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명숙 고문 진술은 거짓이다”
책에 담겨진 여러 이야기들 중 가장 흥미를 끄는 것은 남산분실에서 조사를 받았던 유명 인사들의 숨겨진 일화들이다. 가장 먼저 눈길을 끄는 것은 한명숙 전 총리와의 일화다. 지난 1979년 크리스천 아카데미 사건 당시 저자는 한 전 총리를 직접 심문했다. 그는 책을 통해 당시 크리스천 아카데미에서 위장취업을 한 뒤 여공들의 교육·계몽활동을 벌이다 남산으로 끌려온 한 전 총리에 대해 비난을 가했다.
한 전 총리는 당시 저자에게 심문을 받고 법정에 섰다. 그런데 한 전 총리는 갑자기 법정에서 재판장에게 어깨를 들어 보이며 저자에게 담뱃불로 고문을 받았다고 소리쳤다. 관람석 곳곳에서는 저자를 향해 “저 새끼 죽여라. 저 남산 고문자 죽여”라는 욕설이 튀어나왔다. 하지만 저자는 책을 통해 “단 한 차례라도 주먹질이나 발길질을 했거나, 또 어떤 심한 언동이나 다른 방법의 고문이 조금이라도 있었다면 지금이라도 하늘이 나에게 벼락을 내릴 거다”라고 말하며 고문 사실에 대한 결백과 억울함을 호소했다. 책에는 한 전 총리의 거짓진술에 대한 저자의 분노가 그대로 담겨있다. 진실이 어찌됐건 충분히 논란의 소지가 있는 대목이다.
1970~80년대 민주화의 중심에 있었던 고 김승훈 신부와의 만남도 흥미롭다. 저자는 70년대 후반 수차례에 걸쳐 김 신부와 조우한다. 김 신부는 당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수장으로 민주화 활동에 앞장섰던 인물이었다. 그는 남산 분실의 단골 중에 단골이었다. 저자는 김 신부와의 수차례에 걸친 심문 속에서 별 다른 조사는 없었다고 증언한다. 대부분 지하실의 심문시간을 소주잔을 기울이며 밤을 지새웠다고 고백했다. 잦은 술자리 속에서 서로의 마음을 털어놓고 우스갯소리를 섞어가며 진솔한 대화를 나누었다고 그는 회고했다.
저자가 책에서 가장 비중 있게 다룬 일화는 ‘김대중 내란음모 사건’의 비화다. 저자는 사건 당시 김 전 대통령을 10여 일간 직접 심문했다. 저자는 심문 당시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수사관에게 예의를 갖춰 진지하게 조사에 응하는 김 전 대통령의 인품에 감탄했다. 또 심문 당시 노구를 이끌고 조사실 청소까지 거드는 김 전 대통령의 깊은 인간미에 감동해 윗선에 ‘수사관 인계’까지 요청했던 괴로운 심정을 밝히기도 했다.
저자는 김 전 대통령의 아들인 김홍일 전 의원의 조사를 맡기도 했다. 당시 김 전 의원은 라디오를 통해 전해들은 중간수사발표를 듣고 실망해 면도칼로 자해를 시도했다. 긴급 투입된 저자가 김 전 의원과 면도칼을 가져다 놓고 ‘기 싸움’을 벌이며 설득하는 일화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내란음모 사건에 연루된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당시 서울대 총학생회장)과 한화갑 전 의원, 박성철 전 경호실장, 김옥두 전 의원 등과의 심문 이야기 등도 빼곡히 들어있다. 수사 내내 벽을 보고 묵묵부답으로 일관한 김 전 대통령의 충신 박 전 실장의 일화와 심문 내내 사소한 거짓말도 거부했던 한 전 의원의 일화는 무척 흥미롭다. 이러한 인연 속에서 지금도 저자는 동교동계와 매우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