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권 초반부터 당 안팎의 도전과 시련에 봉착해 있는 노 무현 대통령에겐 그야말로 생각도 하기 싫은 ‘비노 연대’ 시나리오가 벌써부터 꿈틀대고 있다. 민주당 구주류 대표 격인 박상천 최고위원과 정균환 총무(위 사진). 아래 사진 은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와 김종필 | ||
노무현 대통령 친인척 및 측근들을 둘러싼 의혹과 악화된 여론이 이런 기류의 촉매로 작용하고 있다. 여기에 민주당 신당 논의 과정에서 소외된 구주류 중심의 ‘반노’ 진영도 ‘비노연대’ 태동에 적극 가담할 태세다.
대선 이후 ‘정중동’ 행보를 계속하고 있는 자민련 김종필 총재의 거취도 ‘비노연대’ 움직임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다.
대선 이후 1년여 만에 총선이 치러진다는 점에서 정치권은 그 어느 때보다 활발히 권력 재편을 준비중이다. 대선이라는 대회전은 끝났지만, 1년여 만에 총선이라는 또 다른 대회전이 예정돼 있기 때문이다.
총선을 앞두고 빅뱅이 예상되는 정치권의 움직임을 살펴본다.
민주당 신당 창당 논의, 한나라당 당권 경쟁 등 대선 이후 전개되고 있는 모든 정치권의 논의는 10개월 앞으로 다가온 2004년 17대 총선을 향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 정치사에서 30여년 이상 지역적 기반을 바탕으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온 3김이 정치권 전면에서 퇴장한 이후 생겨난 ‘힘의 공백’을 누가 어떤 방식으로 메울 것이냐를 놓고 치열한 주도권 다툼을 벌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여곡절 끝에 대통령에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은 보수세력과 기존 주류세력, 그리고 일부 언론의 집중 공격을 받으면서 외연 확대에 적지 않은 애로를 겪고 있다. 우선 노 정권을 탄생시킨 민주당은 신주류와 구주류로 나뉘어 신당 논의에 휩싸이면서 안정적 국정운영을 뒷받침하고 있지 못하다.
특히 노무현 대통령과 가까운 신주류 중심으로 추진해 온 개혁신당 논의가 구주류의 반발에 부딪혀 주춤하면서 ‘분당’이라는 극단적 선택도 예고되고 있다.
민주당의 ‘분당’이 현실화할 경우, 그 파장은 민주당 자체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전국정당화를 목표로 ‘개혁신당’을 추진하고 있지만, 결과적으로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한 다당제로 정치권이 재편될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 분당은 수도권 출신 인사들과 일부 호남출신 의원,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 탄생 이후 정치권 전면에 등장한 PK출신 인사들이 하나의 정치세력을 형성하고, DJ정권 시절 전성기를 구가했던 호남출신 의원들이 별도 정당을 구성해 나갈 가능성이 농후한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누가 민주당이라는 울타리를 깨고 나가느냐에 따라 분당의 전개양상은 다르겠지만, 지금까지 모습으로는 신주류 인사들이 개혁정당 창당을 기치로 외부세력과 손을 잡고 신당 창당에 나설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이 개혁정당과 호남을 기반으로 한 정당으로 분화된다면, 대선 이후 존재가 미미했던 자민련의 위상도 조금 달라질 가능성이 있다. 충청권을 주요 지지기반으로 하는 자민련이 개혁신당과 민주당, 또는 영남을 기반으로 하는 한나라당 등 어느 정치세력과도 손을 잡을 수 있는 공간이 열리기 때문이다.
최근 이인제 자민련 총재권한대행이 “자민련은 중도우파 정당”이라며 목소리를 높이고 있는 배경에는 민주당 신주류가 추진하고 있는 신당을 ‘좌파 정당’으로, 한나라당을 ‘우파 정당’으로 자리매김함으로써 자연스레 자민련의 정치공간을 확보하기 위한 포석이 깔려 있다.
여기에 자민련이 민주당 분당을 가정, 민주당에 잔류할 가능성이 높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구주류’ 중심의 정당과 제휴하게 되면, 97년 DJP 연대와 같은 ‘호남+충청’의 지역구도를 재정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변수는 한나라당의 전당대회 결과다.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는 한나라당 전당대회 결과 영남, 특히 TK 출신 당 대표가 선출되면 88년 13대 총선 이후 그 모습을 드러낸 바 있는 ‘지역적 기반을 토대로 한 신4당체제’가 구축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신4당체제’로의 정치권 재편 과정에서 자연스레 노무현 정권의 실정을 매개로 ‘비토그룹’이 형성될 가능성도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다.
YS정권 시절, 96년 총선에서 반YS 정서에 기대 DJ가 호남을 석권하고, JP가 충청, TK에서 선전했던 상황이 재현될 수 있다는 것이다. 또 DJ정권 시절, 2000년 총선에서 반DJ 정서가 강해 한나라당이 영남을 석권한 것도 유사한 사례가 될 수 있다.
말 그대로 2004년 17대 총선 전선에서 이해관계에 따라 ‘비노연대’가 자연스레 이뤄질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민주당 분당을 기폭제로 정치권 분화가 예상되는 것과 별개로, 최근 쟁점으로 부각한 노무현 대통령의 친인척과 주변 측근인사들의 각종 의혹도 전개상황에 따라서는 ‘비노연대’를 가속화시킬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6월 임시국회를 통해 한나라당이 ‘노무현 대통령 주변 인사들에 대한 각종 의혹’에 대해 ‘국정조사’를 추진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원내 과반의석을 확보하고 있는 한나라당이 단독으로 ‘국정조사’를 추진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데다, 민주당 신당 논의 과정에서 철저하게 소외됐던 구주류 인사들이 노 대통령 주변인사들에 대한 ‘국정조사’를 묵인하거나, 찬동할 가능성도 없지 않기 때문이다. 여기에 자민련이 합세할 경우 정치권의 ‘비노연대’가 자연스레 그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즉 한나라당이 6월 임시국회에서 제기할 국정조사 요구에 대한 처리 과정이 ‘비노연대’ 출현 가능성을 가늠해 볼 바로미터가 될 전망이다.
취임 1백일을 맞이한 노무현 대통령은 일부 언론의 국정수행에 대한 여론조사 결과 지지율이 정권 출범 당시보다 밑도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민적 여론이 나빠지는 상황에서 정치권에 태동하기 시작한 ‘비노연대’ 움직임까지 더해져 노 대통령은 역대 어느 대통령보다 힘든 정권 초기를 맞게 됐다.
여권 일각에서는 ‘비노연대’ 움직임 등과 관련, 대비책이 시급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비노 그룹들이 연대해 정권에 계속 딴지를 걸 경우 국정을 제대로 운영할 수 없음은 물론, 내년 총선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런 까닭에 여권 내부에서는 비노 연대 움직임으로 더욱 심화되는 ‘여소야대’ 현상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노 대통령으로선 안에선 치받히고 밖에선 발목을 붙잡히는 진퇴양난의 형국인 셈이다. “대통령 노릇도 못하겠다”던 노 대통령의 푸념이 단순히 푸념에 그치지 않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