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덜미 쓰다듬는 이유는…
▲ 악몽이 또… 원폭의 참혹함을 후세에 전하기 위해 피폭 당시의 모습을 그대로 남겨놓은 히로시마 ‘원폭돔’을 아이들이 바라보고 있다. 연합뉴스 |
당시 히로시마 원폭으로는 주민의 40% 정도인 14만 명이, 그리고 나가사키 원폭으로는 7만 3884명이 사망했고, 7만 4909명이 부상을 당했다.
현재 일본에는 22만 7000여 명이 피폭자로 살고 있고, 이 가운데 정부에 히바쿠샤로 공식 등록된 사람은 16만 2000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히바쿠샤들 가운데 60% 이상은 70~80대의 고령으로, 대부분 암을 앓고 있거나 정신적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등 각종 질병으로 고통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육체적 고통 못지않게 이들을 괴롭히고 있는 것은 평생 동안 자신들에게 꼬리표처럼 달린 히바쿠샤라는 낙인이다. 이 낙인은 본인 외에도 대를 이어 후손에게 물려지게 될 주홍글씨와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히바쿠샤라는 낙인이 끔찍한 이유는 일본 사회에 만연한 이들에 대한 차별과 따돌림 때문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결혼과 취직이다. 피폭자와 결혼하길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취직을 시도할 때마다 히바쿠샤라는 사실 하나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도 많다.
가령 대기업 입사지원서에 히바쿠샤라는 사실이 적혀 있는 경우, 이 서류는 십중팔구 은밀하게 걸러지기 일쑤였으며, 개인탐정까지 고용해서 자녀의 상대가 히바쿠샤인지 아닌지를 뒷조사하는 극성스런 부모도 많았다. 이와 관련 한동안 도쿄에서는 ‘히로시마에서 온 사람과는 절대 결혼해선 안 된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었다.
이처럼 일반인들이 히바쿠샤를 꺼려 하는 이유는 2세들이 혹시 장애를 안고 태어날지 모른다는 두려움과 함께 이들에게서 방사선이 전염될지 모른다는 막연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이런 사정 때문에 히바쿠샤들은 자신의 자녀들에게 피폭자라는 사실을 아예 숨기거나, 자녀들이 성인으로 성장한 후에야 비로소 사실을 털어놓는 경우가 많았다. 시카고 드폴대학의 유키 미야모토 박사는 “피폭으로 인해 소두증을 갖고 태어난 아이들은 평생 동안 집안에서 숨어 지내야 했다. 행여 존재가 알려지면 다른 형제자매들이 결혼할 때, 혹은 취직할 때 불이익을 당할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나가사키 피폭 당시 한 살 된 갓난아기였던 도시코 하마마코(67)는 2년 전에야 비로소 자신이 히바쿠샤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주변사람들에게 공개했다. 그 전까지 그녀가 히바쿠샤란 사실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은 가족들뿐이었다.
그녀는 “그동안 히바쿠샤라는 사실을 숨겨 왔던 이유는 차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일본인들에게 우리는 위험한 존재로 비쳐졌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방사선을 오염시킬 수 있다는 그릇된 오해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하마마코의 어머니 역시 그녀가 스무 살을 넘기고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린 후에야 그녀가 히바쿠샤라는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녀는 “어느 날 어머니가 나에게 ‘히바쿠샤 등록증’를 발급받으라고 하셨다. 등록을 해야지만 의료비를 면제 받을 수 있고, 또 행여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상황에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고 말했다. 그제야 비로소 자신이 피폭자란 사실을 알게 됐던 그녀는 남편에게 이 사실을 알렸고, 남편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나 역시 입을 다물고 있겠다”고 말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 피폭자들만 차별을 받는 것은 아니다. 다른 경로를 통해 방사능에 오염된 사람들 역시 히바쿠샤로 분류되어 생활에 어려움을 겪긴 마찬가지다.
1954년 남태평양에서 조업을 하고 있다가 봉변을 당했던 참치 원양어선인 ‘럭키 드래곤 5호’의 선원들 역시 평생을 히바쿠샤로 살면서 인생이 망가졌다. 당시 인근 바다에서 실시됐던 미군의 원자핵 무기 실험으로 인해 배 전체가 완전히 낙진에 노출됐던 선원들은 고향으로 돌아온 후에 히바쿠샤라는 낙인으로 차별을 당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런 태도가 모두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말하는 히바쿠샤들은 “정부가 나서서 이런 오해를 풀어주지 못한다면 이런 불공평한 처우는 계속될 것”이라고 비난하고 있다. 히로시마 평화기념관의 고이치로 마에다 관장은 “히바쿠샤들은 근거 없는 오해로 인해 차별을 당해왔다. 언론과 정부가 방사선의 영향에 대해 명확하게 설명을 해준다면 이런 문제는 더 이상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충고했다.
후쿠시마 원전의 피폭자들, 그리고 특히 임신부들이 더욱 걱정스럽게 여겨지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이번 원전 사태로 인해 앞으로 가장 큰 고통을 당하게 될 사람은 현세대들보다는 일본의 다음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방사능 물질에 가장 취약한 집단은 면역력이 약한 노인, 어린이, 유아지만 무엇보다도 아직 장기가 덜 발달한 9~42일 된 뱃속의 태아들이다. 산모들에게는 아무런 피폭 증상이 안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심장, 허파 등 중요한 장기가 만들어지는 단계에 있는 태아들은 DNA 손상으로 인해 기형아로 출산할 확률이 크다.
김미영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일 야구전설 장훈도 ‘히바쿠샤’
‘편견의 벽’ 깨버렸다
일본프로야구의 전설로 통하는 장훈(70)도 히바쿠샤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통산 안타 3085개, 홈런 504개, 도루 319개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기록을 세우면서 야구의 전당에 오른 그는 현재 일본프로야구 선수 중 유일하게 원폭 생존자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는 당시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로 집을 나서지 않아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열한 살이었던 누나는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다행히 건강하게 생활했지만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상황을 위해서 늘 ‘핵폭탄 생존자’, 즉 ‘히바쿠샤 등록증’을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 그는 “은퇴하기 2년 전인 1979년 갑자기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당황했었다. 보통 날아오는 공의 솔기의 회전을 보고 구질을 읽어냈는데 언제부턴가 앞이 흐릿해지면서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담당의는 피로 때문이며, 곧 회복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피폭 예후증상이 나타날까 전전긍긍했고, 혹시 가족이 알고 걱정할까 밤잠을 설쳐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현재 히바쿠샤 운동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세계 핵무기 금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을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
‘편견의 벽’ 깨버렸다
일본프로야구의 전설로 통하는 장훈(70)도 히바쿠샤였다는 사실을 아는지.
통산 안타 3085개, 홈런 504개, 도루 319개로 일본프로야구 역사상 유일무이한 대기록을 세우면서 야구의 전당에 오른 그는 현재 일본프로야구 선수 중 유일하게 원폭 생존자로 기록되어 있기도 하다.
1945년 히로시마 원자폭탄 투하 당시 다섯 살이었던 그는 당시 아슬아슬한 간발의 차이로 집을 나서지 않아서 극적으로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열한 살이었던 누나는 이미 밖으로 나간 상태였기 때문에 방사선에 그대로 노출돼 결국 사망하고 말았다.
그는 다행히 건강하게 생활했지만 혹시 발생할지 모르는 응급상황을 위해서 늘 ‘핵폭탄 생존자’, 즉 ‘히바쿠샤 등록증’을 몸에 지니고 다니고 있다. 그는 “은퇴하기 2년 전인 1979년 갑자기 왼쪽 눈의 시력이 급격히 나빠져서 당황했었다. 보통 날아오는 공의 솔기의 회전을 보고 구질을 읽어냈는데 언제부턴가 앞이 흐릿해지면서 안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당장 병원으로 달려가서 검사를 받았고, 다행히 담당의는 피로 때문이며, 곧 회복될 것이라고 안심시켰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계속해서 피폭 예후증상이 나타날까 전전긍긍했고, 혹시 가족이 알고 걱정할까 밤잠을 설쳐야 했다고 털어 놓았다.
현재 히바쿠샤 운동단체의 일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는 세계 핵무기 금지, 희생자들에 대한 보상금 지급 등을 촉구하는 운동에 참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