 아버지든 둘 중 한 명은 죽어야만 끝나는’ 간병의 문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욱 기자 nmdst@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