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자도 감시자도 ‘친MB’로 통일?
우리·KB·신한·하나, 4대 금융지주회사들의 주주총회(주총)가 마무리되면서 이들이 선임한 새 사외이사진에 재계의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사회의 절대적 비중을 차지해온 사외이사진이 금융지주 수뇌부와 친분이 돈독한 인사들로 채워져 거수기 노릇이나 했던 전례 때문이다. 권력층 후광을 업은 낙하산 인사의 사외이사진 입성 또한 금융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주총 시즌을 통해 새롭게 구성된 4대 금융지주사 사외이사진의 면면을 살펴봤다.
이명박 대통령 측근으로 분류돼온 이팔성 회장의 우리금융은 지난 3월 25일 주총을 열고 이용만 전 재무부 장관, 김광의 예금보험공사 홍보실장, 박지환 아시아에볼루션 대표이사 3명을 새롭게 사외이사로 선임했다. 이들 중 이용만 전 장관은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취임준비위원회 자문위원을 지냈으며 현재 청와대 국민원로회의 위원을 겸하고 있다. 그는 이팔성 회장의 고려대 법대 선배이기도 하다. 김광의 예보 홍보실장은 우리금융 대주주인 예보 측 이사로 사외이사진에 새롭게 합류하게 됐다.
이번 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된 이두희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 대통령의 고려대 경영학과 후배다. 이 교수 부인이 현 정부 초기 청와대 사회정책수석으로 임명됐다가 논문 표절 논란과 부동산 투기 의혹 등으로 사퇴한 박미석 숙명여대 교수라는 점도 눈에 띈다. 그밖에 현 정부하에서 대통령 직속 국민경제자문회의 자문위원을 지낸 신희택 서울대 법대 교수도 사외이사에 다시 선임됐다.
우리은행도 지난 3월 24일 주총을 통해 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상임자문위원을 지낸 채희율 경기대 경제학과 교수를 새 사외이사로 영입했다. 재선임된 이팔성 회장의 장악력 강화와 동시에 정부 세력과의 유대를 돈독히 한 사외이사진 구성으로 평가받는다.
이팔성 회장과 마찬가지로 ‘친 MB계’로 평가받는 어윤대 회장이 이끄는 KB금융 계열도 친 정부 성향의 사외이사를 신규 선임했다. 지난 3월 2일 주총을 통해 국민은행은 박동순 현 금융감독원 거시감독국장을, KB국민카드는 현 정부 국민경제자문회의 위원을 지낸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를 각각 새 사외이사로 선임해 눈길을 끌었다.
내분 사태로 라응찬 전 회장 퇴진 등의 굴곡을 겪은 신한금융은 지난 3월 23일 주총을 통해 한동우 신임 회장과 서진원 신임 신한은행장을 등기이사로 선출하며 새 출발을 알렸다. 신한금융은 이번 주총을 통해 사외이사 수를 종전 8명에서 10명으로 늘렸다. 10명 사외이사 중 윤계섭 서울대 명예교수와 필립 아기니에 BNP파리바 아시아리테일부문 본부장을 제외한 8명이 신규 사외이사다.
이사회 의장으로 추대된 남궁훈 생명보험협회 회장을 비롯해 권태은 나고야외국어대 교수, 김기영 광운대 총장, 김석원 신용정보협회 회장, 유재근 삼경본사 회장, 이정일 평천상사 대표이사, 황선태 법무법인 로고스 고문변호사, 히라카와 하루키 평천상사 대표이사 등이 새 사외이사로 선출됐다.
이들 중 권태은 유재근 이정일 등 일본에 연고를 둔 인사들이 새롭게 대거 합류하면서 신한금융에서 큰 목소리를 내온 재일교포 세력의 물갈이 가능성을 보이기도 한다. 신한금융 내분 사태와 한동우 신임 회장 선출 과정에서 재일교포 세력이 신한금융 내 최대 파벌인 라응찬 전 회장 세력과 반목했던 점이 이번 사외이사진 교체와 맞물려 여러 해석을 낳기도 한다.
라 전 회장과 가깝다고 알려진 히라카와 하루키 평천상사 대표와 한동우 회장의 부산고-서울대 법대 동기동창인 황선태 변호사가 사외이사진에 새롭게 합류한 점도 눈에 띈다. 라 전 회장이 물러났지만 그가 지지했던 한동우 회장을 중심으로 한 이사진 구성에서 라 전 회장 입김이 여전하다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다른 금융지주사들과는 대조적으로 하나금융 사외이사진엔 큰 변동이 없다. 정광선 사외이사(중앙대 명예교수)가 하나금융이 인수한 외환은행 사외이사로 옮기면서 생긴 빈자리를 정영록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가 채운 정도다. 정해왕 전 한국은행 금융경제연구원 원장, 김경섭 전 감사원 감사위원, 이구택 전 포스코 회장, 유병택 전 두산 부회장, 조정남 전 SK텔레콤 부회장 등 5명이 3월 25일 정기주총에서 사외이사로 재선임됐다.
대기업 CEO(최고경영자) 출신이 많다는 점이 눈에 띄는데 이들은 대부분 김승유 하나금융 회장과 인연이 깊은 인사들이다. 이구택 전 회장은 김 회장과 경기고 동문이며 유병택 전 부회장은 김 회장의 고려대 동문이다. 조정남 전 부회장은 하나금융의 사업 파트너인 SK 출신이다.
천우진 기자 wjchu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