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앙숙’ 이재오가 일등공신이라고?
▲ 여유만만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가 2018 동계올림픽 개최지 결정을 앞둔 지난 6일 밤 강원도 평창 알펜시아리조트 스키점프대 앞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응원전을 펼쳤다. 유장훈 기자 doculove@ilyo.co.kr |
특히 친박계는 여권 내에서 끊임없이 대세론에 대한 회의론을 주장하며 흔들기를 하지만 그것이 오히려 대세론을 더욱 강고하게 해주는 파동역할을 한다는 ‘파동론’으로 대세론 거품 논란에 이론적으로 대항하고 있다. 이밖에 이재오 특임장관의 탈당 가능성 등 대세론을 위협하는 외적 변수도 사실상 정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최근 부쩍 힘을 받고 있는 친박계의 박근혜 대세론 공고화 전략을 따라가 봤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박근혜 대세론 유지의 1등공신이다.”
지난 2007년 대선후보 경선 때부터 박근혜 전 대표의 전략핵심 참모로 활동했고 이번 조기 전당대회에서도 유승민 후보 캠프의 사령탑 역할을 했던 A 씨. 그는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여론조사를 정치 전략에 처음 도입했던 주인공 중의 한 명으로 친박계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히는 핵심 전략 참모다. 전당대회를 마친 그의 표정은 매우 밝았다. 바닥 당심을 직접 체험했던 그는 박근혜 대세론도 살아 있는 생물체로 진화하고 있음을 느끼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꺼낸 이야기가 ‘파동론’이다.
“이재오 특임장관이 박근혜 전 대표를 끊임없이 흔들어 준 것이 오히려 대세론이 유지되는 데 도움이 된다. 주기적으로 언론 노출을 시켜 국민들의 정치적 관심을 계속 붙잡아 두는 앵커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본다. 최근 이동관 언론특보도 박근혜 대세론은 독약이라고 발언했다고 하는데 크게 개의치 않는다. 오히려 박 전 대표의 정치적 위상을 공고하게 하는 역할을 해준다. 정치는 대중에 얼마나 자주 노출되느냐에 따라 국민들의 의식에도 일정한 영향을 지속적으로 미친다. 잠잠한 대세론은 재미가 없고 지루해진다. 친이계에서 자칫 밋밋해질 수 있는 대세론에 주기적인 파동을 줘 그 흐름을 유지시켜 주는 셈이다. 이제 박근혜 대세론은 그 파동에 따라 점점 더 강한 힘을 얻어가는 생물체로 변하고 있다. 이 흐름을 깨기는 쉽지 않다.”
박근혜 대세론은 친박계 내부에서 일종의 ‘종교’처럼 변해가고 있는 모습이다. 누구도 건드릴 수 없는 ‘괴물’ 같은 모습으로 진화하고 있다. 특히 힘이 빠져 가는 친이계가 대세론에 문제가 있다고 딴죽을 걸면 걸수록 더욱 그 힘이 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런 친박계의 자신감은 역대 대선이 후보 중심으로 결정이 났다는 해석에 무게중심을 두고 있다. 앞서의 A 씨는 “박근혜 대세론은 지난 1992년 김영삼 전 대통령의 민주계가 다수파 민정계를 ‘복속’시킨 사례를 점차 닮아가고 있다”라고 주장한다.
당시 노태우 대통령은 박태준 박철언 등 실세들이 김 전 대통령과의 연대를 거부함에도 할 수 없이 대권후보를 그에게 내줄 수밖에 없었다. 이에 이종찬 박철언 등은 탈당하여 정주영 후보의 통일국민당에 합류했고 박태준은 끝까지 저항하다 김 전 대통령에게 처절한 복수를 당했다. 앞서의 A 씨는 이에 대해 “최근 이재오 특임장관의 탈당설이 나오는데 그것은 박근혜 대세론을 전혀 위협하지 못한다. 이재오 장관이나 이종찬 박철언 등은 대선에 나갈 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공통점이 있다. 역대 대선이 철저하게 인물 중심으로 결판이 난 한국 대선의 특징을 생각해 보면 이 장관이 탈당해도 대권주자로서 인식이 되지 못하기 때문에 그 파장이 미미하다고 본다. 하지만 지난 97년 이인제 의원이 탈당했을 때는 달랐다. 잠재적 대권주자였던 그가 탈당하면서 결국 이회창 후보가 낙선하는 결정적 계기가 됐다. 최근 이 장관 측 사람들을 만나서 ‘차라리 박 전 대표에게 협력하는 게, 오래 살아남는 것도 정치라는 점에서 더 나을 것’이라고 충고해줬다. 이대로 가면 이재오 장관은 내년 총선 당선도 어려울 것이다. 그러면 정치인생도 끝 아닌가”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세론은 친박계를 이명박 대통령 그룹 수준의 실용주의자로도 변모시키고 있다. 최근 친박계 의원들이나 전략 관계자들과 얘기를 해보면 공통적인 단어가 끊임없이 쏟아져 나옴을 알 수 있다. ‘복지’다. 언제부터 어떤 까닭으로 친박 진영에서 이렇게 복지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졌는지는 알 수 없으나 최근 친박계의 눈과 귀는 온통 복지에 쏠려 있다. 박 전 대표가 거의 모든 일정과 공부를 복지정책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보니 참모들의 눈도 자연스럽게 보스가 손짓하는 곳을 바라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사실 박 전 대표는 대구·경북을 기반으로 하는 전통적 의미의 보수 원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최근 박 전 대표가 쏟아내는 복지에 대한 가치관은 민주당의 정책과도 거의 차이를 발견할 수 없을 정도로 전향적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최근 추진하고 있는 무상급식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친박계는 상당한 거부감을 보이고 있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는 공·사석에서 부친 박정희 전 대통령의 궁극적 꿈은 복지국가였다는 점을 자주 언급한다. 최근 그가 추진하는 복지정책은 대선 공약 수준이 아니다. 자문교수단을 중심으로 상당히 깊게 논의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집권한다면 운영할 5년 동안의 로드맵을 복지정책 중심으로 지금 짜고 있는 셈”이라고 말했다.
박 전 대표가 이렇게까지 복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면서 아래 참모들도 바짝 긴장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친박계의 한 의원은 이에 대해 “박 전 대표의 복지정책에 대한 공부량은 상당한 수준에 올라와 있다. 웬만큼 공부해서는 대화에 끼어들 수 없다. 그리고 우리가 듣지도 못한 인터넷의 작은 화젯거리도 거리낌 없이 올리곤 해서 당황할 때가 많다. 요즘 참모들이 박 전 대표의 복지정책에 대한 내공과 세세한 여론에 대한 관심을 따라가느라 정신이 없다”라고 말했다.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가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함께 기재위에 배치됐는데 앞으로 토론 기회를 통해 손 대표와 진검승부를 벌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특히 최근 친박계에서는 성균관대 안종범 경제학과 교수(한국재정학회 회장 역임)의 역할을 주목하고 있다는 전언이다. 박 전 대표가 앞으로 복지정책에 대해 야당과 전투를 벌일 때 재정확보 문제는 가장 핵심적 사안이다. 안 교수도 “재정건전성과 물가관리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해야 한다. 특히 포퓰리즘 남발을 적극 막아야 재정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친박계의 한 관계자는 “국가미래연구원 핵심 멤버인 안 교수가 복지와 감세 분야에서 박 전 대표와 깊은 의견을 교환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 앞으로 캠프 내에서도 정책 분야에서 상당히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친박계의 대세론이 생물처럼 진화해 더욱 공고해졌다는 것은 참모들과 박 전 대표와의 ‘호흡’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요즘 친박계에서는 “박 전 대표에게 ‘이 일 다음엔 무엇을 할까요’ 이렇게 물어보면 최근 합류한 친박이고, 묻지 않고도 이심전심으로 알아서 척척 대응해 내는 사람이 오리지널 친박이다”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고 한다. 친박계가 세를 얻으면서 여기저기 자리 이야기를 꺼내는 사람이 있는데 그런 부류도 십중팔구 가짜 친박이라고 한다. 박 전 대표가 자리를 보장하며 참모들을 곁에 두는 스타일이 아니기 때문에 그런 이야기는 거짓말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앞서의 A 씨는 이에 대해 “사실 지난 2007년 경선 때는 박 전 대표 뒤에서 불만도 자주 말했다. 참모들 말을 전혀 듣지 않고 자기 식대로만 하는 것이 너무 답답했다. 하지만 오랫동안 박 전 대표와 호흡을 맞춰온 사람들은 이제야 그 사람의 진정한 리더십을 알겠다고 자주 말한다. 험담할 일도 없다. 박 전 대표가 일을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하는 시스템으로 변하고 있다. 이런 캠프 내부의 시스템 변화는 대세론이 허망하게 거품으로 꺼질 것이라는 우려를 막아주는 방패막이 역할을 할 것이다. 이제야 박근혜라는 사람이 좀 보이기 시작한다”라고 말했다.
사실 박근혜 대세론은 지금도 정치권 최대의 미스터리로 자리 잡으며 수많은 논쟁을 일으키고 있다. 그는 지난 2007년 12월 대선 이후 줄곧 30%대의 지지율을 넘나들며 4년째 독보적인 1위를 유지해오고 있다. 최근 김형준 명지대 교수는 한국정책과학연구원(KPSI)의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박근혜 대세론에 대해 “대세론이 ‘계속 유지된다’는 45.4%, ‘현재 의미가 없다’가 45.0%다. 오차범위 내에서 팽팽하게 맞서고 있는데 그동안 다른 조사 결과에서는 나오지 않은 우리가 새롭게 밝힌 대목”이라고 평한 바 있다. 그는 외연 확장이 불투명하고 선거 구도도 불명확한 상황에서 대세론은 인기도 수준일 뿐 본선 경쟁력과는 거리가 멀다고 주장하는 대표적 학자다. 현재의 정치 상황만 가지고 대세론이라고 규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물론 박근혜 대세론이 이런 지지율 분석에서 많은 허점을 가지고 있고, 친박계에서도 그 사실을 인정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지지율과는 별개로 박근혜 대세론이 친박계 내부에서부터 상당히 견고해지는 흐름을 보이고 있다는 데 주목해야 한다. 2007년 경선 패배를 거울 삼아 참모들이 전략적 마인드를 박 전 대표와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고, 친이계의 적당한 견제가 무풍지대 같은 대세론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한 정적들의 저항도 쇠잔해지고 있는 데다 복지 아젠다 선점으로 착실하게 대선준비를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그 흐름을 주도하고 있다. 이런 박근혜 대세론의 진화 내지는 업그레이드는 지지율에 일희일비하지 않는 강고한 흐름으로 굳어지는 기제가 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 맷집을 키운 박근혜 대세론이 향후 야권의 공세에 또 어떻게 변화할지 궁금해진다.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