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하전투’ 이겨야 앞길이 술술
▲ 손학규 대표(왼쪽)와 유시민 대표가 김해을 국회의원 보궐선거 민주당, 국민참여당 후보 단일화를 놓고 신경전을 펼치고 있다. 배경은 봉하마을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 |
문제는 국민참여경선의 방식이다. 민주당은 기존 경선처럼 선거인단 모집을 통한 직접투표 방식을 염두에 두고 있다. 하지만 참여당은 특정 장소에 운집해 투표하는 방식보다 여론조사 방식의 ‘변형’을 고려하고 있다. 현장투표에서는 조직동원력이 앞서는 민주당이 유리할 수밖에 없는 만큼 최대한 조직력 변수를 최소화할 수 있는 방도를 찾는 것이다. 참여당이 3월 25일 긴급 최고위원회의 직후 보도자료를 통해 “유권자의 의사가 제대로 반영되는 공정하고 깨끗한 국민참여경선을 도입하는 조건으로 시민단체의 의견을 수용한다”면서 “돈 선거와 불법선거를 차단할 수 있는 경선 방안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 것도 이 같은 배경에서다.
민주당은 “더 이상의 양보는 없다”고 배수진을 치고 있다. 협상대표인 이인영 최고위원은 이날 춘천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참여당이 ‘민주당의 국민참여경선 방안이 궁금하다’고 말하는 것은 마치 시험에서 자기가 풀 수 있는 문제지만 풀겠다는 얘기로 비쳐질 수 있다”고 말했다. 참여당의 유시민 대표가 전날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을 어떻게 치를지 구체적인 계획을 알려주기 바란다. 그걸 먼저 듣고 가부를 결정할 생각”이라고 말한 데 대한 반격이었다.
민주당은 국민참여경선이 직접 투표 방식이 아니라면 여론조사와 다를 게 없다고 보고 있다. 여기에는 지난해 6·2지방선거 당시 경기지사 후보단일화 협상과정에서 나온 ‘유시민 방식’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게 깔려 있다.
당시 유 후보가 국민참여경선의 대안으로 관철시킨 방식은 공론조사였다. 이는 선거인단 모집, 홍보물 발송 등의 사전절차는 국민참여경선과 똑같지만, 현장 투표가 아니라 전화를 통한 투표가 이뤄지는 것이다. 긴급한 이슈에 대한 찬반 의견을 묻는 공론조사라는 형식이 사실상 여론조사나 마찬가지라는 것이 민주당의 시각이다. 유 후보를 협상장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민주당 김진표 후보 측이 양보했지만 결국 그 방식 때문에 단일후보 자리를 내줬다고 생각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번 김해 을 단일화협상에서도 유 대표가 자신의 경험을 살려 국민참여경선 대신에 공론조사를 들고 나올 가능성이 많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이 참여당을 겨냥해 “공정경선 운운하면서 뒤로는 말장난을 하고 있다”고 드러내놓고 불쾌감을 표현하는 것은 그런 전철을 되밟지 않기 위해 나름의 ‘사전차단’ 효과를 노린 것이다.
양측이 이처럼 양보 없는 기세싸움을 벌이는 것은 김해 을의 선거결과가 ‘4·27 이후’ 야권의 패권 향배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고향인 봉하마을이 있는 지역구의 대표선수가 되는 쪽이 참여정부의 ‘적통’을 승계하는 정치적 상징성을 가질 수 있다. 또한 차기 총선과 대선을 염두에 둔 양당의 통합 전망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뿐만 아니라, 양당이 각개약진의 경우에 불가피하게 맞닥뜨려야 하는 후보단일화 협상에서도 ‘김해 을 모델’은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특히 유 대표로서는 김해 을에서 이겨 원내 의석을 확보하고, 내년 총선에서 참여당 후보들이 전국적으로 동일한 기호로 뛸 수 있게 만들어야 하는 책임이 지워져 있다. 김해 을 선거가 총선 구도, 나아가 대권레이스와도 연결돼 있는 것이다.
이런 연유로 손 대표와 유 대표 간에는 본선을 방불케 하는 고공전이 펼쳐지고 있다. 지난 3월 24일 손 대표의 의미심장한 행보에 야권의 시선이 집중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이날 오후 손 대표는 강원도 횡성지역 방문 일정을 마친 뒤 다음날 다시 춘천에서 최고위원 회의가 있음에도 불구, 곧바로 서울로 올라와 친노 그룹의 큰 축인 이해찬 전 총리의 <광장에서 길을 묻다>라는 책 출판기념회에 참석했다. 이 전 총리는 18대 대선 패배 직후인 2008년 1월 총선을 앞두고 손 대표가 당대표에 오르자 “한나라당 출신 대표와 가치를 함께 추구할 수 없다”며 탈당했을 만큼 손 대표에게는 ‘불쾌한 정적’이다.
하지만 손 대표는 출판기념회에서 “내가 부족해 이 총리가 당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이제 나와 민주당이 엎드려서 마음을 열고 이 총리를 모시고자 한다”고 노골적인 구애를 시도했다. 이 전 총리가 “야권연대만이 총선 승리 전략이다”라고 강조하면서 손 대표에게는 화답조차 하지 않았지만, 측근들은 “그 정도면 일단 꽉 막힌 터널에서 숨통 정도는 뚫은 셈”이라고 자평하고 있다.
손 대표는 이미 이광재 전 강원지사의 지지 선언을 끌어냈고, 지난 3월 22일 김해로 내려가 권양숙 여사를 만난 자리에선 “(출마를 포기한) 김경수 봉하재단 사무총장을 잘 봐달라”는 부탁을 받고 왔다. 손 대표 측은 권 여사의 심정적 응원을 확인했다고 판단하고 있다. 김해 을 전쟁의 핵심인 친노 지지의 토대는 쌓았다고 보는 것이다.
이에 질세라 유 대표는 지난 3월 24일 봉하마을의 노 전 대통령 묘역을 찾아 참배하고 권 여사와 면담한 뒤 김해에 ‘상주’하고 있다. 그는 가는 곳마다 “민주당에는 친노 후보가 없다”며 참여당만이 적자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그는 또한 “김해를 잘 사는 지역으로 만들려 했던 노 전 대통령의 뜻을 이룰 사람은 이곳을 잘 알고 대통령을 모셨던 이봉수 후보”라는 점을 되뇌고 있다. 국세청 차장 출신의 민주당 곽진업 후보를 견제하는 최대무기가 바로 ‘노무현 비서’ 경력인 셈이다. 노풍(盧風)을 먼저 타기 위한 양측의 공방이 후보단일화협상 막판까지 더욱 가열될 것으로 보인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