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에 놀란 배트 다시 세우는 중!”
▲ 일본 대지진 여파로 국내에 일시 귀국한 지바 롯데 김태균이 올 시즌 홈런 타자 명예회복을 다짐하며 연습에 집중하고 있다. 윤성호 기자 cybercoc1@ilyo.co.kr |
사실 김태균한테 일본의 지진과 관련된 얘기는 물어보지 않을 생각이었다. 귀국 후 인터뷰 때마다 지진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고, 그 내용 또한 알려질 만큼 알려졌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태균이 먼저 ‘알아서’ 말을 꺼낸다.
“정말 많이 놀랐어요. 일본에 지진이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고, 작년에도 조금씩 지진을 경험하긴 했지만 이번처럼 엄청난 지진은 처음이었거든요. 지진도 지진이지만, 놀란 가슴이 진정이 안 돼서 운동에 집중이 안 되는 거예요. 여진이 계속 있으니까 밤에 잠도 잘 못자고…, 그러다 밸런스가 무너져 버렸죠.”
지난 겨울과 스프링캠프 동안 말 그대로 피땀 흘려 만들어 놓은 훈련 감각이 지진으로 폭삭 주저앉았다고 한다. 구단의 권유로 일주일가량 한국에서 훈련을 하고 있지만 무너진 밸런스를 찾는 게 쉽지만은 않은 모양이다.
“개막전을 앞두고 차근 차근 단계를 밟아 오다가 이런 일이 벌어지니까 진짜 황당하죠. 문제는 일본 선수들은 전혀 동요하지 않는다는 사실이에요. 별 거 아니라는 식으로 일상적인 생활을 이어나가더라고요. 난 무서워 죽겠는데…. 아마 미국 용병들은 더 놀랐을 거예요.”
김태균은 귀국 후 한국에서 보도되는 일본 소식과 일본에서 직접 보고 들은 내용과는 큰 차이점이 있다고 말했다.
“편의점이 텅텅 비고 물 구하기가 힘들고 기름 넣을 때마다 문 연 주유소 찾아다니며 한참을 줄 서서 주유하는 것은 사실인데요, 일본보다는 한국에서 더 심각하게 보도하는 것 같아요. 후쿠시마 외에는 지바도, 도쿄도 모두 평온하게 생활하고 있거든요. 한국의 부모님께서 왜 더 심하게 걱정을 하셨는지, 와 보니까 알겠더라고요.”
김태균은 이번 시즌을 준비하면서 지난 시즌, 자신이 겪은 시행착오에 대해 냉정한 평가를 내렸다. 일본 야구에 대한 경험이 있고 없고가 시즌을 준비하는 부분에서 큰 차이를 나타냈다는 것. ‘핑계 아닌 핑계’라는 단서를 달고 김태균은 이런 설명을 곁들인다.
“10년간 한국에서 야구하며 익숙해진 신체 리듬이 있잖아요. 겨울 체력훈련과 스프링캠프 동안 천천히 몸을 만들어서 개막전에 맞춰 페이스를 끌어올리던 스타일이 지난 시즌에 확 바뀐 셈이죠. 돈을 많이 받고 들어간 용병이다 보니 캠프 때부터 뭔가를 보여주려고 애를 썼던 것 같아요. 시범경기 때 이미 몸을 100%로 만든 후 풀스윙을 했거든요. 감독한테 믿음을 심어주기 위해 애를 썼는데 그렇게 두 달을 일찍 시작했더니 7월부터 제 몸은 이미 시즌이 끝난 상태가 돼 버렸어요. 아무리 웨이트트레이닝을 하고 러닝을 해봐도 바닥을 친 몸은 쉽게 회복이 안 되더라고요. 나중에는 될 대로 되라는 심정이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이라면 클라이막스시리즈를 거치며 조금씩 몸 상태가 호전되는 기분을 느꼈다고 한다. 더욱이 한화 때는 경험하지 못한 재팬시리즈 우승은 김태균이 일본에 연착륙하는 데 큰 영향을 미쳤다.
“한화에선 준우승까지 경험해 봤잖아요. 당시 한국시리즈를 치르며 엄청나게 힘들어 했거든요. 준플레이오프를 거쳐 올라간 탓에 정작 한국시리즈 때는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였어요. 지바 롯데도 똑같은 상황이었는데 우승을 하려고 그런지 게임을 하면 할수록 응집력을 보이더라고요. 선수들도 더 자신감을 나타내고요. 포스트시즌을 치르면서 선수들과 더 많이 가까워졌어요. 개인적으로는 일본 진출 첫 해에 재팬시리즈 우승을 경험했다는 건 굉장한 행운이었습니다. 한화에서 못 이룬 꿈을 일본에서 이룬 셈이죠. 제 이름이 새긴 우승 반지가 생긴다는 건 더할 나위 없는 선물이에요.”
아직 받지 못했다는 우승 반지가 어떤 형태로 이뤄지는지 물었다.
“다이아몬드로 제작된다고 들었어요. 엄청난 고가라고 하던데요? 한 번도 받아본 적이 없어서 지난 번 광저우아시안게임 때 SK 정근우에게 우승반지에 대해 물어봤거든요. SK에선 어떤 반지를 제작해줬느냐고요. 그랬더니 SK가 처음 우승했을 때는 다이아몬드와 블루사파이어 등이 적절히 조화된 비싼 반지를 제작했는데 우승을 계속하니까 그 후론 점점 반지 가격이 내려가는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요(웃음). 가격이 문제겠어요. 우승 반지라는 상징적인 의미가 훨씬 큰 거죠.”
일본 진출 첫 해 경험한 한 가지 에피소드를 부탁했다. 곰곰이 생각에 잠기던 김태균이 슬며시 미소를 지으며 이런 얘기를 들려준다.
“제가 평소 타석에 들어설 때마다 침을 많이 뱉는 스타일이에요. 목이 답답하면 확 뱉어야 시원해지거든요. 그런데 일본 선수들은 운동장에서 절대로 침을 뱉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동료한테 그 이유를 물었죠. 자기들은 어려서부터 야구장을 굉장히 신성한 장소라고 배웠대요. 그래서 제가 ‘그럼 나도 침 뱉으면 안 되겠네’라고 했더니 그 친구가 ‘넌 괜찮아. 용병이니까’라고 말하더라고요.”
이런 일도 있었다. 일본 선수들은 항상 운동장에 들어가기 전에 모자를 벗고 90도로 인사를 한다. 훈련하기 전에도 인사하고 시합 들어가기 전에도 인사하는 모습이 신기해서 왜 그런지 궁금해 했더니 ‘운동장을 향해 오늘 하루도 다치지 않게 해달라고 부탁하는 의미’였다는 것.
“일본 선수들은 마치 야구 아니면 할 게 없는 사람처럼 정말 열심히 운동해요. 그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저절로 고개가 숙여질 정도예요. 수비하는 데도 몸을 아끼지 않아요. 안타성 타구가 날아와도 무조건 슬라이딩을 해요. 그렇게 하다보면 5개 중 1개는 걸린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초반엔 많이 힘들었어요. 분명 제가 친 공이 안타성 타구인데 그걸 잡아서 1루로 던지더라고요. 가뜩이나 다리도 늦는데 얼마나 힘들었겠어요. 분명 이건 2루타다 싶어 열심히 달리다보면 1루에서 더 나갈 수가 없어요. 이미 수비를 하고 있으니까요. 제가 잘 나갈 때는 상관없는데 후반기, 한창 안 좋을 때 어쩌다 하나 잘 맞은 게 아웃돼 버리면 미칠 것 같더라고요.”
김태균은 지난 시즌 자신의 성적(141경기에 출장해 2할6푼8리 21홈런 92타점)을 점수로 매긴다면 50점도 안 된다고 잘라 말했다. 물론 처음에 일본으로 향하면서 세운 목표는 어느 정도 이뤘지만 결코 만족할 수 없는 기록이라는 사실 때문이다.
“미국에서 데려온 용병들한테는 첫 해 돈을 많이 안 줘요. 성적으로 보여줘야 그 다음 해 연봉을 올려주죠. 그런데 전 처음부터 많이 받고 들어갔잖아요. 구단 입장에선 기대를 많이 했을 거예요. 3할에 홈런 30개, 100타점은 올려야 하는 몸값이었죠. 그런데 그 기대치에 훨씬 못 미쳤어요. 시즌 끝나고 한국 들어오기 전에 감독님한테 ‘기대에 못 미쳐서 죄송하다’고 말씀드렸어요. 돈을 많이 받는다는 게 몇 십 배는 더 부담이 된다는 걸 실감할 수 있었죠.”
김태균은 이번 시범경기가 시작되기 전에 올 시즌에는 홈런을 의식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그 이유를 물었다.
“솔직히 홈런 치기 싫어하는 타자가 누가 있겠어요. 4번타자이고 용병인데…. 홈런 못 치고 안타만 많이 치는 용병을 데리고 있을 감독이 있을까요. 홈런을 의식하지 않겠다는 말은 최대한 의식하지 않고 스윙을 해야 이전의 제 폼을 찾을 수 있겠다 싶어서 다짐하듯이 한 말이에요. 일본 진출 후 용병이라는 신분 때문에 욕심을 내다보니 스윙폼이 커졌고 제 스타일을 잃어버리게 됐어요. 그래서 올해는 홈런 의식 안 하고 타율에만 집중하려고요. 그러다보면 자연스레 홈런도 터지지 않을까 싶어요.”
일본 대지진으로 인해 프로야구가 당분간 낮 경기로 치러지는 데 대해 김태균은 “오히려 컨디션 조절하는 데는 야간 경기보다 낮 경기가 더 편하다”면서 “낮 경기만 계속할 경우 리듬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센트럴리그에 속한 오릭스 박찬호와의 맞대결에 대해서도 “다 같이 잘했으면 좋겠다. 모두 다 잘해서 결과가 좋았으면 좋겠다”고 에둘러 표현했다.
올 시즌 목표를 ‘용병답게’ 3할에 30홈런, 100타점이라고 정한 김태균은 “어렸을 때는 이런 목표조차 없었어요. 운동한 날보다 할 날이 많지 않으니까 그 안에 많은 걸 이루고 싶어요”라며 속내를 드러낸다.
김해=riverofly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