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억 주무르던 그때 그 계주가 또!
▲ 다복회 사건에 이어 또 다시 ‘기업형 계방’이 출현해 강남을 뒤흔들고 있다. 사진은 기사의 특정 내용과 관련 없다. |
이번 사건은 수백억 원대에 달하는 계의 운영자가 30대 젊은 청년이라는 사실이 밝혀지며 충격을 주고 있다. 경찰에 따르면 송 씨는 지방의 모 대학 3학년을 중퇴하고 일찍부터 계 운영에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다. 무엇보다 송 씨가 계를 접하게 된 데에는 강남 일대에서 소문난 계주인 어머니의 영향이 컸던 것으로 전해졌다. 과거 금복회로 피해를 본 계원 A 씨는 “송 씨의 어머니가 강남에서 유명한 계주인데 어머니 옆에서 계 운영 일을 도운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2008년 30세에 불과했던 송 씨는 강남 일대에서 ‘금복회’라는 기업형 계를 조직하고 사람들을 끌어모아 다수의 계를 운영했다. 송 씨는 ‘기업화’ 이미지로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심어주기 위해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차려놓고 법인까지 설립했다. 그 당시 이런 계방은 서울 강남에만 100여 개가 넘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조사 결과 당시 금복회는 송 씨가 일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갈수록 규모가 커졌다. 문제가 발생하기 직전 금복회의 전체 자금은 무려 500억 원에 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송 씨의 금복회는 오래가지 못했다. 지난 2009년 말 서울 강남에서 ‘귀족계’로 유명한 ‘다복회’ 사건이 터진 것이다. 다복회 사건은 당시 다복회 계원 중에 유명 연예인과 유력인사의 부인이 포함돼 있다는 소문과 함께 피해규모가 수백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밝혀져 세간의 관심을 모은 바 있다. 다복회 사건이 터지자 금복회의 일부 계원들은 동요하기 시작했다. 불안한 계원들이 한꺼번에 원금 회수에 나서면서 금복회의 운영은 점점 어려워졌다. 결국 송 씨는 돌연 자취를 감췄고, 그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봤다. 경찰조사 결과 금복회 사건의 피해액은 현재 장부가 남아 있지 않아 피해 규모조차 파악이 어려운 것으로 알려졌다.
그런데 홀연히 자취를 감췄던 송 씨가 2010년 1월 다시 강남에 모습을 나타냈다. 송 씨는 이번에는 역삼동의 40평대 빌라에 사무실을 차리고 자칭 ‘강남계’라는 계를 신설해 운영을 시작했다. ‘강남계’는 200만~5000만 원짜리까지 계 종류도 다양하게 운영됐다. 송 씨는 주로 현금을 처리했고 공동계주인 박 씨는 본인 명의의 통장 4개를 통해 곗돈을 관리했다. 박 씨의 남편 강 씨는 본인 소유의 오피스텔을 범행에 사용하고 모자란 곗돈을 메우는 등 자금책 역할을 했다.
그렇다면 금복회 피해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기다리고 있는 마당에 송 씨는 어떻게 강남에서 다시 ‘사업’을 벌일 수 있었을까. 송 씨는 바로 금복회 피해자들에게 피해금액을 회복시켜주겠다며 접근했다. 공동계주로 송 씨와 함께 곗돈과 계원들을 관리한 박 씨가 바로 금복회 계원이었던 사실을 적극 이용했다.
이유야 어찌됐든 결과적으로 ‘강남계’ 계원의 60~70%가 금복회 전 계원들로 채워지는 기현상이 벌어졌다. ‘강남계’의 회원들은 주로 50대 중반에서 70대까지의 가정주부들로 강남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소문을 듣고 ‘강남계’로 찾아왔다. 송 씨는 찾아 온 사람들에게 “가입 뒤 2주 후면 곗돈을 탈 수 있다. 1000만 원을 내고 1500만 원을 타게 해달라고 하면 사모님 신용을 보고 타게 해 주겠다”며 사람들을 유혹한 것으로 드러났다.
‘강남계’는 낙찰계와 번호계 방식으로 곗돈을 지급했다. 낙찰계는 일주일에 한 번씩 모여 비공개 낙찰을 통해 가장 적은 금액을 적어낸 사람이 곗돈을 타가는 방법이다. 번호계는 순번대로 곗돈을 타가는 방식인데 맨 끝에 타는 사람이 많은 곗돈을 수령하게 된다. 경찰조사 결과 실제로 곗돈이 지급된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왜냐면 송 씨 일당이 지급된 곗돈의 재투자를 종용했기 때문이다.
또 송 씨 일당은 지급된 곗돈마저도 일괄지급하지 않고 나눠서 지급했다. 예를 들어 15만 5000원을 80회에 나눠 지급하면 1240만 원을 받게 돼 원금에 240만 원의 이익을 준다는 논리였다. 송 씨 일당은 이렇게 12, 24, 80, 200회 분할 지급이라는 변칙적인 방식으로 곗돈을 지급했다. 그 이유는 바로 한꺼번에 많은 자금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계원들의 탈퇴를 방지하기 위해서였다.
송 씨는 계원들에게 원금의 120%를 돌려주기 위해 곗돈으로 불법 대부업을 했다. 강남의 유흥업소 아가씨들에게 고리로 사채를 빌려주고 이자를 받아 돈을 불리겠다는 속셈이었다. 하지만 빌려준 돈은 회수가 안됐고, 급기야 돈을 빌려 쓰고 도망가는 사람들이 생기면서 손실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송 씨는 이 손실을 메우기 위해 복수의 계를 신설해 돌려막기를 시도했다. 그렇게 계원 100여 명으로부터 20억 5000만 원을 불법으로 투자받은 것으로 드러났다.
경찰에 따르면 종료가 된 계의 경우 장부가 폐기되고 없는 등 이번에 밝혀진 피해액은 일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관계자는 “강남 오피스텔에 사무실을 두고 기업형으로 이런 불법 유사수신 행위를 하거나 계주가 돈을 착복하는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으로 안다. 오피스텔이라지만 겉에서 보기엔 주택이나 마찬가지라 내부 제보가 없으면 단속과 혐의 입증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훈철 기자 boazhoo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