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나쁜 큰아들 부모 죽는데 돈만 보이더냐
▲ 집과 회사에서 쫓겨난 아버지와 모자지간의 살해 공모 등 평택 자산가 부부 사망사건의 숨겨진 내막이 뒤늦게 드러났다. 사진은 경기도 평택시 팽성읍에 위치한 김 씨 부부의 집 전경. |
당시 경찰조사 결과 이 사건은 남편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아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본인도 자살한 것으로 결론지어졌다. 하지만 사건 후 큰아들 김 씨가 죽은 어머니 양 아무개 씨(58)와 주고 받았던 문자를 삭제한 점과 사건 당일 아버지 김 아무개 씨(58)를 납치했던 조카사위 장 아무개 씨(32)와 큰아들 김 씨가 서로 연락을 주고 받는 등 여러 정황상 숱한 의문점이 남아 있었다.
<일요신문>은 당시 취재 과정에서 세간에 알려진 것과는 달리 김 씨가 폭력남편이 아니라는 정황을 밝힌 바 있고, 큰아들 김 씨의 수상한 행적에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두 달여가 지난 뒤 평택 100억대 자산가 부부 사망사건에는 큰아들이 개입됐다는 충격적인 내용이 검찰의 수사를 통해 사실로 밝혀졌다. 사건 초기 <일요신문>이 제기했던 갖가지 의문점 및 검찰조사 결과 새롭게 드러난 사실을 토대로 사건의 전말을 재구성해봤다.
지난 4월 발생한 평택 부부 사망 사건을 두고 언론에서는 일제히 ‘아내가 폭력남편을 살해 후 자살했다’는 내용의 기사를 쏟아냈다. 평택 일대에 공시지가로만 100억대에 이르는 재산을 보유한 부부의 비극적인 사망 사건을 두고 많은 네티즌들은 ‘얼마나 폭력을 휘둘렀으면 아내가 남편을 살해했겠느냐’며 폭력남편으로 알려진 김 씨를 비난했다.
하지만 <일요신문> 취재결과 언론에 보도된 바와 달리 이 사건에는 숨겨진 내막이 있었다. 우선 폭력 남편으로 알려졌던 김 씨는 폭력 남편이 아니었다. 폭력 남편이 자신의 집을 두고 찜질방을 전전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던 기자는 김 씨 주변 이웃들의 증언을 통해 김 씨가 폭력남편이 아니며 오히려 부인으로부터 학대받았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도했다.
검찰의 수사결과는 <일요신문>의 취재결과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피살된 김 씨가 찜질방에서 생활했던 것도 사실은 부인에 의해 쫓겨났기 때문으로 드러났다. 사건의 시말은 이렇다.
올 초 김 씨 부부는 4월달로 예정된 둘째 아들의 결혼식이 다가오자 결혼비용에 대해 상의했다. 부인 양 씨는 김 씨에게 “당신 퇴직금과 지난해 땅 판 돈 1억 원을 둘째 결혼 자금으로 주자”고 제안했다. 하지만 김 씨는 “내 땅 팔아 나온 내 돈인데 왜 주냐. 말도 안된다”며 거부했다. 이전까지만 해도 재산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순순히 자신의 말을 따랐던 남편의 이런 돌발행동에 양 씨는 적잖이 언짢았다고 한다. 작년에 땅을 팔 때도 남편이 마음대로 처분하는 등 최근 들어 남편이 자신과 상의 없이 재산을 마음대로 처분하는 것에 불만을 가졌던 것으로 전해졌다.
양 씨는 급기야 김 씨 몰래 땅 판 돈 1억 원을 큰아들에게 숨겨 놓기에 이르렀다. 또 양 씨는 3월 초 김 씨가 일하고 있는 경비업체에 찾아가 행패를 부리기까지 한 것으로 전해졌다.
결국 김 씨는 그 일로 2011년 말로 예정된 퇴직 날짜도 다 채우지 못하고 쫓겨나다시피 회사를 그만두게 됐다. 결과적으로 양 씨의 의도대로 둘째 결혼식 전에 퇴직금과 1억 원이 마련된 셈이었다. 하지만 황당하게도 3월말경 양 씨는 김 씨를 집에서 쫓아냈다. 한번은 쫓겨난 김 씨가 다시 집에 들어가려고 시도하는 과정에서 유리창이 깨지는 등 일대 소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김 씨는 아들들에게 “너희 엄마가 도대체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그렇게 김 씨는 영문도 모른 채 집에서 쫓겨나 찜질방 생활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렇다면 왜 양 씨는 굳이 김 씨를 집 밖으로 쫓아냈을까. 검찰은 양 씨와 아들이 이미 김 씨 살해에 대한 모든 계획을 짜 놓은 상태에서 의도적으로 김 씨를 쫓아낸 것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그 이유는 양 씨의 범행계획에서 잘 드러난다.
양 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큰아들에게 “조카사위를 이용할테니 알고 있어라. 빨리 풀려날거다”는 말을 전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는 조카사위를 이용해 남편을 납치한 것처럼 꾸미고 아들들에게는 피해가 가지 않게 하려 했던 것이다. 실제로 양 씨는 평소에 조카사위 장 씨에게 고모부(김 씨)가 자신을 폭행한다며 이를 막아달라는 말을 자주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심지어 둘째 아들 결혼식 하루 전인 4월 2일 양 씨는 장 씨에게 “고모부를 미행하라”는 지시까지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후 돈 문제로 남편과 갈등을 겪던 양 씨가 결정적으로 남편을 살해하기로 마음을 먹게 된 계기가 발생한다. 바로 둘째 아들 결혼식 비용 문제였다.
둘째 아들 결혼식 비용 1500만 원을 놓고 아버지 김 씨는 큰아들에게 “일단 네 카드로 계산해라. 나중에 내가 주마”라고 말했다. 이에 큰아들 김 씨는 본인의 카드로 결혼식 비용을 계산했지만 아버지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 이후에도 김 씨와 큰아들은 이 문제로 자주 다툼을 벌인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돈 문제로 아들이 힘들어하자 양 씨는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이런 와중에 4월 5일 김 씨가 집에 몰래 들어와 퇴직금이 든 통장과 도장을 가지고 집을 나가는 사건이 발생했다. 퇴직금을 둘째 아들에게 주려고 했던 양 씨의 계획에 차질이 생긴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양 씨는 큰아들과 함께 평소 잘 알던 서울에 위치한 점집을 찾아갔다. 양 씨는 점쟁이에게 “남편이 돈을 가지고 나갔다”며 자초지종을 설명했고, 점쟁이는 “재산도 카드값도 안 줄 것이다”고 말했다. 그러자 양 씨는 “이 놈 죽이고 나도 죽겠다”고 말하며 크게 화를 낸 것으로 전해졌다.
큰아들은 어머니의 모든 말을 옆에서 듣고 있었다. 또한 큰아들은 그 자리에서 양 씨에게 “나 결혼할 땐 1억 원만 주고, 동생 결혼할 땐 3억 원을 주느냐”며 섭섭함을 토로했다고 한다. 그러자 양 씨는 “다 생각해 놓은 게 있다. 기다려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서울에 다녀온 뒤인 4월 9일 양 씨는 김 씨가 도망갈 수 없도록 김 씨가 타고 다니던 차량을 빼앗아 천안에 숨겨 놓는 등 차근차근 범행계획을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다음날(4월 10일) 양 씨는 두 아들을 불러 놓고 재산분배에 관한 얘기를 했다. 양 씨는 지난 2008년 정리해 두었던 김 씨의 재산목록을 다시 살폈다. 공시지가로 100억대에 이르는 재산이 정리된 서류를 큰아들에게 주며 “이 집은 너희가 갖고 나머지는 둘째랑 나눠 가져라”며 재산 분할을 지시했다. 재산분배 지시까지 마친 상황에서 이제 마지막 단계만이 남아 있었다.
그로부터 며칠 후 양 씨는 조카사위 장 씨에게 “고모부가 나를 때린다. 도와달라”며 급하게 연락을 취했다. 사건 발생 당일인 4월 16일 전화를 받은 장 씨는 선후배 3명과 함께 찜질방으로 가 김 씨를 집으로 데려오게 된 것이다. 검찰조사 결과 이 과정에도 큰아들 김 씨가 개입한 정황이 드러났다. 김 씨를 집으로 데려가는 도중에 큰아들 김 씨와 장 씨가 연락을 취한 것이다. 큰아들은 “아버지 잘 데리고 있느냐”고 확인하자, 장 씨는 “왜 안오느냐. 형수랑 같이 와라”고 말했다. 그러자 큰아들은 “애가 안자고 있다. 좀 있다 가겠다”고 답했다.
하지만 결국 큰아들 김 씨는 그날 아버지 집에 가지 않았다. 검찰조사 결과 이는 자신이 사건에 개입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기 위한 속임수였던 것으로 밝혀졌다. 또 김 씨는 사건이 발생하기 전 아버지 골프채를 아버지 집에 가져 놓기도 했다. 사건 발생 일주일 전 어머니 양 씨로부터 “아버지가 날 때릴지 모른다”는 말을 듣고 골프채를 집에 갖다 놨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조사 결과 이 골프채는 삽과 함께 양 씨가 김 씨를 살해하는 데 사용된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적으로 아들 김 씨가 아버지 살해를 뒤에서 도운 셈이다.
더군다나 큰아들은 사건 발생 후 어머니와 주고받았던 문자 메시지를 삭제하기도 했다. 당시 사건의 키를 쥐고 있던 이 문자 내용이 검찰 조사과정에서 밝혀지면서 사건의 전모가 드러나게 된 것이다. 문자에는 큰아들 김 씨가 ‘결혼식 비용을 안 준 아버지 김 씨를 원망하는 내용’과 양 씨가 아들에게 ‘어차피 끝났으니 (아버지에게) 욕해라’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사실상 사전에 부인 양 씨와 큰아들이 범행을 모의한 정황을 추측할 수 있는 대목이다.
결국 그렇게 김 씨 부부는 싸늘한 주검으로 발견됐고 사건 발생 열흘 후 큰아들 내외는 부모님이 살던 대저택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지시대로 자신들이 살던 아파트는 상속세를 내기 위해 처분하고 들어와 산 것이다. 그리고 김 씨는 동생과 나눠가질 재산분배 내역을 엑셀파일에 저장해 놓기도 했다. 김 씨는 또 5월 초쯤에 동생과 함께 점집을 다시 찾아가 사건이 잘 마무리될지를 상담했던 것으로 밝혀졌다.
큰아들 김 씨는 장 씨 일행이 아버지를 데려간 사실을 사전에 모두 알고 있었고, 어머니가 아버지를 살해할 수도 있다는 사실과 그로 인한 어머니의 자살 가능성을 짐작할 수 있었음에도 돈에 눈이 멀어 방조한 것이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