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선배, ‘갑’이 됐어도 말 바꾸면 안돼”
▲ 권영세 의원은 4·27 재보선 참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났던 전임 지도부 인사들이 당선된 데 대해 ‘짝퉁 개혁’이라며 비판의 날을 세웠다. 작은 사진은 당 대표 경선에 나섰던 권 의원의 정견 발표 모습.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지난 7·4 한나라당 전당대회에 뒤늦게 뛰어들어 7명의 후보 중에 ‘7위’를 기록하며 탈락한 권영세 의원(국회 정보위원회 위원장). 치열했던 전당대회를 마친 이후 직접 만난 권 의원은 전대 과정 중 느낀 소회가 적지 않아 보였다. 그러나 ‘꼴찌’가 아닌 ‘7위’로 멋지게 퇴장하는 <나는 가수다>의 탈락자처럼, 그는 다시 돌아올 훗날을 꿈꾸고 있는 듯했다. 두 차례 인터뷰를 통해 권 의원의 전당대회 ‘속풀이’를 들어보았다.
7·4전당대회를 통해 새로 출범한 한나라당 지도부는 40~50대로 구성된 ‘젊은 지도부’라는 평가를 듣고 있다. 또한 홍준표·나경원 전 최고위원, 원희룡 전 사무총장 등 출마했던 세 명의 전임 지도부 인사들이 모두 당선되기도 했다. 이들의 출마에 대해 ‘짝퉁 개혁’이라고 비판해왔던 권영세 의원으로선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듯했다.
―전임 지도부의 전대 출마에 대해 강하게 비판해 왔는데.
▲한나라당이 책임지는 정당의 모습을 잃어버렸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단지 이름 난 사람들을 먼저 내세운 부분에 대해선 그에 대한 역풍도 감수해야 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이 지도부에 올라가고 그러면서 다시 언론에 널리 알려지고, 이를 통해 다시 공직후보자로 가고…. 이렇게 되면 묵묵하게 당을 위해 일했던 사람은 다 시들어 없어져 버리게 되지 않겠나.
―전임 지도부 중 한 명이 대표가 된다면 ‘도로 한나라당’이라는 비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해왔다.
▲정당 지도부는 일종의 ‘롤모델’ 역할을 해야 하는데 이들이 품위 없고 자극적인 말과 행동만 하게 된다고 하면, 본인 입장에서야 인지도를 올릴 수 있어 좋겠지만 정치권 전반적으로 본다면 국민들로부터 더 배척받게 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자극적’이고 ‘튀는’ 발언으로 종종 화제와 논란을 불러왔던 홍준표 신임 대표를 ‘겨냥’한 발언처럼 들려 “홍 대표를 의식한 발언인가”라고 물었더니, 권 의원은 “그냥 일반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라며 웃음을 보였다.
―홍준표 대표와는 친분이 두터운 것으로 알고 있다.
▲검사 생활도 같이 했고 근무도 같이 해서 서로 잘 안다. 개인적으로는 ‘홍선배’라고 부른다. 지난 전당대회 때는 내가 홍 대표를 지원하기도 했다.
권 의원에게 홍 대표에게 건네고 싶은 당부를 물어봤다. 친분이 두터운 사이니 더 편하게 ‘주문’하고 싶은 말이 있을 듯했다. 그는 “말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했으면 좋겠다는 충고를 하고 싶다. 그리고 또 하나는 ‘갑일 때와 을일 때 똑같은 얘기를 했으면 한다’는 거다”라고 힘주어 말했다.
―홍 대표가 ‘계파 활동을 하면 내년 총선에서 공천을 안 주겠다’는 발언을 해서 큰 논란이 되었는데.
▲만약에 그냥 최고위원으로 계셨을 때 다른 대표가 그런 발언을 했다면 ‘공천을 대표 혼자서 하느냐’고 제일 먼저 목소리를 내셨을 분인데, 역시 갑과 을이 다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 부분은 내가 꼭 다시 조언을 해야겠다는 생각이다. 현실적으로 계파 해체 선언을 한다고 해도 그게 쉽지가 않다. 그 얘기는 1년 전에도 똑같이 나왔다. 그것보다는 당직 인선에서 특정 인사가 독식한다든지, 공천에서 특정인사가 독식한다든지 하는 부분부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러다보면 계파의 갈등 문제가 자연스럽게 없어지는 거다.
―당직 인선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홍준표 계파’ 독식에 대한 우려가 나오고 있다.
▲(홍 대표) 본인도 안상수 대표 시절에 심지어 비서실장 인선까지도 브레이크를 걸었던 사람이다. 그런데 이제 와서 다른 얘기를 한다면 안 된다. 사실 비서실장은 대표하고 호흡 맞는 사람이 하는 게 당연한 건데 심지어 비서실장까지 시비를 걸었던 분이 이제 와서 자기 계파로 인선을 한다는 건 잘못된 거다. 그렇지만 지금 논의되고 있는 분들은 다 괜찮은 분들인 것으로 안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 12일 유승민·원희룡 최고위원의 반발을 무릅쓰고 김정권 의원을 사무총장에 임명했다. 이에 대해 ‘홍준표 계파’라는 일각의 반발도 있으나, 김 의원은 “나는 친이·친박에 속해 있지 않는 중도성향이다. 중도성향이 하지 않고 친이계가 사무총장을 하면 18대 공천 대학살처럼 친이가 또다시 칼자루를 잡았다고 표현될 것이고, 친박이 잡으면 반대로 이야기하지 않겠나. 그것은 또 새로운 불신이 작용될 것”이라고 밝혔다.
―원희룡 최고위원이 전대 이전 ‘내년 총선에 불출마 하겠다’고 선언한 것에 대해서도 강하게 비판한 바 있는데.
▲지역구를 포기하는 게 우선이 아니고 대표 불출마를 한 뒤에 백의종군하며 당을 바로잡는 일을 해주기를 바랐는데, 그게 아쉽다. 굉장히 가까운 후배인데 내가 아픈 비판을 많이 해서 인간적으로는 미안하게 생각한다. 그러나 아끼기 때문에 했던 말이다. ‘제2의 김민석이 되지 말라’는 아픈 말을 여러 번 했다.
권 의원은 “본인이 듣기에 너무 마음 아픈 말이었을 것”이라며 여러 차례 원 위원에게 미안함을 나타내기도 했다.
―정두언 의원이 전대 이후 트위터에 ‘그동안 한나라당은 친이계로 인해 중세 암흑기였다’ ‘일그러진 영웅들의 퇴장’이라고 평했는데.
▲친이의 대표성 있는 인물 중 한 분인데 정치도의상 그렇게 얘기하는 건 좋지 않다고 본다. 내부적으로 얼마든지 목소리를 낼 수 있었던 분이고, 친이 계파 주도에 앞장섰던 분인데 이제 와서 그렇게 얘기하는 건 정치신의상 맞지 않다.
―유승민 최고위원이 ‘2위’를 기록한 것이 이번 전당대회의 이변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첫째로는, 의원과 당협위원장 층에서는 아직도 친이가 많겠지만, 밑의 흐름에선 친박계가 대세가 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두 번째로, 유승민 의원의 ‘개인기’도 있었다고 본다. 유 의원과 매우 친한데, 유 의원은 정책면에서 확실한 주관이 있고, 또 계파색이 있지만 왔다 갔다 하지 않고 일관성을 유지하며 자기주장을 해왔다. 이러한 능력이 모두 합쳐져 돌풍을 가져왔다고 본다.
―권 의원도 친박 성향 인사 아닌가.
▲‘친박성 중립’이라고들 하더라(웃음). 대선 때 중립을 같이 선언했던 사람 중에서 임태희 대통령실장과 맹형규 (행안부) 장관은 승승장구하는데 나만 지난 3년 동안 핍박받다시피 하니까, 친박이기 때문에 그런 것 아니냐는 말을 하는데… 그건 아니다. 내가 확실한 친박이었다면 전대에서 좀 더 좋은 결과가 나왔을 것 아닌가(웃음).
조성아 기자 lilychic@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