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합원 4만 명 “영업이익 15%, 상한선 폐지” 주장…일부 주주 “공장 중단 안돼” 쓴소리, 파업 법정 다툼행
[일요신문] “우리가 18일 멈추면 18조 원에 가까운 공백이 생긴다.” 4만 명의 삼성전자 직원들이 반도체 핵심 생산기지인 평택사업장에 모였다. 이들은 영업이익의 15%를 성과급으로 요구하며 오는 5월 총파업을 예고했다. 현장에 나온 주주들은 “공장 중단은 안 된다”며 사측이 아닌 노동조합을 향해 쓴소리를 던졌다. 사상 최대 실적을 쓰고 있는 삼성전자는 ‘반도체 초호황의 역설’에 직면했다.
#삼성전자 역대 최대 규모 단체행동
4월 23일 경기도 평택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서 열린 삼성전자 노동조합 공동투쟁본부의 결의대회에서 조합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4월 23일 오전 9시,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에 ‘투쟁’이 적힌 검은색 조끼를 입은 삼성전자 노동조합 조합원들이 하나둘씩 모였다. 오후 1시 예정된 대규모 결의대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번 결의대회는 삼성전자 첫 과반 노조 초기업노조가 주축이 된 삼성전자 노조 공동투쟁본부가 준비한 집회다.
노조원들은 ‘투명하게 바꾸자’, ‘상한 폐지 실현하자’는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고 다녔다. 정오가 넘어서면서 평택사업장이 조합원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본대회가 시작된 오후 2시, 전체 임직원(약 12만 명)의 3분의 1 수준인 4만 명의 조합원들이 왕복 8차선 도로 1km가량을 가득 채웠다.
같은 팀 동료 두 명과 현장을 찾은 메모리 사업부 소속 한 노조원은 “개인 연차를 쓰기도 싫어 쟁의 근태를 신청하겠다는 직원이 주변에 많았다”며 “성과급은 직원들이 정확히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회사가 선심을 쓰듯 제시하는 일회성 보상이 싫어 참여하게 됐다”고 말했다.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한 노조원은 “부서 소속 직원 450명 중 400명 정도가 집회에 참여했다”며 “회사와 소통이 안 되는 상황이 누적돼 직원들의 불만이 고조되는 분위기다. 투쟁 조끼를 아예 사무실 의자에 걸어놓은 직원도 많아졌다”라고 밝혔다. 노조에 따르면 이번 집회는 창사 이래 가장 큰 규모의 단체행동이다.
노조의 핵심 요구안은 크게 두 가지다. 회사 영업이익 15%를 성과급 재원으로 명문화하고, 성과급 상한선을 영구적으로 폐지하자는 것이다. 현재 삼성전자는 매년 소속 사업부 실적이 연초에 세운 목표를 넘었을 때 초과 이익의 20% 한도 내에서 개인 연봉의 최대 50%까지 한 차례 초과이익성과급(OPI)을 지급한다. OPI는 세후 영업이익에서 투하자본 비용과 시설투자액 등을 제외한 금액인 경제적 부가가치(EVA)를 기준으로 삼고 있다. 이송이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부위원장은 “직원들이 정확히 알기 어려운 EVA 지표가 아닌, 영업이익을 기준으로 투명한 성과급 계산 방식을 적용하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이 크레인에 올라 발언하는 모습을 조합원들이 지켜보고 있다. 사진=김명선 기자지난 3월 26~27일 집중교섭에서 사측은 DS(반도체) 부문에 한해 영업이익 10% 이상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겠다고 노조에 제안했다. 사측은 DS 부문이 업계 1위 실적을 달성할 경우 특별 포상 형태로 현재 연봉의 최대 50%로 제한된 OPI 상한선을 넘어서는 성과급을 주겠다고도 제안했다. 사측은 이 경우 영업이익의 13.5~14% 수준을 성과급 재원으로 활용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노조는 제도 변경을 통한 성과급 상한의 영구적 폐지를 주장하면서 결국 협상이 결렬됐다.
이날 노조는 반도체 산업의 미래를 책임질 인재들에 정당한 보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최승호 초기업노조 삼성전자지부 위원장은 크레인에 올라 “반도체 세계 1위를 만들기 위해 생산하고, 공정을 개선하고, 밤을 새워 수율을 높인 것은 경영진이 아니라 조합원”이라며 “성과에 따른 정당한 보상으로 인재제일 원칙을 되살려, 삼성전자 미래를 만들고 이공계 처우를 개선하고 대한민국 경쟁력을 찾아야 한다”라고 외쳤다.
집회 도중 삼성전자 노조원들은 SK하이닉스와 회사를 비교하기도 했다. 우하경 전국삼성전자노동조합 위원장 직무대행이 “반도체 슈퍼사이클의 성과는 도대체 누가 가져가고 있냐”고 외치자, 집회에 참여한 일부 노조원들은 “하이닉스요”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2025년 9월 SK하이닉스는 노사 합의를 통해 영업이익의 10%를 성과급인 초과이익분배금(PS) 재원으로 활용하기로 하고, 기존 상한선인 기본급의 최대 1000%를 폐지하기로 결정했다.
이날 노조는 체크오프(조합비 급여공제)를 통해 파업 동력을 극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사진=김명선 기자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에 나설 것이라고 예고했다. 노조는 체크오프(조합비 급여공제)를 통해 파업 동력을 극대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노조는 4월 23일부터 4월 30일까지 체크오프 시행 총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최승호 위원장은 “이미 우리의 총 조직률은 58%”라며 “체크오프를 하면 총파업 인원을 두 눈으로 확인 가능할 것”이라고 외쳤다. 노조는 체크오프에 6만 명 정도가 참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집회가 끝난 오후 3시 10분경 최승호 위원장은 기자들과 만나 교섭 재개를 위한 두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 최 위원장은 “회사의 진정한 사과가 필요하다. 회사와 교섭을 진행하면서 정상적인 교섭이 아니었다고 보기 때문”이라며 “회사가 교섭 안건을 미리 갖고 오지 않으면 우리는 교섭에 응할 마음이 없다”라고 밝혔다.
노조는 총파업 기간인 18일 동안 하루에 1조 원씩 최소 18조 원, 총 생산 차질을 고려하면 최대 30조 원 손실이 발생할 것으로 추산했다. 앞서의 파운드리 사업부 소속 노조원은 “2년 전엔 공장 가동 중단으로 인한 손실이 우려돼 파업 참여율이 저조했다”며 “다만 이번엔 회사에 조금 손해를 입히더라도 조합원들의 목소리를 전달하자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일부 주주들 “공장 지분은 주주에게…파업은 안 돼”
삼성전자 노사가 이견을 좁히기는 좀처럼 쉽지 않을 전망이다. 사측은 성과급 상한을 폐지하면 사업부문별로 차등이 발생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당장 올해 1분기에 삼성전자의 전체 영업이익(약 57조 원) 중 DS 부문이 53조 원을 낸 것으로 추정된다. 모바일과 가전을 담당하는 DX(디바이스경험) 부문은 메모리 가격 상승으로 제조 원가 부담이 커진 상태다. DX 부문은 전 사업부에서 비용 30% 감축에 나섰다.
노조는 오는 5월 21일부터 6월 7일까지 18일간 총파업 투쟁을 강행할 것을 예고했다. ‘총파업 승리’ 깃발이 걸린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사진=김명선 기자성과급 액수도 회사 입장에선 부담이다. 노조 주장대로 성과급을 계산하면 삼성전자는 올해 연간 영업이익 전망치(270조 원) 기준으로 약 40조 원을 성과급으로 지급해야 한다. 이는 지난해 삼성전자의 연구개발비(38조 원), 현금배당액(11조 원)을 넘어서는 수준이다. SK하이닉스의 올해 1분기 영업이익(약 37조 원)과도 맞먹는 규모다. 3월 26일 집중교섭 의사록에 따르면 사측 대표교섭위원인 김형로 삼성전자 부사장은 “(SK하이닉스보다) 이익률이 높은 것도 아니고 주주 등이 보고 있는 상황에서 (영업이익 기반의 상한선 없는 성과급 명문화는) 되게 어렵다”라고 말했다.
4월 기준 초기업노조의 조합원 수는 7만 5000명인데 이 중 80%가 DS 부문 직원이다. 초기업노조 홈페이지 게시판에는 DX 부문 직원들이 불만 섞인 목소리를 내고 있다. DX 부문에 속해있다고 밝힌 한 직원은 초기업노조 게시글에 남긴 댓글을 통해 “통합노조인데 DX라는 단어를 언급해 달라는 것이 그렇게 무리한 요구냐”라고 말했다. 다른 직원도 “DS와 DX 부문 구분 없이 노조원을 챙겨 달라”는 댓글을 남겼다.
같은 DS 부문 안에서도 성과급이 크게 달라질 수 있다. DS 부문 중 비메모리 분야인 시스템LSI·파운드리 사업부는 만성 적자 상태다. 사측은 집중교섭에서 시스템LSI와 파운드리 사업부에도 경영성과 개선 시 기존 OPI의 50%에서 25%를 얹어 최대 75%의 성과급을 보장하는 안을 노조에 제시했다. 하지만 집중교섭에서 최승호 위원장은 사측에 “일회성 조건에 대해서는 (교섭을) 하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이날 현장에선 삼성전자 노조가 파업까지 가선 안 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오전 10시 평택사업장 앞 인도에서 삼성전자 주주로 이뤄진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는 ‘삼성 주주배당 11조, 삼성 직원배당 40조?’라는 피켓을 들고 파업 반대 맞불 집회를 열었다. 주주가 사측이 아닌 노조를 향해 쓴소리를 퍼붓는 광경이 연출됐다. 지난해 12월 31일 기준 삼성전자 소액주주 수는 419만 명 수준이다.
민경권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대표는 “성과급은 노사 문제라 하더라도, 공장 가동 중단은 다른 문제다. 공장 지분을 갖고 있는 것은 주주다. 공장 가동이 멈추면 주주들의 재산에 직접적인 피해를 주는 것”이라며 “회사 영업이익을 제한 없이 내놓으라는 것은 악덕 채무업자에 지나지 않는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제조업에서 33년간 근무했다는 삼성전자 소액주주 노 아무개 씨도 “성과급은 고사하고 월급도 못 받는 사람이 많아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국민이 많다”며 “공장 가동 중단까지 가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집회에 나왔다”라고 밝혔다.
이날 삼성전자 주주가 사측이 아닌 노조를 향해 쓴소리를 퍼붓는 특이한 광경이 연출됐다. 4월 23일 오전 10시경 민경권 대한민국 주주운동본부 대표(가운데)가 성명서를 낭독하고 있다. 사진=김명선 기자파업은 노조와 삼성전자 간 법정 다툼으로 번진 상태다. 지난 4월 16일 삼성전자는 수원지방법원에 위법 쟁의행위 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반도체 생산라인의 안전보호시설 정상 운영, 원료·제품의 변질이나 부패를 방지하기 위한 작업 수행 방해, 생산시설 점거 등 노조의 위법한 쟁의행위를 막아 달라는 취지다. 반도체 생산이 이뤄지는 클린룸 환경이 훼손되면, 공정 중이던 웨이퍼를 폐기할 수밖에 없다. 강성철 한국반도체디스플레이학회 연구위원은 “반도체 라인은 1초만 다운돼도 복구하는 데 시간이 걸린다”라고 말했다.
노동조합법 제42조 제2항은 쟁의행위 기간에도 필수유지업무의 정당한 유지·운영을 정지하거나 방해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이를 어기면 형사처벌 대상이 된다. 사측은 제조와 기술 인력 2031명을 공장 운영을 위한 필수 유지 인력(협정근로자)으로 지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장에서 만난 반도체 업계 한 관계자는 “과거 울산의 한 공장에서 화학물질이 유출돼 사람이 다친 일도 있었다”며 “위험성이 큰 반도체 사업장에서 화학물질 처리 작업 등은 굉장히 중요하다”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4월 21일 노조는 법무법인 자문을 얻은 입장문을 통해 “노조법 제42조 제2항은 안전보호시설의 유지와 운영을 방해하지 말라는 취지일 뿐, 전 인력을 평시와 동일하게 근무시키거나 100% 운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는 없다”며 “삼성전자는 필수공익사업장이 아니므로 필수유지업무와 같이 법률상 강제되는 범위가 존재하지 않는다. 협정근로자 지정 역시 당사자 간 협의를 통해 정해야 한다”라고 반박했다.
정부도 삼성전자 노사 갈등을 언급했다. 4월 23일(현지시각) 베트남 하노이 현지 브리핑에서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은 삼성전자 파업 가능성에 대해 “아직은 특별히 문제로 인식하지 않고 있다”면서도 “슬기롭게 대화를 통해 잘 해결되길 바란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총파업, 외신·증권가도 예의주시
삼성전자 총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외신과 증권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메모리 세계 1위 기업인 삼성전자가 생산을 일시적으로 멈추면 전 세계적으로 반도체 공급량에 일부 차질이 빚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인공지능(AI) 반도체 주도권 경쟁이 치열한 시점에서, 파업으로 삼성전자의 대외적 신뢰도가 훼손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삼성전자 총파업이 초읽기에 들어가면서 외신과 증권가도 우려를 표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전자 서초 사옥. 사진=박정훈 기자로이터통신은 “노조 파업으로 생산에 차질이 빚어지면 AI 데이터 센터와 자동차, 스마트폰 등 전 산업 분야에서 공급 병목 현상이 심화할 전망”이라고 내다봤다. 테크 전문매체 샘모바일은 반도체 생산 차질 위험이 커졌다며 노조의 파업 시점을 두고 “최악의 시기”라고 평가했다.
KB증권은 “불붙은 시장에 기름을 붓는 격”이라는 평가를 내놨다. 4월 23일 KB증권은 리포트를 통해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면 파업이 18일간 지속될 경우 종료 이후에도 자동화 라인의 재가동 및 정상화 과정에 추가로 2~3주의 시간이 소요될 가능성이 높다”며 “삼성전자의 글로벌 시장점유율(D램 36%, 낸드 32%)과 평택, 화성 사업장의 생산 비중을 고려하면 글로벌 공급 차질 규모는 D램이 3~4%, 낸드가 2~3%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파업이 현실화하면 메모리 가격 상승 요인이 될 수 있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닛케이아시아는 이번 분쟁이 삼성전자의 장기 시장 지위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닛케이아시아는 “최근의 강력한 성과는 회사의 기술력보다 ‘AI 붐’이라는 외부 환경 덕분”이라고 지적한 애널리스트 발언을 소개했다. 대만 디지타임스는 “반도체가 전체 수출의 3분의 1 이상을 차지하는 한국 경제 특성상 파업은 치명적이다”며 “칩 가격 변동과 한국 세수 감소는 물론 장기 투자 계획까지 훼손할 수 있다”고 짚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