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종 슬픔 어루만지는 푸른 솔숲
▲ 단종의 묘. |
조선왕조 역사상 단종만큼 비운의 왕도 없을 것이다. 태어난 지 겨우 사흘 만에 어머니를 잃고, 12세에 왕이 되었으나 15세에 그 자리를 빼앗기고 17세에 억울한 죽음을 당한 왕, 그가 바로 단종이다.
단종은 ‘육지고도’(陸地孤島, 육지 속의 외로운 섬)라고 스스로 불렀던 청령포에 유배된 지 4개월 후 비정한 세상과 작별을 고했다. 그 시신은 영월 호장 엄흥도라는 인물에 의해 몰래 수습되어 암매장되었다가, 중종 때 비로소 봉분을 갖추게 되었다. 지금의 모습으로 거듭난 것은 선조 때의 일이다. 상석, 표석, 장명등, 망주석 등이 세워지면서 왕릉으로서 체면을 차릴 수 있었다. 사후 123년 만의 일이다.
그렇지만 여전히 단종의 묘는 단출하다. 난간석도 없고, 병풍석도 없다. 무덤을 지키는 무인석도 역시 없다. 죽어서도 서러운 단종이다. 단 하나 단종의 아픈 마음을 위로하는 것이 있다면 빼어난 영월의 자연이다. 장릉을 에워싸고 있는 풍광은 값으로 매길 수 없을 만큼 훌륭하다.
장릉은 여러모로 조선왕릉의 원칙에서 벗어난 묘다. 조선왕릉은 도성 밖 100리를 벗어나지 않는 것을 원칙으로 삼았다. 500년 왕조 기간 동안 27대 왕과 왕비, 추존왕 등이 있었다. 그 수많은 왕릉 가운데 장릉은 개성의 제릉과 후릉, 여주의 영릉 등과 함께 도성에서 멀리 떨어진 왕릉으로 꼽힌다. 물론 그것이 ‘선택’이 아닌 ‘운명’이었다는 점이 차이점이겠지만 말이다.
조선왕릉이 차지한 자리는 어김없이 풍수지리학적으로 명당이다. ‘난다 긴다’ 하는 지관들을 동원해 자리를 정했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장릉의 자리가 또한 명당이다. 아무도 모르게 급히 암매장했던 곳이 바로 그런 명당이었으니 이승에서의 억울함을 저승에서나마 풀라는 하늘의 깊은 뜻이 담겨 있었던 것은 아닌지 모를 일이다. 그것이 정말 명당인지는 직접 가보면 알 수 있다. 장릉은 들어서는 순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그 때문인지 이곳은 참배의 목적보다도 산책을 위해 찾는 이들이 많다.
김동옥 프리랜서 tour@ilyo.co.kr
▲길잡이: 영동고속국도 만종분기점→중앙고속국도 제천IC→38번 국도→단양→서영월IC→청령포로→장릉
▲문의: 장릉관리사무소 033-370-2619
▲문의: 장릉관리사무소 033-370-26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